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05일 (월)

한 달 훌쩍 넘은 간병⋯80대 보호자의 약이 떨어졌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40 ‘보호자’라는 이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이미지=챗gpt 생성

85세 남성 환자였다. 간문부 담관암으로 간절제술과 담도-공장문합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담즙 누출이 생겨 보존적 치료를 위해 입원이 길어지고 있었다. 수술 전에도 황달을 동반한 담관염으로 2주 가까이 입원해 있던 상태라, 총 입원 기간은 한 달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간병은 비슷한 연세의 아내가 맡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보호자였다. 지방에서 함께 올라온 아내 역시 당뇨, 고혈압, 경도인지장애가 있었다. 집이 해남 땅끝마을에 가까운 곳이라 인근에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있었지만 생업 때문에 수도권까지 자주 오기는 어려운 사정이었다. 5인실 병실 한 칸에서 두 분은 늘 조용히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지냈다. 회진 때 불편한 것이 없냐고 여쭈어보아도 보호자는 그냥 웃었고, 환자는 별일 없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별일 없다고 하던 환자가 말했다.

“이 교수님,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니⋯. 한 번도 부탁이라는 말을 꺼낸 적 없는 분이었다. 그 단어 하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렵게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예상보다 입원이 길어지다 보니 보호자가 챙겨 온 약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보호자는 멋쩍게 웃었다.

고지혈증약, 고혈압약, 당뇨약, 신경과약. 이것들을 복용하지 않으면 보호자가 환자가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간병하던 보호자가 심정지로 발견되었다거나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거나 하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일단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고 회진을 마쳤다.

가장 쉬운 방법부터 생각했다. 아들 내외에게 연락해서 약을 갖고 올라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이 너무 멀었다. 차로도, 기차로도 만만치 않은 거리였고 생업 때문에 갑자기 올라오기도 어려웠다.

다음 방법을 생각했다. 두 분께 1층 외래에서 당일 진료를 예약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환자는 몸에 여러 관이 달려 있어 이동이 어려웠고, 그렇다고 보호자 혼자 외래에 다녀오기도 쉽지 않았다.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보호자는 병실에서 일상적인 대화나 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낯선 외래 동선과 절차를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병실에서도 의사결정은 늘 환자가 해왔다.

결국 마지막 방법으로, 타과 교수님께 부탁해 보호자를 외래에 등록하고 일주일 치 약만 처방받기로 했다. 그 사이 아들 내외가 올라올 날짜를 정해 원래 드시던 약을 챙겨오기로 했다. 약을 받아 두 분께 가져다드렸다. 보호자가 겸연쩍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이후에도 환자는 2주가량 더 입원해 있었다. 그 사이 아들이 한차례 다녀가며 보호자 약도 충분히 주고 갔다고 회진 때 환자가 알려줬다. 다행히 담즙 누출이 잘 멎고 열도 없이 컨디션이 좋아진 상태로 환자는 퇴원하였다.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이 일을 겪으며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학생 강의시간에 ‘시스템 사고’를 가르치면서, 환자를 치료할 때는 그를 둘러싼 여러 환경과 관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족, 즉 보호자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보호자가 환자보다 더 아파 보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의료 시스템은 그 보호자들의 건강과 안위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을까. 적어도 입원전담전문의라는 자리는, 환자를 돌볼 때 보호자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어디까지가 내 역할인지, 어디까지 해결해 드려야 하는 것인지. 할머니인 보호자의 약 처방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속 고민했다. 아직도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아마 또 방법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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