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의료공백 때문?…잇따라 무너지는 생명

필수의료 공백 겹치며 위기 순간 계속돼..."1339 응급의료정보센터 없어질 때 이미 예견"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응급실 뺑뺑이’가 벌어졌고, 소생 가능성 컸던 아버지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응급환자들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은 정부 탓에 우리 가족이 피해를 당했다.”

전공의 이탈이 8주 차로 접어든 가운데 이에 따른 후유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전 6시 13분. 119 상황실에 50대 남성 A씨가 자택(부산 동구 좌천동) 주차장에서 호흡 곤란을 겪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사진=클립트코리아]
7분 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의식이 있던 A씨가 등과 가슴 통증을 함께 호소하자 심혈관계 질환을 의심했고, 즉시 이를 치료할 병원을 물색했다. 하지만 가까운 병원부터 먼 병원까지 A 씨를 치료할 병원을 찾기 힘들었다. 다들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결국, 9km 떨어진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가자 의료진은 ‘급성 대동맥박리’라고 진단했다. 대동맥 내부 혈관 벽이 파열된 것. 즉시 스텐트 삽입이나, 인조혈관 치환술 등을 받지 않으면 30~40%가 발생 직후 현장에서 사망한다.

문제는 이 병원에서조차 수술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 급히 경남 양산 대학병원까지 수소문했으나 수술 불가 통보를 받고는 56km나 떨어진 울산까지 날아가 10시간 동안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당시 “시간이 오래 지체된 탓에 심장이 제 기능의 10%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통보까지 받은 상태. A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져서도 의식을 찾지 못하다 1일 오후 결국 사망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 이 사건을 ‘단독’ 보도한 한국경제신문이 전한 바에 따르면 가족들은 A 씨가 “평소 수영을 꾸준히 해왔으며 고혈압 등 심혈관에 영향을 줄 지병도 없었다”고 했다.

이에 가족들은 A 씨의 억울한 죽음의 정황을 밝혀달라는 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대학병원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응급실 뺑뺑이’가 벌어졌고, 소생 가능성이 컸던 아버지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A 씨 가족의 민원에 대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정확한 사실관계부터 파악하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병원에서 엉뚱한 치료만 받다 숨진 경우도

의료 공백 사태로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의 사연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11일, “의료파업으로 저는 아내를 잃었습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린 그는 “(아내가) 간과 신장의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로 (3일 전에) 구급차를 탔는데 대형병원은 자리가 없어 중소병원으로 들어갔고, 중소병원에서는 피검사를 포함한 모든 검사를 했으나 이상 없다고 판단하여 단순한 몸살로 입원을 시켰다“고 했다.

그는 이어 ”부인이 힘들어하자 신경안정제를 투여했는데 이미 (간과 신장) 부전으로 몸에 노폐물이 쌓여가고 있는데 그걸 그대로 방치하고, 수면제를 투여해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의료 파업이 없었다면 대형병원에 자리가 있었을 것이고 투석을 하든, 간 이식을 하든 아내는 살릴 수 있었거나, 적어도 유언 한마디 못 듣고 허무하게 떠나보내진 않았을 것”이라는 그는 “둘째 딸아이 생일이 (결국) 자신의 제삿날이 되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응급상황 대비한 병원, 의사 네트워크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 복원해야”

지역의료계 관계자들은 이에 “직접적으로는 최근 대형병원 의료공백에 1차적 원인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한때 잘 가동되고 있던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가 언제부턴가 없어지고 그 업무가 119로 이관되면서 이런 중증 응급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과 의사들 핫라인(hot line)이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도 한 이유”라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도 지난 1월 ‘의대 정원 증원 추진과 대한민국 의사의 미래 토론회’에서 “응급실 뺑뺑이는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가 2012년, 119 소방본부로 흡수 통합되면서부터 일찍이 우려됐던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국 또는 광역권 응급의료 시스템과 의사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전문적인 ‘환자 전원(轉院)체계’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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