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은 차(茶)로 통했다...그래서 '티로드'?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①병실이 이제 다실(茶室)이 되었다
차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곧 한국과 일본 등 이웃 나라로 전파되었다. 이들은 차의 독특한 향과 맛에 이끌렸다. 시인과 문인, 묵객(墨客)들은 차에 풍류를 더하였다.
차는 도자기와 함께 동양 미학의 중심에 섰고, 심미적 환상세계로 이끄는 향연을 펼쳤다. 차는 이들의 놀이가 되었고, 문화가 되었다. 차가 함께하는 공간에서는 판타지가 펼쳐졌다. 차를 즐긴 동양인들은 차의 이로움에 대해 수많은 찬사의 글을 남겼다. 이들을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나는 차가 술보다 좋다. 차를 마시면 취하지 않고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차는 근심을 녹이고 심신의 응어리를 풀어준다.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하며, 몸의 독을 해독시켜 준다. 또 화기를 내리는 데도 최고다. 이처럼 마음과 몸을 새롭게 해주는 차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듯하다.”
이후 차는 ‘실크로드’(silk road)를 따라 유럽으로 전파된다. 그래서 이를 ‘티로드’(tea road)라고도 부른다. 차를 만난 서양인들도 수많은 글을 남긴다. 동양인과는 다른 차 이야기가 탄생한다. 마찬가지로 이를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된다.
“오늘은 정말 끔찍한 하루였다. 친구 중 누구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오후 내내 그야말로 축 처져 있었다. 저녁이 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주전자에서는 보글보글 힘찬 소리가 새어 나오고, 하얀 김이 기둥처럼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취하지 않고도 기분이 좋아졌다. 차 한 잔을 앞에 두자 이윽고 평화로운 저녁이 시작되었다. 다시 즐겁고 활기에 넘치게 되었다. 재미있는 에세이도 몇 편 썼다.
“동양도, 서양도 차(茶)에 환호해온 것은…"
차는 정말이지 이런 날 가장 좋은 약이다. 오늘, 멍하고 우울했던 나는 차로 인해 명석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단지 한 잔의 녹차를 마시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묘하다.
그래서 차는 세상의 보물이다. 의식을 변화시키는 매개로써 차는 식물계에서 가장 다감한 인간의 동반자가 되었다.
차는 그대가 추울 때 온기를 주고, 더울 때 시원하게 하리라. 낙담하고 있을 때는 용기를 주고, 들떠 있다면 차분하게 하리라.
차는 미각이 감지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맛을 낸다. 취하게는 하지 않지만, 분명히 어떤 황홀경도 느끼게 해준다.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평온함, 걱정에서의 해방, 홍조, 재기 넘치는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차다.
그렇게 차는 동양에서 유럽으로, 다시 전 세계로 퍼지며 세계적 기호품이 되었다. 세계를 하나로 묶은 것이 차의 첫 번째 위업이다. 차는 서양이 동양으로부터 받은, 가장 오래된 은의의 기념품일지도 모른다. 또 차는 지역마다 다른, 독특한 차 문화도 일으켰다.
차가 내게 들어온 이후, 내게서는 또 다른 차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평생을 기초의학자로 살아온 나의 경험과 지식을 더하여 색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그가 기초의학자에서 "차 권하는 의사"로...차에 어떤 효능 있길래
내 사유의 토양은 의학, 생명과학, 의학사, 의철학, 교회사, 분석심리학 등이다. 내 전공 혹은 부전공 관련 자양분들이 내 안에서 섞여 독특한 토양이 되었다. 그 이야기들은 차에 관해 쓴 ‘차오디세이’(2020년, 이른아침출판사)로 한고비를 넘어 이제 또 다른 출발선에 와 있다.
두 달 전, 정년 은퇴하며 부산 동아대병원 인근 암(재활요양)병원에 취직해 두 번째 경력을 시작했다. 의학자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암 투병하는 환우들을 돌보는 일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병실을 다실(茶室) 삼아 환우들과 차를 나눈다.
차는 마음을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 비록 약물은 아니지만 특별한 생물학적 효능도 지녔다. 환우들과의 다담(茶談)은 환우들에게 큰 이로움을 줄 것이고, 차는 환우들 몸속에서 좋은 효능을 발휘할 것이라 걸 알고 있다.
세계가 하나가 된 지금, 차는 커피와 함께 전 세계 음료 시장을 양분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처럼 기호라는 측면에서 커피와 차는 팽팽한 편이다.
하지만 차 인구는 언제나 커피 인구보다 조금 많았고, 현재도 조금 더 많다. 게다가 기호라는 기준을 넘어서면 차는 커피보다 훨씬 우수한 식품이다. 차는 커피와는 다른, 더 뛰어난 치유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2만 달러 포기하고 얻은 평생 연구 ‘아폽토시스’(apoptosis)”를 시작으로 올해 3월 “못다 핀 해부학자가 떠나며 찍어준 세포사 방점”까지 <코메디닷컴>에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란 문패를 달아 35편의 칼럼을 연재했다.
이제 그 인연을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로 이어가려 한다. 1+1은 차 이야기 하나와 건강 이야기 하나를 묶었다는 의미다. 논문 한 편, 한 편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연구자의 오랜 삶을 뒤로하고, 이제 환우들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꾼으로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향긋하고 구수한, 다향(茶香) 넘치는 다실에서 독자 여러분을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