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 ‘가명 정보’로 빅 데이터 시장 연다고?

문재인 정부가 가명 정보를 통해 빅 데이터, 클라우드, 마이데이터 등 데이터 산업 분야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31일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서 이 같은 방침을 내놨다. 이번 행사는 의료 기기 규제 완화, 인터넷 전문 은행의 은산 분리 규제 완화에 이은 세 번째 규제 혁신 현장 행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터 경제는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우버, 에어비엔비 등 해외 데이터 산업을 예로 들었다. 문 대통령은 국가 기술 자격 신설로 데이터 전문 인력 5만 명 양성, 데이터 강소 기업 100개 육성 계획을 언급하며 “데이터의 적극적인 개방과 공유로 새로운 사업을 도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동의 없는 가명 정보 활용, 대체 누가 합의?

문제는 의료, 금융 등 민감한 개인 정보에 대한 조치다. 이날 정부는 데이터 산업계에 개인이 알아볼 수 없도록 안전하게 조치한 ‘가명 정보’ 개념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가명 정보는 개인 정보 원본의 식별성을 낮춰 해당 개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조치한 정보다. 이번 산업 육성책에 따르면, 기업은 가명 처리한 정보를 개개인의 동의 없이 상업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명 정보를 만들어 내기 위한 비식별 처리 방식 및 수준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충분치 않다. 개인 정보 데이터 처리에 관한 논의는 최근 대통령 직속 4차 산업 혁명 헬스케어 특별위원회를 통해 몇 차례 이뤄진 바 있다.

4차 산업 혁명 헬스케어 특위는 2016년 6월 만들어진 ‘개인 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지난 2월, 4월 ‘4차 산업 혁명 위원회 규제 혁신 해커톤’ 행사를 진행했다. 정부, 산업계, 시민 단체 등이 참여한 해커톤 행사에서는 가명 정보, 익명 정보 등 데이터 처리 방식에 관한 방향성이 논의됐지만 참가자 간 입장차를 줄이지 못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3차 해커톤에서는 가명 정보의 활용 목적과 범위 등을 정리했으나 가명 정보의 정의, 가명 정보 비식별을 위한 처리 기술 수준 등 구체적인 사항은 합의에 이르지 못 했다. 지난 6월 보건의료계 시민 단체는 제3차 해커톤에서 논의된 가명 정보 활용안에 대해 “의료 정보의 상업적 허용은 불가”라는 반대 성명을 낸 바 있다.

좌미애 4차 산업 혁명 위원회 총괄기획팀 서기관은 “‘가명 정보’의 정의 및 처리 수준은 개인 정보 보호법에 의해 정의돼야 할 것으로 제3차 해커톤 이후 위원회 차원에서 추가 논의한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가명 정보 정체 무엇? 정의도 관리 방침도 ‘없다’

정부가 발표한 가명 정보의 정체는 아직 명확치 않다. 일부 매체는 ’30대 여성 김선예’라는 원본 정보를 ’30대 여성 김진희(가명)’로 변환한 것을 가명 정보라고 소개한다. 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가명 정보의 정의, 처리 수준이 아직 명확치 않다고 말했다.

김상광 행정안전부 개인정보보호정책과 과장은 “모법에는 가명 정보의 정의 등 기본적인 근거를 담되 가명 정보 처리의 수준 등 구체적인 내용은 대통령령 등 지침, 고시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상광 과장은 “가명 정보의 상업적 목적 활용 허용은 해커톤 합의 사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 김 과장은 ‘해커톤 합의 사항이 사회적 합의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처리 수준은 대통령령 국회 심사 과정에서 재논의될 것”이며 “공청회 등을 통해 대중 의견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답했다.

이번 산업 육성책에 따르면, 기업은 개개인의 동의 없이 가명 정보를 우선 활용하되 만약 안전한 비식별 조치를 하지 않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위반할 시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개인 정보 보호 안전망을 ‘사후 규제’ 방식으로 제시한 것.

개인 정보 감독 기관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으로 분산된 상황에서 사후 규제 진행 방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합의도 남아 있다.

김상광 과장은 “이번 행사에서 ‘감독 기관의 독립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린 만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 강화 방침에 대해서도 곧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사진=문재인 대통령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 혁신 현장 방문]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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