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치매원인에 작용하는 먹는 약 개발…글로벌 1150명 임상 중”

[헬스케어 기업탐방 3 아리바이오]

아리바이오 정재준 대표 [사진=아리바이오]
치매는 ‘기억이 사라진다’는 공포와 더불어 가족들의 고통이 크기 때문에 노년기 공포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2020년 기준 만 65세 이상 인구에서 유병률이 10.3%일 정도로 흔한 노년 질환이 됐다.

‘치매 정복’은 의학계와 제약바이오 업계의 오랜 과제였지만, 본격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2021년 바이오젠의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 7월엔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미국에 이어 일본, 중국에서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선 ‘AR1001’의 글로벌 임상 3상시험에 진입한 아리바이오가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구용 다중작용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 중인 AR1001은 2022년 12월 미국 임상 3상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코메디닷컴은 최근 판교 아리바이오 본사를 찾아 정재준 대표를 만났다. ‘AD/PD(알츠하이머-파킨슨병 컨퍼런스)2024’ 참가를 위해 포르투갈 리스본을 방문했다가 전날 귀국했다는 정 대표는 시차와 장거리 비행에 지쳐보였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두 눈이 이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세계 유일 경구용 다중작용 치매치료제

정재준 대표는 AR1001에 대한 설명으로 회사 소개를 대신했다. 자사 파이프라인 중 가장 앞선 개발 단계에 있는 AR1001은 세계 최초 ‘경구용 다중 작용’ 치매 치료제다. 현재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이 진행 중이다.

“현재 개발 중인 대다수의 치료제는 알츠하이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기 위한 항체들이다. 그런데 과연 아밀로이드만이 알츠하이머의 원인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우리의 문제 의식이다. AR1001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AR1001은 PDE5 억제제다. 본래 발기부전 치료제로, 화이자의 ‘비아그라’나 일라이릴리의 ‘시알리스’가 같은 작용 원리를 공유한다. 2021년 11월경 미국 클리블랜드 대학 연구팀이 PDE5 억제제 계열 약물의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를 발표하며 치매 치료제로서의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리바이오는 앞선 논문과 글로벌 학회 발표 등을 통해 AR1001의 다양한 치료 효과를 증명한 바 있다. 뇌 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고 생성을 촉진하며, 뇌 신호 전달체계 활성화, 시냅스 가소성(세포·분자 수준에서 변하는 능력) 증진, 독성 단백질 제거 등 다양한 작용을 한다. 물론 알츠하이머의 주요 바이오마커인 타우 단백질이나 염증 관련 지표에서도 우수한 개선 효과가 입증됐다.

특히 지난해 삼진제약이 1000억원을 투자해 AR1001의 국내 판매권을 사들였다. 최근에는 중국의 한 제약회사가 아리바이오와 총 계약 규모 1조원이 넘는 중국 판매권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충분한 상업화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현재 글로벌 치매치료제의 개발 트렌드는 병용 투여다. 다양한 원인을 동시에 정상화하기 위해 여러 약물을 섞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한 가지 약물만으로도 병용투여 효과를 낼 수 있는 AR1001이 국제학회에서 주목받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주사제가 아닌 ‘먹는 약’이라는 것도 AR1001의 특징이다. 기존에 허가를 받은 약물은 모두 주사제다. 병원에 가서 맞아야 하고 투여 뒤 4시간 대기하다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여러 차례 촬영해야 한다. 뇌 부종이나 뇌출혈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경구용 치료제인 AR1001은 부작용 위험을 5% 미만으로 크게 낮춘 한편 환자가 집에서도 복용할 수 있어 편의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대표는 “당사가 최종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치매 예방’ 영역으로 확장하면 편의성이라는 이점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경구용 치매치료제 ‘AR1001’을 비롯한 자사 주요 파이프라인을 실험하고 있는 아리바이오 연구실. [사진=아리바이오]
임상 진행 자체보다 중요한 건 ‘임상 경험’

AR1001은 2022년 말 미국에서 임상 3상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올해 2월 환자 모집과 투여에 돌입한 상황이다. 3월에는 영국에서 임상 3상 허가를 받았고 프랑스·독일 등 EU 7개국과 중국에서도 상반기 내 허가 후 환자 투약이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글로벌 임상 3상은 약 180~200개의 센터에서 11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대규모 자본과 시간이 투입되는 작업이다. 치매 치료제의 글로벌 임상 3상까지 도달한 기업 중 아리바이오는 유일한 비상장 기업이다. 그럼에도 대규모 글로벌 임상이 가능한 이유는 아리바이오가 가진 최대의 무기, ‘경험’ 덕분이다.

국내 제약사나 바이오텍이 글로벌 임상을 진행할 때는 보통 CRO(임상수탁기관) 한 곳에 임상 설계와 진행을 위탁한다. 반면 아리바이오는 임상 모니터링, 데이터 측정, 통계 작업, 약물 공급 등 임상의 전 단계를 세분화해 각각의 단계에 별도의 CRO를 고용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CRO가 임상 전체를 주관하면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비용 집행이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어떤 단계에서 생각보다 진전이 더딘지, 어떤 부분은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계획과 실제 진행 면에서 어떤 부분이 다르고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하려면 기업이 직접 전 단계에 관여해야 한다.”

이러한 임상 구조가 가능하려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역량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아리바이오 직원 101명 중 연구 인력은 46명이며, 이 중 23명이 석·박사 이상 연구원이다. 한·영 생명과학연구협력센터와 케임브리지대 생명공학연구소를 거쳐 10년 넘게 영국 현지에서 연구개발과 임상 과정 컨설팅을 제공한 정 대표가 이들을 이끌고 있다.

미국 현지 임상을 총괄하는 ‘아리바이오 샌디에이고 지사’ 역시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 프레드 킴 지사장을 비롯해 워싱턴대 신경과 교수 출신의 데이비드 그릴리 CMO, 에자이에서 레카네맙 개발과 허가를 함께 한 모니카 킴 박사 등 22명의 글로벌 임상팀이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조율한다.

“아리바이오는 작은 회사다. 이번 임상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다. 임상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 역시 회사에 큰 자산이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다음은 정재준 대표와의 일문일답.

-AR1001 외에도 여러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것으로 안다.

“타우 병변 알츠하이머를 겨냥한 AR1002와 중증 치매를 커버할 수 있는 AR1003이 있다. 희귀병인 ‘루이소체 치매’ 치료제 AR1005도 개발 중인데, 세브란스병원에서 실시한 전임상 결과를 연내 발표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라 의료진과 연구진의 기대가 크다.”

-최근 전자약 ‘헤르지온’ 개발을 발표했다. 어떤 원리로 작용하나?

“파동을 이용해서 치매 예방에 도움을 주자는 아이디어로 탄생한 전자약이다. 환자가 착용하면 음파와 함께 음악이 재생되는데, 신경세포를 활성화하고 뇌를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진 40헤르츠 파동을 주는 원리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신개발의료기기 허가 도우미에 지정되는 등 개발 가능성 자체는 인정받은 상황이다.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웰니스 기기’와 환자 대상 ‘의료기기’ 양 쪽으로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상장 문턱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셨다. 아리바이오의 상장 방식이나 절차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인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심사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내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과학자로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오랜 시간 믿고 기다려주는 주주들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선택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다만 현재 회사의 모든 역량은 임상에 집중하고 있다. 곧 유럽과 중국 임상 3상까지 시작하게 되면 당분간 임상에 계속 주력해야 한다.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과 주주들의 권익 보호 등을 고려해 연내에는 ‘어떻게 하겠다’고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궁극적인 목표와 비전은?

“현재 주목받고 있는 AR1001을 비롯한 핵심 파이프라인은 알츠하이머 치료제지만, 궁극적으로 아리바이오는 퇴행성 뇌질환 전문 기업이 될 것이다. 알츠하이머, 루게릭, 루이소체 치매, 파킨슨병 등은 서로 공유하는 메커니즘이 분명히 있다. 다양한 질환으로 확장해서 뇌질환을 정복하는 것이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임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형태의 협력도 구상하고 있다. 바이오텍이나 중견 제약사들을 모아 서로의 경험과 시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임상 효율성만 끌어올려도 국내 신약 개발의 발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여기에 기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장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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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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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4-03-28 08:56:38

      아리바이오 화이팅 하십시요.치매에 효과가 좋은약이 개발 되기를 간절히 기원 합니다.좋은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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