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도 이긴 풀뿌리 같은 농민들



지난주 건강편지에서 말씀 드린 대로 태풍 ‘산바’가 무섭게 북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바가 한반도에 상륙하는 17일은 현대사에서 가장 무서웠던 태풍 ‘사라’가 대한민국을 할퀴고 찢어놓은 지 정확히 53년째 되는 날입니다.

1959년 오늘은 사라가 제주도를 거쳐 경남 통영에 상륙해서 영일만으로 빠져나가며 한반도를 황폐화시킨 날입니다. 현재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중앙관상대가 태풍이 일본 오키나와 앞바다를 통과하면서 약해질 것으로 오보한 데다 마침 그날이 추석 명절이어서 피해가 컸습니다. 무려 849명이 숨지거나 실종했고, 37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제 부친은 지금도 추석 명절에 경북 고령의 고향에 가면 멀리 낙동강을 바라보며 사라가 마을을 삼키고 강물 줄기를 뒤튼 이야기를 하면서 몸서리를 칩니다.

이 날 경북 울진군도 황톳물에 황폐화됐습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몇 달째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연명하며 몸부림치던 이재민에게 깜깜한 하늘의 빛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강원도에서 6·25 전쟁 때 북한으로부터 수복한 지역에 주인 없는 논밭이 널려있고, 이 논밭을 개간할 때까지 도와 군에서 각종 장비를 지급하고 곡식을 배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에 기댄 울진의 농민들 66세대 364명은 군용 트럭 25대에 나눠 타고 덜커덕 덜커덕 3박4일 동안 강릉, 횡성, 춘천, 화천을 거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도착했습니다. 한 임부는 화천을 지나던 트럭 위에서 딸을 순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잡초벌판이었습니다. 이를 개간할 소도, 쟁기도 없었습니다. 지뢰가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나마 군용 텐트를 치고 살 길을 찾으려는 순간 4·19혁명이 일어나서 이전에 도와 군에서 한 지원 약속은 백짓장이 돼버렸습니다.

그들은 집집이 400평의 황무지를 맨손으로 개간하면서 굶주림과 싸워야했습니다. 소나무 줄기와 풀뿌리로 연명했고, 운 좋은 날에는 군인으로부터 잔반과 건빵을 얻어먹으며 생기를 보충했습니다. 시장에서 높은 이자로 쌀을 빌려 먹으면서 군인의 탄피를 팔아서 생필품 값을 마련했습니다.

군대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가 없었기에 군인에게 군기 잡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을의 어른이 새파란 군인에게 뺨을 맞는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여성들은 군인을 따라 장을 보러가야 했습니다. 아이를 업고 머리에 짐을 인 여성들은 “하나, 둘, 셋, 넷” 구호를 외치며 장으로 갔다가 마을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군 땅이었건만, 1980년대 초부터 땅임자들이 불쑥 불쑥 나타나면서 ‘피 같은 땅’을 빼앗기는 일이 속출했습니다.

근남면의 울진 주민들은 그래도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삶의 위협이 거셀수록 더 독하게 이겨냈습니다. 땅을 빼앗긴 농민은 피땀 흘려 마련한 돈으로 군 소유의 논을 매입하기도 했습니다. 쌀농사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품종 다각화를 꾀했습니다. 우렁이농법으로 생산한 친환경 오대쌀은 전국 명품이 됐고 고품질의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아래는 철원군 마현리 ‘울진촌’ 마을 어귀에 세운 기념비)

2002년 태풍 ‘루사’로 경북 울진이 쑥대밭이 되자 주민28명이 대표로 고향을 방문, 햅쌀 10㎏ 200포대를 건네며 애타는 가슴을 달래줬습니다.

강원도 철책선 아래 경북 동해 주민의 삶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삶을 압축해서 담은 삶이 아닐까요? 무시무시한 태풍의 위력을 이긴, 그러고도 지구촌이 부러워할 기적을 만든 풀뿌리의 끈질긴 삶이겠지요?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의 ‘풀’ 전문> 

                                                                                  

태풍 피해 막는 12가지 필살기!

지난주에 보내드렸지만, 무시무시한 태풍이 눈앞에 왔기에 다시 보내드립니다. 태풍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방법!

①문과 창문을 꼭 닫는다. 창문에 신문지를 테이프로 붙이고 그 위에 물을 뿌리면 창문이 깨지는 것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틈틈이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러나 강화유리로 만든 창은 대체로 안전하므로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②라디오, TV 등의 기상예보와 태풍상황을 주시한다.
③가로등, 위험 축대, 고압선, 공사판 근처에 가지 않는다.
④천둥 번개가 칠 때에는 낮은 지역 또는 건물 안으로 피한다.
⑤어린이나 노인은 외출을 삼간다.
⑥회사원은 술자리를 취소하고 일찍 귀가한다.
⑦노상이나 둔치에 주차한 차량은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⑧승용차는 감속 운행한다.
⑨물에 잠긴 도로로 걸어가거나 승용차를 운행하지 않는다.
⑩산간계곡의 야영객은 즉시 대피한다.
⑪전봇대가 넘어져있거나 전선이 끊어져 있으면 즉시 ‘123번’으로 신고한다.
⑫집 안팎에서 전기제품 수리를 하지 않는다.

오늘의 음악

태풍이 부는 오늘은 베토벤 폭풍 소나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빌헬름 켐프의 연주로 가장 익숙한 3악장 듣겠습니다. 풀 하면 떠오르는 노래, 톰 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와 김민기의 ‘아침이슬’ 준비했습니다. 김민기를 노래 잘 만드는 가수로만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저는 들으면 들을수록 참 노래를 잘 하는 가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 폭풍소나타 3장 [빌헬름 켐프] [듣기]
♫ Green Green Grass of Home [톰 존스] [듣기]
♫ 아침이슬 [김민기]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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