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비대성 심근병증’ 표적 치료길 열렸다

[바이오VIBE]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밀린드 데사이 교수

클리블랜드 클리닉 밀린드 데사이 교수.

“비대성 심근병증 치료 분야에도 새로운 길이 열렸다. 단순히 증상 완화에 치료의 초점을 맞췄던 과거와 달리, 병의 발생 원인을 집중 공략하는 표적 치료제의 등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심장 구조가 변형되면서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난치성 질환 ‘비대성 심근병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이하 HCM)’. 지금까지 약물 치료법도 딱히 없었다. HCM 치료만을 위해 승인을 받은 약제가 없었기에, 환자의 증상 완화를 위한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 디소피라미드 등의 관상동맥질환 치료제를 대신 적용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졌다. 이 마저도 효과가 없다면, 수술을 통해 비대해진 심장 근육 부위를 절제하는 중격축소술(Septal Reduction Therapy, SRT)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런데, 상황이 바꼈다. HCM의 근본적인 발생 원인을 조절하는 표적 약물이 처방권에 진입한 것이다. 최초의 표적 치료 옵션으로 평가되는 ‘캄지오스(성분명 마바캄텐)’는 심장 근육의 액틴과 마이오신 섬유의 과도한 교차결합을 직접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적정한 수의 액틴과 마이오신이 결합할 수 있도록 조절함으로써 과도한 심장 수축을 정상화하고, 변형된 심장 구조와 이로 인한 증상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실제 임상 효과도 두드러졌다. 기존 약물과 다르게 심장 근육의 마이오신을 직접 억제해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의 증상과 운동능력을 눈에 띄게 개선시켰다. 대표적인 임상시험인 EXPLORER-HCM 연구 결과 하루에 한 번 캄지오스를 복용한 환자의 약 절반(49.6%)이 무증상 수준으로 증상이 개선됐으며, 74%의 환자가 중격축소술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폐색됐던 좌심실 유출로가 개선됐다.

최근 코메디닷컴과 만난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순환기내과 밀린드 데사이(Milind Y. Desai) 교수는 “그동안 사용된 베타차단제, 칼슘채널차단제 등의 관상동맥질환 약물들은 간접적인 효과로 인해 장기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고, 치료 후에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수술 등을 고려해야 했다”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꼈다”고 평가했다.

캄지오스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서는 증상이 개선되는 동시에 비대해졌던 심장 근육의 두께와 크기가 적정 수준으로 줄어들고, 뻣뻣해졌던 심장 근육도 해결됐다는 것이다.

데사이 교수는 캄지오스 임상연구에 참여한 글로벌 심장병 권위자로, 현재 국제학술지인 ‘란셋(Lancet)’과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매디슨(NEJM)’ ‘미국심장학회지(JACC)’ 등의 저널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캄지오스의 등장 이후 HCM 치료 환경이 변화하면서 유럽심장학회(ESC) 역시 2014년 이후 약 9년 만인 올해 8월 심근병증 관리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개정했다. 이에 따르면, 심장 좌심실 유출로가 폐색된 성인 심근병증 환자에서는 증상 개선을 위해 캄지오스를 2차 치료제로 사용하도록 강력 권고(Class IIa, 근거수준 A)하고 있다. 지침상 전체 약물치료 옵션 중 근거수준이 가장 높은 ‘A’로 권고된 약제는 캄지오스가 유일하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올해 5월 아시아 지역 최초로 허가 작업을 끝마친 데 이어, 실제 처방이 시작되면서 치료 환경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

데사이 교수는 “과거 HCM 가이드라인은 개별 기관에서 보고된 소규모 관찰 데이터나 후향적 분석 결과, 전문가 합의 의견 정도의 근거만을 바탕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며 “실제로 2014년 이후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침을 개정할 만한 수준의 임상데이터를 보고한 약제가 없었으며, 권고 약물 중 근거수준이 B보다 높은 옵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캄지오스는 대규모 임상 3상 연구 두 건을 통해 개선 효과를 확인하면서 이번에 개정된 ESC 가이드라인에서도 약물 옵션 중 처음으로 가장 높은 근거수준인 A로 권고를 받았다”며 “현재 HCM 치료에서 A 수준의 근거를 인정받을 수 있는 약제는 캄지오스가 유일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데사이 교수는 “미국심장학회(ACC)와 미국심장협회(AHA)에서도 가이드라인 업데이트를 준비 중으로 내년 초에 새로운 발표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HCM 진단을 받은 환자는 증상이 있다면 베타차단제 등과 같은 1차 옵션으로 치료를 시작한 뒤 치료 경과에 따라 무작정 약물의 용량을 늘리며 치료를 지속하기보다 적절한 시점에서 캄지오스로 전환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데사이 교수와 일문일답.

클리블랜드 클리닉 밀린드 데사이 교수.

Q. HCM 유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환자 발생 추이는 어떤가.

데사이 교수- 현재 전 세계 HCM 유병률은 500명 중 1명 또는 200명 중 1명으로 추정되나 이 중 약 85%의 환자는 오진 또는 미진단, 과소진단으로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HCM 질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환자 수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다. 이렇게 환자 수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최근 검사법이 발전하고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한 영향이 있다. 과거에는 발견하지 못했거나 지나쳤던 증상들을 검사할 수 있게 됐고, 신약으로 치료를 시도할 수 있는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노력이 진단율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HCM 환자의 약 2/3가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oHCM)’에 해당한다. oHCM은 비대성 심근병증 중에서도 비대해진 근육이 심장에서 혈류가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나가는 좌심실 유출로 부위를 막고 있는 유형이다.

Q.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데사이 교수- HCM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증상이 발현돼 검사를 통해 진단을 받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HCM 진단을 받은 환자의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연쇄선별검사(cascade screening) 방식으로 유전자 검사, 영상의학검사를 실시해 더 많은 환자를 찾을 수 있다. 끝으로 인공지능(AI)과 머신 러닝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HCM을 진단할 수 있는 심전도 검사, 심초음파 검사, 심장MRI 등의 검사에 AI와 머신 러닝을 적용해 대규모 데이터로부터 질환을 판독할 수 있는 특징을 추출해 진단에 활용하는 것이다.

Q. EXPLORER-HCM 임상 결과 캄지오스 치료 후 환자들의 증상과 운동 능력이 유의하게 개선됐다. 비대해진 심장 구조나 형태 자체에도 변화가 생겼나.

데사이 교수- 해당 임상에서 캄지오스는 위약(가짜약)군 대비 1차, 2차 평가변수 모두를 유의하게 개선시켰다. 각 복합평가변수(▲NYHA 등급 1단계 이상 개선+pVO2 1.5. mL/kg/min 이상 증가, ▲NYHA 등급 유지+pVO2 3. mL/kg/min 이상 증가)를 충족시킨 환자 비율이 위약군보다 캄지오스군에서 모두 높게 나타났다. 좌심실 유출로 압력차가 정상 수준에 가깝게 회복된 환자와 삶의 질이 개선됐다고 답변한 환자 비율 역시 위약군보다 캄지오스군에서 더 많았다. 전반적으로 캄지오스는 모든 평가변수에서 위약군보다 유의한 개선 효과를 확인하며 안전성과 유효성 모두에서 우수한 약물인 점을 확인했다.

EXPLORER-HCM 임상에서 30주 간 확인된 캄지오스의 효과를 추가 관찰한 장기 임상인 EXPLORER-LTE 연구에서도 캄지오스의 효과가 약 4~5년 간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EXPLORER-HCM 임상에서 확인됐던 효과가 지속됐을 뿐만 아니라 캄지오스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비대해졌던 심장 근육 두께와 크기가 적정 수준으로 줄었으며, 뻣뻣해졌던 심장 근육 문제도 해결됐다.

Q. 실제 진료현장에서 확인한 캄지오스의 치료 성적은 어땠나? 환자들의 예후 변화와 만족도가 궁금하다.

데사이 교수- 미국 전역에서 약 7천명의 환자가 캄지오스로 치료를 받고 있다. 캄지오스 치료 후 투약 중단을 결정한 비율은 약 2.2%로 임상연구에서 보고된 결과보다 낮은 수치이다. 약물치료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중격축소술(SRT) 진행이 필요한데 SRT는 절대 쉬운 수술이 아니다. 현재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캄지오스 치료를 받는 환자 중 SRT가 필요했던 사례는 없었으며, 타 의료기관에서 SRT를 받았음에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캄지오스 치료를 시작한 환자들도 긍정적인 예후를 보이고 있다.

Q. 유전자 변이 종류를 비롯해 고혈압이나 비만 등 다른 기저 질환을 동반한 환자에서도 치료 효과가 동일했나.

데사이 교수- 캄지오스는 유전자 변이 종류에 관계없이 유의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허가사항에 부합하는 모든 oHCM 환자들은 캄지오스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증상 개선 뿐만 아니라 운동 능력 개선 효과도 있기에 비만, 고혈압 동반 환자들도 적정 강도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면 체중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캄지오스 치료로 심장 상태와 기능이 개선되면, 이전에 사용이 어려웠던 칼슘채널차단제 등의 고혈압 약제도 사용할 수 있게 돼 보다 용이하게 혈압을 관리할 수 있다. 즉, 캄지오스 치료를 통해 전반적인 심장 컨디션이 회복되면 동반 질환 치료와 관리에도 부가적인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Q. 최근 다른 심장병 치료제들도 심장 리모델링에 대한 효과를 보고하고 있다. 해당 치료제들과 캄지오스는 어떻게 다른가.

데사이 교수- 캄지오스 외 치료제들은 HCM 치료를 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거나 승인을 받은 약물이 아니다. 더욱이 소규모 관찰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HCM에 대한 치료 효과를 추정할 뿐이다. 반면 캄지오스는 2개의 대규모 3상 연구를 통해 다양한 임상적 양상을 가지고 있는 oHCM 환자에서 효과를 확인했다. 이는 단순히 사후분석 방식으로 도출된 연구 결과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로 유의미한 결과이다.

    원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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