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배신’, 무엇이 문제였을까?

[송무호의 비건뉴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약 10년 전, 미국 작가 리어 키스(Lierre Keith)란 분이 ‘채식의 배신’이란 책으로 육식 옹호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이 분은 20년간 동물성 식품을 입에 전혀 대지 않는 비건(vegan) 생활을 하다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이 책에는 의학적인 오류들이 많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섬유질(식이섬유)이다. 그는 사람이 섬유질을 소화할 수 없기에 이런 성분이 많이 든 식물성 식품은 인간에게 맞지 않고, 섬유질을 분해하고 소화해 에너지를 만든 동물성 식품을 먹는 게 사람에게 좋다고 주장한다.

[사진=송무호 제공]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과거에는 섬유질이 소화가 안 되기에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성분으로 여겼으나, 현대 의학에서는 필요한 영양소로 간주하여 5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에 이어 6대 영양소로 자리 잡았다.

섬유질 둘러싼 논란…왜 그럴까?

섬유질, 즉 식이섬유(dietary fiber)라는 용어는 1953년 영국 의사 에벤 힙슬리(Eben Hipsley)가 식물 속에 분포하는 섬유질 중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섬유질을 지칭하면서 처음 등장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식이섬유란 먹을 수는 있지만, 소화가 안 되고 칼로리도 없기에 영양학적 가치가 없는 물질로 간주되었다.

1972년 트로웰(Trowell) 등이 식이섬유가 심장병이나 대장암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이섬유 가설’(dietary fiber hypotheses)을 발표한 이후 식이섬유에 관한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1995년 미국 공인분석화학회(AOAC, Association of Official Analytical Chemists)에서 식이섬유의 의학적 정의가 만들어졌으며, 이후 수용성(soluble)과 불용성(insoluble) 식이섬유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1].

특히 사람의 위나 소장에서 분해되지 않는 식이섬유라 하더라도 대장에 도달해서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고 분해되어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 SCFA)을 생산하고, 이 물질이 우리 몸에 대단히 유익한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

지금까지 밝혀진 식이섬유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은 위장에서 포만감을 증가시켜 주는 반면, 공복감은 지연시키고 칼로리가 적어 비만이 예방된다. 즉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살이 빠진다 [3].

소장에서 당 흡수 속도를 늦춰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억제하고 인슐린 분비를 완만하게 조절하여 공복혈당 및 당화혈색소(HbA1c) 수치를 감소시켜 당뇨병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된다 [4]. 장내에서 담즙산과 결합하여 콜레스테롤의 체외 배출을 도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므로 고혈압과 심장병이 예방된다 [5].

채식의 판정승?

동물성 식품에는 섬유질이 하나도 없기에 대변량이 줄어 변비로 고생하는 반면, 섬유질이 풍부한 식물성 식품은 소화되지 않고 대장까지 내려간 식이섬유가 대장 속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대변량을 늘리고 장운동을 촉진하여 변비를 없애준다. 또 대장 벽을 청소하는 역할까지 해 숙변 제거에 도움이 되고,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 및 독소를 배출하여 대장암 예방 효과도 있다 [6].

그래서 현재 미국영양학협회(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에서는 식물성 식품을 통한 식이섬유 섭취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으며, 하루에 성인 여성은 26g, 성인 남성은 38g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인의 경우 인구의 95%가 권장량에 못 미치는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7].

변비,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병, 대장암 등은 현대인들이 가장 흔히 앓고 있는 만성질환 아닌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가장 중요한 영양소가 바로 섬유질이다 [8]. 현실이 이런데도 이 책의 저자는 1950년대 섬유질 사고방식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채식의 배신’ 저자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나는 비건 생활 동안 항상 배가 고팠다. 먹는 음식은 전부 탄수화물이었고 저혈당을 반복해서 경험했다.” “건강을 위해 인간이 섭취해야 하는 탄수화물의 양은 0이다.” “복합 탄수화물과 단순 당은 사실 별 차이가 없다.” “구운 감자를 먹는 것과 청량음료 한 병을 마시는 것은 둘 다 포도당 50g이 들어있기에 대사적으로 별 차이가 없고, 혈당 상승 측면에서 볼 때 감자 쪽이 살짝 더 나쁜 음식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이 저자가 얼마나 영양학에 대해 무지한가를 알 수 있다.

‘잘못된’ 채식 vs. ‘올바른’ 채식

복합 탄수화물은 결코 단순 당과 같지 않다. 현미, 고구마, 감자, 과일 등 정제되지 않은 복합 탄수화물 식품은 섬유질이 많아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내리기 때문에 저혈당이 오지 않고 공복감이 늦게 온다. 단순 당으로 이루어진 식품인 청량음료, 과일주스, 케이크, 과자, 디저트류 등은 혈당을 급히 올리고 그에 따라 인슐린 분비가 급증하므로 저혈당에 쉽게 빠지고 공복감이 빨리 온다.

따라서 필자가 이전에 경험한 나쁜 증상들은 단순 당으로 이루어진 음식들을 평소에 너무 많이 먹었기에 생기는 것들이다. 즉, 제대로 된 채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건강 문제가 생긴 것이다.

채식할 때 식물성 식품이면 아무거나 다 먹어도 된다는 오해를 하기 쉽지만, 자연 상태의 채식식품과 가공된 채식식품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은 비교적 거친 자연 상태인 식품보다는 가공하여 부드럽고 달콤해진 식품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가공식품에는 몸에 좋은 섬유질이 대부분 제거되어 있지만, 몸에 해로운 여러 가지 첨가물과 방부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공된 채식식품(라면, 흰 빵, 흰쌀밥, 감자칩, 튀김류, 도넛, 케잌, 아이스크림, 설탕, 식용유 등)을 좋아하고 많이 드시는 분들을 요즘 말로 ‘정크 비건’(Junk vegan)이라 하는데, 이런 분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영양의 불균형으로 건강이 나빠진다. 당연한 결과다.

채식이라고 다 같은 채식이 아니다. 채식할 때는 건강한 자연 상태의 식품을 먹는 채식을 해야 하는데, 가공된 식품을 먹는 채식과 구분하기 위하여 요즘은 ‘무가공 자연식물식’(Whole-foods plant-based diet)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고기만 안 먹는다고 채식이 아니다. 올바른 채식을 해야 한다. 잘못된 채식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송무호 의학박사·정형외과 전문의

참고문헌
1. JW DeVries, L Prosky, B Li, S Cho. A historical perspective on defining dietary fiber. Cereal foods world 1999;44(5):367-369.
2. K Makki, EC Deehan, J Walter, F Bäckhed. The impact of dietary fiber on gut microbiota in host health and disease. Cell host & microbe 2018;23(6):705-715.
3. NC Howarth, E Saltzman, SB Robert. Dietary fiber and weight regulation. Nutrition Reviews 2001;59(5):129-139.
4. RE Post, AG Mainous, DE King, KN Simpson. Dietary Fiber for the Treatment of Type 2 Diabetes Mellitus: A Meta-Analysis. The Journal of the American Board of Family Medicine January 2012;25(1):16-23.
5. DE Threapleton, DC Greenwood, CEL Evans, et al. Dietary fibre intake and risk of cardiovascular disease: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MJ 2013;347:f6879.
6. ME Arayici, N Mert-Ozupek, F Yalcin, et al. Soluble and Insoluble Dietary Fiber Consumption and Colorectal Cancer Risk: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Nutrition and Cancer 2022;74(7):2412-2425.
7. WJ Dahl, ML Stewart. Position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 Health Implications of Dietary Fiber. J Acad Nutr Diet 2015;115(11):1861-1870.
8. JW Anderson, P Baird, RH Davis, et al. Health benefits of dietary fiber. Nutrition Reviews 2009;67(4):188-205.

    송무호 의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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