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우리 기술로 세상에 없던 수술로봇 만들죠”

[헬스케어 기업탐방 2] 로엔서지컬

로엔서지컬 권동수 대표 [사진=로엔서지컬]
“의료용 로봇을 선택한 이유요? 제일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죠. 공학자의 숙명은 있는 것을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 적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인 선릉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기술센터가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최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기관과 기업들이 입주한 곳이다. 이 건물 15층엔 의료용 정밀 로봇을 만드는 기업 ‘로엔서지컬(Roen Surgical)’ 서울 오피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신장 모형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권동수 대표가 기자를 맞이했다. 백발의 턱수염이 인상적인 권 대표는 “의사가 아닌 공학자가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거침없이 회사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카이스트 연구실서 출발…연구원 22명 등 임직원 80명

권 대표는 의료 로봇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미국 조지아공대 재학 시절 쓴 박사학위 논문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에서 사용할 로봇 팔 관련 연구였다. 이후 그는 미국 오크리치국립연구소에서 핵 폐기물 처리 로봇 개발에 참여했다. 두 분야는 원격 제어 로봇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권 대표는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맡았고, 당시 막 태동 단계에 있던 의료용 로봇에 자신의 전문 분야인 원격 제어 로봇을 접목했다. 이후 그의 연구실은 국내 최초로 의료 로봇 연구에 나섰고 가장 오랜 기간 의료 로봇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이 됐다.

권 대표가 교수직을 은퇴하며 2018년 연구원 8명과 함께 설립한 것이 지금의 로엔서지컬이다. 현재 석박사급 연구원 22명을 포함해 80명의 임직원이 함께 하는 로엔서지컬은 환자의 몸에 칼을 대어 절개하지 않고도 수술이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작은 연구실에서 출발했지만 어느덧 서울, 대전, 동탄에 3개 오피스를 뒀다.

권 대표가 선택한 첫 질환은 신장결석 수술이다. 결석이란 소변에 있는 칼슘이나 요산 등의 물질이 모여 결정체를 만드는 것인데, 방치하면 등이나 옆구리에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신장결석 치료를 위해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시행하는 방법은 체외 충격파 쇄석술이다. 몸 밖에서 충격파를 전달해 신장 결석을 깨뜨리는 방법이다. 다만 결석의 위치를 제대로 표적하지 못하면 주변 조직이 상하고, 결석 조각이 장기에 파고들거나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등 부작용이 따른다.

최근에는 요도에 내시경을 삽입하고 요관(소변을 운반하는 관)을 통해 신장까지 접근한 뒤 결석을 레이저로 제거하는 ‘연성신요관내시경 결석 제거술(RIRS)’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작용과 재발률을 낮출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국내에선 시행률이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권 대표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은 의사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수술법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좁은 요관에 삽입한 내시경을 한 손만으로 조작하며 레이저로 부수고 결석을 꺼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데, 난이도와 피로도가 크다는 것. 굉장히 신경 쓰지 않으면 상처를 내 혈뇨가 생기고, 최악의 경우 요관이 끊어지기도 한다.

“신장결석은 로봇 수술의 블루오션”

권 대표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0%가 살면서 한 번씩 경험하는 증상인데 의료진의 피로도를 줄일 마땅한 로봇이 없었다. 더할 나위 없는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다”며 목소리를 키웠다.

로엔서지컬은 의사가 원격으로 RIRS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원격 의료 로봇 ‘자메닉스’를 개발했다. 기존 수술법처럼 의사가 내시경을 들고 구부정하게 몇 시간을 서 있을 필요 없이, 원격으로 실시간 모니터를 보며 조종기로 편하게 수술하도록 설계했다.

자메닉스엔 부분 자동화를 위한 인공지능(AI) 기술도 적용됐다. 권 대표는 “결석이 하나만 있는 환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수술 시 내시경이 여러 번 출입을 반복해야 하는데, 자메닉스는 그 경로를 기억했다가 두 번째 삽입부터는 자동으로 신장 내 결석을 찾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시경을 환자 호흡 움직임에 연동해 숨 쉴 때마다 신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정하고, 실시간으로 남아 있는 결석의 크기를 파악해 상처 없이 꺼낼 수 있는 정도인지 시술자의 판단을 보조하는 기능도 있다”며 “의료진에게 안전하고 효율적인 수술을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췄다”고 덧붙였다.

실제 의료진이 자메닉스(왼쪽 로봇)를 활용해 수술을 재연하고 있다. [사진=로엔서지컬]
이러한 기술성을 인증받은 자메닉스는 지난 2021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됐으며, 오는 4월 임시 보험 등재가 예정되어 있는 등 상용화의 첫 단계에 섰다.

권 대표는 “자메닉스는 신장결석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수술 플랫폼으로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시장 진입을 위한 첫 질환은 신장결석이지만 종양 제거술, 심장 부정맥 수술 등 체내 관을 통해 주요 장기에 정밀하게 접근해야 하는 수술(관내 수술, Endoluminal Surgery)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메닉스 적응증 넓히고 해외진출 추진”

실제 로엔서지컬은 수술 도구와 내시경만 바꾸면 자메닉스를 활용해 수술할 수 있는 질환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보고 적응증 확대를 목표로 추가 개발을 진행 중이다. 권 대표는 “적응증 확대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다음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며 “미국 FDA와 유럽 적격 인증(CE) 등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권동수 대표와의 일문일답.

-자메닉스의 향후 타임라인은?

“현재 자메닉스는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돼 임시수가코드가 부여될 예정이다. 올해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이 시작되고 해당 시점부터 3년간 상용화 시범 적용을 하면서 실제 임상 현장의 데이터를 모으게 된다. 이 때 환자들에게 자메닉스를 활용한 수술이 명백한 임상적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올해엔 4대 정도만 현장에 보급하면 충분히 목표하는 데이터를 모을 것으로 예상하며, 내년까지 10~20대 기기를 보급할 것으로 예상한다.”

의료진이 자메닉스를 실제 수술에 활용하는 모습 [사진=로엔서지컬]
-자메닉스 외에 개발 중인 다른 제품 라인은?

“아직 개발 및 허가 대기 단계에 있어 자세한 언급은 힘들지만 크게 두 종류의 제품을 준비 중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 명은 ‘모듈러엔도(modular Endo)’로, 유연하게 구부러질 수 있는 특징이 있어 입이나 항문, 질 등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이지마이크로(easy Micro)’다. 다빈치 등 기존의 로봇이 커버하지 못하는 미세한 영역의 수술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제품군이다.”

-향후 과제는?

“사업 확대와 개발 가속화를 위해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다. 자메닉스가 이미 혁신성을 인증받은 데다 실제 임상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것으로 보여 무난하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 다음은 해외 시장 진출이다. 이미 FDA 인증과 유럽 CE 인증 등 글로벌 진출을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며, 상대적으로 인허가 과정이 간단한 동남아 시장 역시 진출을 준비하는 단계다.”

-로엔서지컬의 궁극적 목표를 소개해달라.

“수술 로봇 시장에는 압도적인 선발 주자가 있다. 최초의 수술 로봇 다빈치를 개발한 인튜이티브서지컬이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점유율이 80%에 육박한다. 로엔서지컬은 이들을 넘어서는 것이 목표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다빈치가 20여년 전 그랬듯이, 자메닉스(Zamenix)도 세상에 존재한 적 없으면서도 분명히 필요한 로봇이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 중인 프로젝트 역시 다빈치의 기술적 한계를 설계 시점부터 염두에 두고 보완했기 때문에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다. 국내 기술이 해외 제품 모방을 넘어 기술적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장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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