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同名)의 연구자를 만나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12: Park SY, Kim GY, Bae SJ, Yoo YH, Choi YH. Induction of apoptosis by isothiocyanate sulforaphane in human cervical carcinoma HeLa and hepatocarcinoma HepG2 cells through activation of caspase-3. Oncol Rep 2007;18:181-187.

■사람: 최영현 동의대 한의대 교수
■학문적 의의: Sanguarine의 암세포 전이 조절 능력 기작

내 이름의 현(顯)은 외할아버지 함자에서 비롯되었다.

1948년, 신의주고보 학생이었던 어머니는 38선을 넘어 남하하셨다. 외할아버지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울에 정착하셨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월남을 종용하셨다.

서울에 온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서울에서 새 가정을 꾸린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뜻과 달리 생부와 결별하셨다.

6·25 한국전쟁이 지나 어머니는 결혼하시고 아이를 키우며 생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리저리 수소문하여도 생부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생부가 죽고 20년 지나서야 허망한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생부를 찾으면서 그리워하실 때 나를 출산하였다. 아들을 낳자 내 이름에 당신의 생부 이름 중 하나를 넣자고 아버지께 간청하셨다. 일제 강점기 동경대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생부의 후계자가 되라는 어머니의 염원이 내 이름에 담겼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머니의 이런 염원을 의식하고 자랐다. 의학과 1학년 때 이미 해부학 전공을 선택한 뒤에는 현(顯)미경으로 관찰하는 형태학자의 운명이 내 이름에 담겼다는 생각도 간혹 하였다.

돌림자에서 온 영(永)을 포함한 내 이름 영현은 각각의 한자는 흔하지만 뭉쳐서는 흔한 이름이 아니다. 20세기를 보낼 때까지 나는 같은 (한자) 이름을 가진 사람을 직접 만나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같은 이름을 가진 연구자를 만났다.

최영현 교수는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세포주기를 연구하고 동의대 한의대 생화학교실에 부임하였다. 최 교수가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세포사를 공통분모로 연구 동력자가 되었다.

최영현 교수. 왼쪽은 필자. [사진=유영현]
세포주기가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으면 세포는 죽는다. 1990년대 세포주기에 관한 연구는 세포사 연구로 확장되었고, 우리는 세포주기와 세포사를 함께 연구하게 되었다.

그와는 해외 학회도 여러 번 같이 다녀왔다. 2007년 미국 암학회 참석 중에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의 부산과학기술상 수상 소식을 접하였다.

수상 소식을 알리던 국제신문사는 (자료)사진을 요청하였다. “마침 학회에 참석 중이니 동료들 축하 받는 사진을 찍어 보내면 학술상 취지에 어울리는 기사가 될 것”이라는 귀띔도 해주었다.

학회에 참석한 몇몇 연구자들과 함께 축하 사진을 찍었다. 그는 내게 꽃을 전하는 역할로 나왔다.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자 최 교수 지인들이 흥분하였다. 그들은 대학 이름(동아대-동의대)이 비슷하고, 이름(유영현-최영현)까지 같으니 그가 수상한 것으로 오해를 한 셈이었다.

여러 지인에게서 ‘엉뚱한’ 수상 축하 전화를 받던 그는 몇 년 뒤, 실제로 부산과학기술상을 받았다. 부산과학기술상 역대 수상자 명단에는 두 영현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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