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꼬대라고요? ‘잠=과학’ 입증하며 미래의학 선도

[Voice of Acdademy 13 - 학회열전] 대한수면의학회

대한수면의학회 홈페이지의 메인 이미지

인류는 자다 깨었다 졸다 다시 일어나며 진화했지만, 한동안 잠은 과학의 영역으로 깨어나지 못했다, 1953년 미국 시카고대 나다니엘 클라이트만 교수와 제자 유진 아세린스키가 《사이언스》에 REM(Rapid Eye Movement) 수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잠이 기지개를 폈다. 윌리엄 디멘트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는 “이때 수면 연구가 과학 영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 수면제들이 선보이기 시작했어요. 서구에서도 하나 둘씩 과학적 성과가 쌓이고 나서 1980년대 본격적으로 임상연구 바람이 불었습니다. 잠에 대한 관심, 사유와는 별개로, 인류에게 수면의학은 최신 학문인 셈이죠.” – 김린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서광윤 홍강의 정도언 김린 등 학회 창립 주도

미국에서 수면의학이 봉오리를 터뜨릴 무렵인 1987년 고려대 의대 서광윤 교수가 미국 코넬대에 6개월 연수를 다녀와서 수제자인 김린 교수에게 “우리 함께 잠에 대해 연구해보자”고 제안했다. 1990년 서울대 의대 정도언 교수가 스탠퍼드대 의대에서 본격적으로 잠의 세계를 파헤치다 귀국했다. 미국 베일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연구하다 귀국했던 이성훈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수면의학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이들이 의기투합해 약식 학술대회를 열며 잠의 신비에 대해 정보를 나눴지만, 주위에선 잠에 대해 아직 미몽 속에 헤매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의사가 잠 안 자고 일해야지, 무슨 잠 타령이야?” “잠이 의학이라고?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대한수면의학회의 창립 때와 현재 모습

1993년 대한의학회 전신인 대한수면정신생리학회 창립식 기념사진. 앞쪽 왼쪽 4번째부터 1~3대 회장인 서광윤 고려대, 홍강의 서울대, 황익근 전북대 교수. 두 번째 줄 맨 오른쪽이 김린 교수, 마지막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도언 교수. [사진 제공=김린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2023년 대한수면의학회 춘계학술대회가 3월 서울대병원에서 열렸다. 학회를 마친 후 윤호경 기금관리위원장, 강승걸 학술위원장, 김석주 이사장, 김의중 전 회장, 박두흠 고문(앞줄 왼쪽 세번째부터)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수면의학회]
‘4당5락’의 미신이 지배하던 시대였지만, 과학적 수면의학의 우군은 늘어갔고 1993년 7월 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대한수면의학회의 전신인 대한수면정신생리학회가 창립회원 103명 가운데 75명이 참석해 닻을 올렸다. 초대 회장은 서광윤, 차기 회장은 홍강의(서울대), 학술부장 정도언, 총무부장 김린, 편집위원장 정영조 교수(인제대) 체제였다. 이정균(서울대), 이병윤 교수(고려대) 등 정신과의 원로 교수들이 고문으로 추대됐다. 학회 출범 직후 미국에서 수면무호흡증을 연구하다 귀국한 가톨릭대 의대 호흡기내과 문화식 교수(6대 회장)를 비롯해 다양한 진료과 의학자들이 잠의 세계에 합류했다. 김린 교수는 학회가 정상 운항하는 것을 보면서 수면을 본격 연구하기 위해 코넬대로 떠났다.

학회는 창립 이듬해부터 학회지 《수면·정신생리》를 발간해오고 있으며, 2019년부터 발행한 영문판 학술지 《Chronobiology in Medicine·CIM》(시간생물학)를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학회는 1994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수면학회 창립총회 및 학술대회에 20명 참가한 것을 시발로 매년 미국수면학회, 아시아수면학회에 회원들을 보내고 있다. 2006년 9월엔 서울 잠실롯데호텔에서 ‘Good Sleep, Better Life’ 슬로건 아래 개최한 아시아 수면학회에는 15개 나라 312명의 의학자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수면다원검사 보험 혜택 이론적 근거 제시

학회는 수면의학 전문가와 실무자를 배출하는 데에도 앞장서 왔다. 초기부터 정도언, 김린 교수가 각각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수면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전임의를 양성했고, 2009년부터 수면다원검사기사 인증시험을 통해 전문 기사를 배출하고 있다.

학회는 2002년 정도언 회장 체제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223명, 이비인후과 95명, 내과와 신경과 각 29명, 소아청소년과 22명, 가정의학과 14명 등 의사와 치과의사, 의료기사, 임상병리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455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면다원검사 기록지. 수면다원검사를 하면 뇌파를 통해 수면의 단계와 눈의 움직임, 근전도, 팔다리의 움직임, 가슴과 배의 움직임, 코에서 들숨과 날숨 등 공기의 흐름, 손끝이나 귀 끝에서 측정한 혈중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을 알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회는 지난해 대한수면학회와 공동으로 수면다원검사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으며,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디지털 치료제 1, 2호가 선보이는 데에도 과학적으로 이를 검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국제적으로 불면증 치료는 인지행동치료가 1순위이고 수면제 처방은 2순위입니다. 인지행동치료가 효과를 내려면 의사가 잠의 전체 그림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환자는 의사의 처방을 제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병원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환자는 비용 부담을 호소해서 인지행동치료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치료제는 인지행동치료 메커니즘을 정확히 아는 의사가 이끌고 환자가 잘 따라주면, 보완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디지털치료제는 수면다원검사 기록, 환자 개인생산건강데이터(PGHD), 병력 기록 등과 연계해서 인공지능(A) 기법을 활용하면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우리 학회가 여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김석주 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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