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연구실엔 꼭 '실험방해 귀신'이 숨어있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6: Yoo SH, Kim HY, Rho JH, Jeong SY, Yun J, Yun I, Park HT, Yoo YH. Targeted inhibition of mitochondrial Hsp90 induces mitochondrial elongation in Hep3B hepatocellular carcinoma cells undergoing apoptosis by increasing the ROS level. Int J Oncol. 2015;47:1783-1792.

■사람: 유승희(박사과정)
■학문적 의의: Hsp90 표적제어에 의한 세포사에서 Drp1 역할 규명

암세포를 죽이기 위하여 항암제를 사용하지만, 암세포는 여러 수단으로 항암제에 저항한다. 그래서 암 연구자들도 암세포가 발휘하는 저항을 우회하는 길을 찾으려 노력한다. 유승희의 박사학위 주제도 암세포의 저항을 우회하는 전략이었다.

유승희는 우연한 계기로 내 지도 학생이 되었다. 석사과정 진학을 약속하고 신학기 되어 P 교수를 방문하여 당황하게 된다. P 교수는 연구비 사정이 나빠져 유승희를 지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P 교수는 유승희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나는 엉겁결에 유승희를 지도하기로 정하였다. 서먹서먹하게 시작한 때문인지 초기 실험실에서는 적응이 쉽지 않았고 자료 산출도 더디었다. 하지만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경험도 늘고 성실성도 더해졌다.

그런데 박사학위 실험에 돌입하고 자료 산출이 너무 더디었다. 세포가 자주 감염되었고 정립된 프로토콜에 따라 실험하였음에도 제대로 된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전 세계 실험실에서는 “실험을 방해하는 귀신이 (숨어)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퍼져있다. 우리 실험실 구성원들도 이 귀신이 유승희 박사학위 실험을 훼방하고 있다고 숙덕이기 시작하였다.

대학원 재학 중 학회에 참석한 유승희 박사(앞줄 왼쪽 첫번째). [사진=유영현 제공]
랩 미팅 때마다 기가 죽어 보고하는 유승희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해결책이 필요하였다. 문제를 해결하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해결책은 박사학위 주제에 들어있었다.

길이 막히면 돌아가야 한다. 나는 "박사학위 주제를 잠시 내려놓고 다른 연구에 참여하라"고 권유하였다. 암세포 저항성 우회 전략을 연구하기 위하여, '실험방해' 귀신을 우회하는 전략을 세운 셈이었다.

잇단 실험 실패...HBx 단백 거쳐 간암세포 저항성 우회로 돌파구

유승희가 새롭게 투입된 연구는 ‘코메디닷컴’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에서 스물세 번째로 다룬 HBx 단백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에서 유승희는 항암제 쏘라페닙이 효율적으로 세포사를 유도하는 기작을 밝혀내는데 이바지하였다.

이런 자료를 얻어 낸 뒤 유승희는 다시 본인의 학위 주제로 돌아갔다. 우회하면서 귀신을 멀리 따돌렸는지, 다시 학위 실험에 돌아온 뒤에는 자료가 순조롭게 얻어졌다.

유승희는 간암 세포에서 Hsp90을 표적 억제하여 치료 저항성을 우회하는 전략을 수립해 나갔다. 특히 이렇게 유도한 세포사에서는 미토콘드리아 길이가 길어진다는 현상도 발견하였다. 우회 전략이 통하여, 늦지 않게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대부분의 연구 책임자는 학생이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후 1~2년 동안 실험실을 지키면서 연구를 연장하여 주기를 희망한다. 대학원생의 연장이니 적은 임금으로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 박사후과정)을 고용하는 효과가 있다.

익숙한 환경과 주제로 연구 결과를 신속하게 산출할 수도 있다. 나도 유 박사가 실험실에 당분간 큰 힘이 되리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유 박사는 내 그런 기대에 벗어나는 소식을 들고 나타났다. 결혼 소식이었다.

(경남 남해에서의) 결혼 예식 덕에 나와 아내는 남해 '독일마을'에서 하루 숙박하며 독일 소시지를 실컷 먹었다. 곧 아들 출산 소식이 들렸다.

유 박사의 학위 자료 취득 방해를 우회하기 위하여 세운 내 전략은 내 실험실 문제보다는 더 큰 문제인 국가의 부족한 출산율을 해소하는 우회 전략이 되었다. 다만, 유 박사가 연구기관이 없는 남해에서 계속 살게 되어 연구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점은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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