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까지 동물실험 막겠다더니…” 美 환경보호청, 목표 철회

2025년까지 동물실험 30% 줄이겠다는 중간목표도 사라져

2016년 연방 독성 물질 관리법 개정안은 기관이 동물 실험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했지만 기한을 정할 의무를 부과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휠러 전 청장은 2019년 9월 EPA가 2035년까지 포유류 대상 동물실험을 시행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화학물질의 안정성 검사를 위한 포유류 대상 동물실험을 2035년까지 금지시키겠다던 시한을 철회했다고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9년 EPA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장기칩(organs-on-a-chip) 같은 비동물 모델로의 이동을 가속화하기 위해 이 같은 시한을 책정해 발표했다. 하지만 동물실험이 인간과 야생 동물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안전성 평가에 필수불가결하다며 반발해왔다.

2023년 3월 EPA에게 동물 실험을 포기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낸 수십 개의 환경, 건강, 사회 단체 중 하나인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의 선임연구원 제니퍼 새스 박사는 2035년 시한 철회를 “좋은 조치”라고 반겼다. 그는 “EPA가 실험용 페트리 접시 위의 세포만을 근거로 화학물질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시한을 책정했던 앤드류 휠러 전 EPA 처장은 시한이 없으면 EPA의 동물 실험 의존도를 줄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는 “현상유지에 안주하는 안이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EPA는 이 같은 결정 번복이 과학적 이유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EPA의 크리스 프레이 처장보(연구개발 담당)는 “동물실험을 수반하지 않는 방법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임의적 시한을 정하는 것은 그러한 집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PA는 살충제의 안전성 평가, 식수 내 화학물질의 위험한 수준 결정, 기타 주요 독성 연구를 위해 매년 수천 마리를 희생시키는 동물실험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은 설치류나 토끼와 같은 포유류이고 일부는 물고기를 대상으로 한다.

2016년 연방 독성 물질 관리법 개정안은 기관이 동물 실험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했지만 기한을 정할 의무를 부과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휠러 전 청장은 2019년 9월 EPA가 2035년까지 포유류 대상 동물실험을 시행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중간목표로 2025년까지해당 실험을 3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른 연방 기관도 동물 실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오랫동안 약속해왔으나 동물 연구를 끝내기 위한 어려운 기한을 정한 기관은 없었다.

휠러 청장의 발표가 나왔을 때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동물실험을 거치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화학제품 제조업계의 로비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화학제조업체는 규제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 실험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휠러 전 청장은 동물 애호하는 가족의 기대와 16년 안에 동물실험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이제 2025년과 2035년이란 마감기한이 모두 사라졌다. 동물실험 폐지 옹호단체인 ‘화이트코트 웨이스트 프로젝트’에 따르면 2020년 6월에 발표된 동물 사용을 줄이기 위한 EPA의 업무계획 보고서에는 마감기한이 적시돼 있었지만 2021년 12월 보고서에는 마감기한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화이트코트 웨이스트가 공개 기록 요청을 통해 입수한 내부 기관 이메일에는 특정 목표 날짜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화이트코트 웨이스트의 저스틴 굿맨 수석 부사장(옹호 및 공공정책 담당)은 “마감기한이 업무계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으나 모두 사라졌다”면서 “그들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현재 화이트코트 웨이스트의 자원봉사 고문인 휠러 전 청장도 “마감시한이 없다면 우리는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EPA는 기한을 철회하긴 했지만 여전히 동물실험을 대신할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사이언스》에 밝혔다. 프레이 처장보는 “동물실험을 완전히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목표이며, 우리는 항상 그 목표를 유지할 것”이라며 “다만 과학자들보다 앞서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브라운대의 킴 뵈켈하이더 교수(독성학)는 환경실험에서 동물이 곧 사라질 것으로 믿고 있다. 그의 연구진은 오염물질의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심장, 뇌, 그리고 다른 장기의 기능을 모방한 오가노이드(유사장기)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접근법이 동물실험의 예측력에 필적하기 시작하고 있다며 “기한이 있든 없든 동물실험에서 시험관 내 시험 시스템으로 전환은 다음 10년 안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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