2026년 10월 19일 (월)

턱 맞추고 코피 막고 혈관관 넣고⋯병동 누비는 입원전담의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42 병동의 ‘홍반장’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병동의 ‘홍반장’ 김현종 교수. 수채화=이영이 교수(강릉아산병원)

“교수님, 지금 잠깐 시간 되세요?”

같이 일하는 전담간호사가 어딘가 난처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연다.

병원에서 누군가 ‘잠깐’이라는 말을 꺼낼 때는 사실은 ‘별로 간단하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물어보는 사람도 알고, 듣는 나도 안다. 그래서 대답은 심드렁하게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슬쩍 긴장한다.

“무슨 일인데요?”

“오늘 퇴원 예정인 ○○○ 교수님 환자인데요. 흉수가 있어서 가슴에 삽입해두었던 배액관을 빼고가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잘 안 빠져요. 한번 봐주실래요?”

‘그게 안 빠진다고? 그럴 리가.’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일단 의자에서 일어섰다.

환자는 며칠 동안 가슴에 꽂혀 있던 관을 드디어 빼고 집에 간다는 말에 한껏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관은 흉막 어딘가에 들러붙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삽입 부위와 관의 상태를 다시 살펴보고 몇 가지를 확인한 뒤 조금씩 살살 당겨보았더니 관이 어렵지 않게 빠져 나왔다.

환자도 안도하고, 옆에 있던 동료도 안도한다.

‘오, 예.’

속으로는 뭔가 해결했다는 뿌듯함이 한가득이다. 잔뜩 잘난 척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척’은 따로 있다.

“됐습니다. 환자 퇴원시키세요.”

별거 아닌 척하는 거다.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몇 년 전부터 입원전담전문의가 되어 병동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우리 병동은 주로 내과계 환자를 진료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대부분 내과 전문의다.

그러다 보니 내과 영역을 조금 벗어나는 문제가 생기면 해당 진료과에 협진을 의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실 나 역시 대부분의 문제는 협진을 통해 해결한다. 입원 환자를 오래 진료해 온 동료들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 내가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도움받는 날도 많다. 그런데 가끔은 질문이나 협진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응급의학과 의사는 조금 이상한 종류의 의사다. 어느 한 분야를 아주 깊이 파고드는 대신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온갖 일을 일단 상대해야 한다. 환자는 자기 증상에 맞춰 하나의 진료과를 정해 놓고 아파주지 않는다.

가슴이 아픈 환자 다음에 손가락이 찢어진 환자가 오고, 그다음에는 코피가 멎지 않는 사람이 온다. 그러다 갑자기 심장이 멎은 환자가 들어온다. 그러니 오랫동안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이걸 내가 해도 되나?’보다 ‘일단 한번 봅시다’가 먼저 나오는 묘한 습관이 생긴다.

한마디로 오지랖이 ‘태평양’이 된다.

어느 날 병동에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교수님, 환자 턱이 빠진 것 같아요.”

환자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불편하시죠?”

습관처럼 묻고 나서 바로 아차 싶었다. 턱이 빠져 입도 다물지 못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환자는 대답 대신 아주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턱관절의 상태를 살펴본 뒤 찬찬히 손에 힘을 줬다. 턱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환자는 드디어 입을 다물 수 있었다.

나도 괜히 입을 쩍 열었다 다물어 본다. 뭐 남의 턱을 맞춰놓고 내 턱이 멀쩡한지 확인하는 데 특별한 의학적 이유는 없다.

어떤 날은 중심정맥관 삽입이 잘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는다.

“교수님, 초음파로 혈관 한번 봐주실 수 있어요?”

“네네, 알겠습니다.”

초음파를 끌고 간다. 응급실에서 수없이 들여다봤던 목의 혈관을 다시 찾고, 화면 속 바늘 끝을 쫓으며 관을 넣는다. 잘 들어가면 모두 별말 없이 각자 자리로 돌아간다.

이런 일에는 대개 박수가 없다. 당연하다. 중심정맥관 하나 넣었다고 병동에서 매번 박수를 치기 시작하면 병원이 너무 시끄러워진다.

코피가 아무리 해도 멎지 않는 환자가 생길 때도 있다. 병동에 마땅한 장비가 없으면 응급실에 전화를 건다.

“거기 혹시 그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마치 전 직장에 찾아가 공구를 빌리는 퇴사자가 된 기분으로 응급실에서 기구를 빌려와 코피를 막는다. 오래 몸담았던 응급실은 이제 물리적으로도, 마음으로도 조금 멀어졌지만 급할 때 손 벌릴 수 있는 친정집이기도 하다.

기관 절개관 튜브를 교체하다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연락이 오면 또 달려간다. 입이나 코로 숨을쉬지 못하는 환자에게 기관절개관 튜브가 잘 안 들어간다거나 막힌다거나 하는 것은 언제나 응급이다. 딱히 응급은 아니라도 피부 아래 농양이 생겨 절개하고 고름을 빼내야 할 때나, 피부 밑에 고인 혈종을 처치해야 할 때도 종종 협진 없이 병동에서 블레이드(수술용 칼날)를 든다.

“교수님, 협진 안 내고 직접 하시게요?”

“예전에 많이 했어요.”

아픈 환자분께는 죄송하지만, 이런 순간에는 가끔 나도 모르게 속으로 반가울 때가 있다.

오래전에 본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 이 영화에서, 고(故) 김주혁 배우가 연기한 홍반장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해결한다. 직업이 대체 몇 개인지 알 수 없고, 그 많은 기술을 어디서 배웠는지도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곤란한 일을 당하면 어느새 나타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병동에서의 내가 조금 그렇다.

물론 중요한 차이가 있다.

나는 흉부외과 의사도 아니고, 이비인후과 의사도 아니며, 외과 의사도 아니다. 이런 일을 몇 번 해봤다고 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응급실에서 오래 일하며 얻은 것은 ‘뭐든 다 할 수 있는 능력’이라기보다 낯선 일이 생겨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 습관에 가깝다. 그리고 어디까지 내가 도울 수 있는지, 어디부터는 진짜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감각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입원전담전문의가 된 뒤에야 이런 잡다한 능력들이 병동에서 의외로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환자는 굳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동료는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다. 무엇보다 누군가 곤란해하고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응급실에서 일할 때도 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그때는 턱을 맞추고, 코피를 막고, 관을 넣은 뒤 환자를 보내면 대개 그것으로 끝이었다. 병동에서는 조금 다르다.

다음 날 아침 회진을 하다가 어제 턱을 맞춰드린 환자를 다시 만난다.

“턱은 괜찮으세요?”

코피를 막아드린 환자에게도 묻는다.

“어젯밤에는 안 났어요? 코피가 목뒤로 넘어가지는 않았구요??”

고름을 빼낸 환자의 드레싱도 다시 열어 상처를 들여다본다.

어제 해결한 일이 오늘 어떻게 되었는지 볼 수 있다.

응급실에서는 서로 별개의 ‘사건’이었던 일들이 병동에서는 한 사람의 치료 과정 안에서 이어진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도 응급실 못지않은 재미와 보람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전화가 온다.

“교수님, 지금 잠깐 시간 되세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도 홍반장은 출근해 있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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