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안경은 자동으로 시력을 맞춰줘 안과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에선 이른바 ‘전자동 스마트 안경’을 판매한다는 쇼츠 광고가 노출되고 있다. 안경을 쓰기만 하면 인공지능(AI)이 착용자의 시력 문제를 감지해 렌즈를 자동 조절해 “노안이든 근시든 난시든 상관없이” 시력검사와 렌즈 교체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햇빛에 노출되면 선글라스로 바뀌고 블루라이트를 차단하며 최고 사양의 AI칩까지 장착됐다는 설명도 붙는다. “이스라엘 최고 연구팀과 독일 유명 광학팀이 5년간 연구, 개발했다”, “임상시험에서 사용자 98%가 시력 개선과 눈의 회복을 경험했다”, “최첨단 감광 소재로 제작했다”고 홍보한다. 생산을 중단해 마지막 200대만 남았다거나 5만9200원에 구매할 마지막 기회라며 구매를 재촉하기도 한다.
쇼츠 영상 속 안경이 실제 존재하는지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AI가 알아서 시력 교정? 그런 기술은 아직 없다”
전문가들의 답변은 일치했다. 유튜브 등에 올라온 영상처럼 AI가 착용자의 근시·난시·노안 등을 파악해 도수를 자동 조절하는 제품은 현재 상용화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영근 안경사는 “상식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온라인에서 광고하는 그런 도수 조절 제품은 스마트 안경이라고 할 수 없다”며 “이런 안경을 '스마트 안경'이라고 표현하면 오히려 해당 제품을 스마트 안경으로 승격시키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안과학회 총무이사인 김태임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도 “근거리를 볼 때는 근거리에 맞춰주고 원거리를 볼 때는 원거리에 맞춰주는 기능은 아직 없다”며 “AI가 시력을 알아서 측정해 교정해준다는 기술도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황호식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안과 교수 역시 해당 광고에 대해 “전혀 황당한,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짚었다.
다만 광고 속 ‘AI 만능 안경’이 허위·과장됐다는 것과 자동으로 초점을 바꾸는 안경 기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얘기라고 전했다.
보고 있는 곳 따라 초점 바꾸는 안경⋯기술은 이미 개발 중
실제 시력 교정이 필용한 환자가 바라보는 거리에 맞춰 렌즈의 초점을 자동으로 바꾸는 기술은 국내외에서 개발되고 있다. 연구는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9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공개한 ‘오토포컬(autofocals)’ 안경이 대표적이다. 일명 시선추적 장치인 이 안경은 사용자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파악한 뒤 액체 렌즈의 초점을 바꾼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됐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노안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동초점 안경과 기존 교정법을 비교했다. 자동초점 안경은 여러 거리에서 시력이 더 좋았고 초점을 다시 맞추는 속도도 빨랐다. 다만 착용 편의성은 기존 안경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황 교수도 올해 초 노안 교정을 위한 자동초점 안경 기술 2건의 특허 등록을 마쳤다. 액체 렌즈와 ‘알바레즈 렌즈’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액체 렌즈 방식은 안경 중앙의 라이더(LiDAR·레이저를 이용한 거리 측정 기술)가 물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면 소형 모터가 렌즈의 곡률을 바꿔 초점을 조절한다. 알바레즈 렌즈는 서로 보완되는 형태의 렌즈 두 장을 좌우로 미세하게 움직여 굴절력을 바꾼다.
황 교수는 “특허 등록을 마친 안경 안에는 거리 센서가 있다”며 “멀리 볼 때와 가까운 곳을 볼 때 전기로 렌즈를 조절해 자동으로 초점이 바뀌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눈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방법도 있다. 황 교수는 “가까운 곳을 볼 때는 두 눈이 모이고 먼 곳을 볼 때는 평행해지는데, 이를 데이터로 분석해 가까운 곳을 보고 있다고 판단하면 렌즈를 볼록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버튼 누르면 근거리 초점 강화⋯전자 안경은 이미 판매
연구실을 벗어나 판매되는 제품도 있다.
2024년 미국 뉴욕 ‘비전 엑스포’에서 공개된 ‘뮤어(Muir)’가 대표적이다.
이스라엘 광학기술기업 딥옵틱스가 액정렌즈 기술을 적용해 선글라스와 돋보기 기능을 결합한 제품이다.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면 전기 신호가 렌즈 내부 액정을 변화시켜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추고, 앱으로 스마트폰·노트북 등 사용 거리에 맞춰 초점을 설정할 수 있다. 다만 렌즈 일부에서만 확대되고 초점을 잡는 데 2~3초가 걸리는 한계가 있었다.

벨기에 모로(Morrow)가 개발한 ‘e-프로그래시브(Progressives)’도 있다. 이 제품도 액정 기술을 적용한 전자식 누진다초점 안경으로, 안경테의 버튼을 누르면 전기 신호가 렌즈 내부의 액정을 활성화해 근거리 초점을 강화한다.
연구를 위해 이 제품을 구매해 사용 중인 황 교수는 “평소에는 그냥 다초점으로 보다가 가까운 것을 더 보고 싶을 때 버튼을 누르면 렌즈가 조금 더 볼록해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광고 속 사용자의 시력을 스스로 진단해 근시·난시 등을 자동 교정하는 것은 아니다. 시력에 맞춰 렌즈를 제작한 뒤 전자식 기능으로 근거리 시력을 보조한다.
해당 쇼츠 영상에 등장하는 제품의 중국 내 판매 사이트에도 쇼츠 내용과는 달리 ‘스마트 변초점 노안경’이나 ‘누진다초점·원근 겸용 안경’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황 교수는 “원시나 근시, 난시는 기본적으로 일반 안경처럼 교정해 놓고 그 바깥에 전자식 기능을 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은 있는데 왜 아직 ‘만능 안경’은 없을까
자동초점 기술이 존재하는데도 쇼츠 광고가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시력 교정은 측정된 도수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김 안경사는 “시력이라는 게 그냥 눈만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며 “사람마다 적응할 수 있는 도수의 범위가 다르고, 특히 난시는 어지럼증 때문에 의도적으로 도수를 낮춰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경테와 얼굴 형태도 변수다. 같은 도수라도 눈과 렌즈 사이 거리가 달라지면 착용자가 느끼는 교정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김 안경사는 “눈과 렌즈 사이, 안경테와 눈 사이 거리에 따라서 미세한 도수 변화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무게와 배터리, 디자인도 넘어야 할 벽이다. 센서와 전자부품, 배터리가 들어가면 일반 안경보다 무겁고 테도 두꺼워진다.
황 교수 역시 “안 예쁘면 아무리 좋아도 안 쓴다”며 “기능을 하는 제품은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상품을 만들려면 무게부터 디자인까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경은 깨어있는 내내 착용해야 하는 만큼 배터리 기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래 기술은 맞지만 영상 광고에 현혹되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쇼츠 영상의 미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당장 쇼츠 영상 속 '가짜 정보'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주의를 요청했다.
김태임 교수는 “아직까지는 어렵다”면서도 “최근 국내외에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도 기술적 구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봤지만 현재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값싼 제품이 이런 첨단 기술을 구현했다는 주장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확실한 것은 싸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며 소비자들이 광고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안경사는 온라인에서 자동 도수 조절 기능을 내세우는 제품에 대해 “스마트 안경이라고 할 수 없다”며 허위·과장 광고라면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