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tea)는 서양에서도 ‘cha’로 불릴 뻔했다”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⑥ 1543년, 그리고 포르투갈

[사진=클립아트코리아]
1543년은 근현대 세계사를 열어 젖히는 중요한, 한 페이지에 해당한다. 이 해를 폴란드, 벨기에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들이 장식한다.

폴란드 태생의 코페르니쿠스가 그해,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를 간행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저서에서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천문학 역사에 금자탑을 세웠다.

우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을 뒤집은 이 이론은 갈릴레오, 뉴턴 등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과학적 사고방식과 연구 방법에 혁명을 가져왔다. 책의 가치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근대 과학혁명 최고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 벨기에 출신의 베살리우스는 ‘인간의 구조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 Fabrica)를 출판한다. 이 인체 해부학 저서는 사람 몸의 구조를 정교하게 묘사하였을 뿐 아니라 매우 정확한 인체해부도를 포함하였다. 정확한 관찰에 의한 기록이라는 과학 방법론의 기초가 되었고, 해부학 교육에 혁신을 이루었다.

해부학의 진전은 국소 병리학의 후속 발전을 이끈다. 모르가니, 비샤, 비르호를 거치면서 질병이 국소 부위에 자리 잡는다는 현대의학 병인론이 수립되었다. 질병이 국소에 자리 잡으니 이를 찾으려는 타진법, 청진법, 그리고 X-ray를 이용한 병의 진단법이 수립되었다. 이에 국소 부위를 치료하는 외과 수술도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다.

1543년, 유럽은 코페르니쿠스와 베살리우스로 엄청난 과학혁명을 이룬다

유럽에서 과학혁명의 초석이 된 폴란드와 벨기에 출신 과학자들과 달리, 포르투갈 사람들은 동양으로 직접 넘어와 서양문명의 동양 전래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기록한다.

이미 16세기 초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들어온 포르투갈인들은 중국과의 무역이 막혀 애를 먹는다. 이전에는 아랍인들과 평화롭게 무역을 이어가던 명나라가, 기독교 선교와 후추 무역을 목적으로 아시아로 들어온 포르투갈과는 무역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은 총과 선교사를 동반한, 해적 비슷한 행위로 중국과의 교역을 위협적으로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1543년 마침내 일본에서 돌파구를 만든다.

그해 8월 25일, 일본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다네가시마(種子島)라는 작은 섬에 표류하던 배 하나가 정박하였다. 배 안의 포르투갈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속이 뚫린 철제 막대기를 보여줬다.

열다섯 살이었던 다네가시마 도주(島主) 도키타카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호기심을 보였다. 포르투갈인들은 막대기 끝에 불을 붙였다. 번개 같은 빛과 천둥소리가 터지며 겨냥하였던 술잔이 박살 났다.

조총(화승총)은 이렇듯 강력하게 일본에 소개되었다. 도키타카는 조총을 사들였다. 조총은 곧 일본화(日本化)되어 제작되었고, 삽시간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총은 일본 전국시대 영토 다툼에 사용되었고, 조총을 쥔 오다 노부나가는 패권을 장악하고 천하 통일을 이룬다.

일본은 이후 조선을 침략하는데 이 총을 앞세웠다. 조선 침공 때 도키타카의 아들 히사토키도 참전하였다. 포르투갈은 일본에서의 약진을 바탕으로 후에 중국에서도 마카오를 조차하는 등 아시아를 한때 지배한다.

코페르시쿠스와 베사리우스의 저서, 그리고 포르투갈 전래 조총과 일본 생산 조총. [사진=유영현 제공]
그러나 포르투갈의 아시아 지배는 오래가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신부를 파견하는 등 일본의 대서양 창구 역할을 하였던 포르투갈은 17세기 초 일본 내 기독교 세력 팽창에 위협을 느낀 일본 지배층에 의하여 쫓겨난다.

포르투갈, 아시아에 '조총'을 주고 '차'를 가져가다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포르투갈은 신흥 강국 네덜란드와 영국에 밀려난다. 하지만 1543년의 조총 소개 이후 반세기 동안, 포르투갈은 의학과 차(茶)의 동서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르투갈 출신 의사이자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데 알메이다(1525~1583)는 1549년 일본에 도착하였다. 처음은 상인으로 입국하였으나 곧 예수회 선교사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접촉하여 선교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1556년에는 히라도에 병원을 세웠다. 알메이다 병원은 일본에 설립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며 서양의학 지식을 전파하고 의료 서비스를 베푼 혁신적인 기관이었다.

후에 알메이다는 나가사키로 이동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나가사키에서는 또 다른 병원도 설립하였으며, 더 많은 일본인에게 서양의학을 전파하였다. 나가사키 병원은 보육원 역할도 겸하여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도 하였다.

알메이다 병원에는 일본 최초의 의학 학교가 병설되었다. 알메이다는 1583년 일본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양 의술과 기독교 전파에 큰 역할을 하였다.

포르투갈 상인과 선교사들은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에서도 서양의학을 전파하였다. 인도의 고아에는 포르투갈이 설립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있었다. 말라카와 마카오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서양의학을 전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일본에서의 역할에 비하면 발자취는 뚜렷하지 않다.

그 이유는 포르투갈이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포르투갈이 아시아에 머물던 16세기에는 서양의학이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여 동양의학에 특별히 우위를 얻기 전(前)이었기 때문.

유럽에 차를 소개한 가스파르다 크루스, 그리고 루이스 프로이스

포르투갈인들은 차를 문헌으로 소개한 초기 인물들에 포함되어 있다. 사제이자 선교사 가스파르다 크루스는 동아시아를 방문하면서 보고 경험한 내용을 글로 남겼는데 1569년 발간한 책(‘Teratado das Cousas da China’)에서 중국의 차문화를 다루었다. 이를 “서양인이 쓴, 차에 대한 첫 기록”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고귀한 가문에서는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차’(cha)라고 하는 음료수를 대접한다. 이것은 약간 쓰고 붉은색이 감도는 데, 몇 가지 약초와 혼합해 만든다.”

이 책은 유럽인들에게 차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이바지하였다. 또 다른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1563년 일본에 도착하여 수십 년 동안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 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글을 남겼다. 특히 책(‘Historia de Japam’)에서 일본인의 차문화와 다도(茶道)를 소개하였다.

이 두 선교사는 유럽에 차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이전에 차를 소개하였다는 점에서 차 전파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포르투갈에서는 차가 다른 서양 국가와 달리 ‘티’(tea)가 아닌 ‘차’(cha)로 불린다. 차의 어원은 두 가지다. 중국 남방 광둥(廣東)말로는 ‘차(cha)’에 가깝다. 차를 영어로 cha와 유사하게 쓰는 나라들은 이 광동어 발음을 차용한다. 육로로 차가 전파된 일본, 한국, 아랍, 튀르키예(Turkiye, 옛 ‘터키’), 러시아에서 ‘차’로 불린다.

반면, 푸젠성(福建省) 말로는 ‘테(Tay)’에 가깝다. 차를 영어로 ‘Tea’와 유사하게 쓰는 나라들은 이쪽 말로 발음하는 셈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바닷길로 차를 접한 유럽 대부분 국가는 차 이름을 Tea, Tee, The, Tay, Thee 등으로 부른다.

차(茶)를 'tea'라 말하는 나라와 'cha'라 말하는 나라

한편, 포르투갈은 서유럽에 속해 있고 해로(海路)로 차를 수입하였으면서도 ‘차’라 부른다. 포르투갈의 아시아 본거지가 마카오이고, 마카오는 광둥에 소재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차를 만난 포르투갈 왕실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일찍 차를 마셨다. 포르투갈 출신 카타리나 공주가 찰스 2세와 혼인하기 위하여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항구에서 차를 요구하여 당시 차를 마시지 않던 영국인들에게 차가 유명하여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은 자신들이 일찍 차를 접하고 글로 소개하였을 뿐 차의 유럽 전파에 크게 이바지하지는 않았다.

‘차’를 수입하였던 포르투갈의 아시아 지배가 17세기에도 이어졌다고 가정해본다. 그들은 17세기에도 아시아의 특산품을 가져와 유럽 전역으로 공급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17세기 ‘티’를 수입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 전파하는 역할도 네덜란드와 영국대신 포르투갈이 맡았을 테다. 그렇다면, 지금 서양인들은 ‘티’ 아닌 ‘차’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유영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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