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관리 이대론 안돼..”국가가 치료 책임져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성명서, 비극 예방과 사후관리 위한 중요사항 제안

서울시 신림역, 성남시 서현역 등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경찰 당국이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한 4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지하철 강남역 인근에 경찰특공대와 전술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사진=뉴스1]
최근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연달아 발생한 가운데,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에 정신건강 전문의들은 중증질환을 조기에 치료해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병원 이송 및 국가책임제 도입 등으로 사후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6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현행 법과 제도는 더이상 정신질환자와 가족, 국민 누구도 제대로 구할 수 없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만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요청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회는 △누구나 조기에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 사건 발생 시 국민 안전과 정신건강을 지키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중증질환을 조기에 치료받고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의료-복지 시스템을 만들고, 사망자 유가족, 현장 목격자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를 통해 간접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의 마음건강까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점”

특히 △정신질환의 조기발견과 이를 위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이송제도를 포함한 법과 제도의 개선해야 한다고 학회는 강조했다.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와도 경찰과 지자체에서의 통계 집계가 미흡하고 병원 이송 등이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한 것이다. 학회는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권한을 부여해 최소한의 정신건강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경찰에 의한 병원이송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학회는 △중증 정신질환 치료를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국가책임제 도입도 촉구했다. 핵가족과 일인가구 중심 사회로 변화한 가운데 정신질환자 치료에 대한 부담을 가족에게만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학회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외에 사후예방을 위한 법정신의학을 활성화하고 치료감호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내용도 제안됐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 치료와 회복에 대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국가의 집중치료 센터 운영 등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중증 정신질환 관련 범죄에 대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성명서’

서현역에서 발생한 끔찍한 범죄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국민적 분노와 불안에 공감하며 사망자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의 쾌유를 기원한다. 또한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촉구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건 발생 초기 조현성 인격장애 등 정신과 진단명이 보도되는 데 대해 이 사고의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이 분명히 파악될 때까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대내회원 서신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경계하는 것과 동시에 충격에 빠진 피해자와 가족, 사회 전반의 안전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알린 바 있다.

그러나 경찰의 조사결과 서현역 피의자는 3년간 치료를 중단해 왔으며 자신을 해하려 하는 스토킹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살해하고, 이를 통해 그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 범행했다고 하는 등 피해망상이 원인으로 발표된 상황에서 이제는 이러한 비극의 예방과 사후관리를 위한 적극적 대책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학회는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대해 인권에 대한 강화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치료필요성과 함께 자타해위험성을 입원의 필수요건으로 법제화하는 변화는 충분한 준비없이 시행될 경우 적절한 치료가 어려워지면서 사고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만 증가하는 악순환이 생기므로 심각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온 바 있다. 현행 법과 제도에 의한 정신질환자 치료와 회복을 위한 시스템은 더 이상 환자, 가족 그리고 국민 누구도 제대로 구할 수 없으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번 사고 후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테스크포스를 구성하여 제도변화를 추진하기로 한 결정을 환영하며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요청한다. 이를 위하여 몇 가지 중요사항을 제안한다.

1. 환자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 개선을 통해 누구나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당연하다. 그러나 중증 정신질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 있어도 조기에 치료받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의료-복지 시스템의 부족이 문제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고 임세원 교수의 유가족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는 사회를 고인의 유지로 밝힌 바가 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예방적 차원에서도 긍정적일 것이다.

2.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 사건 발생 시 국민의 안전과 정신건강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

– 참혹한 범죄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망자 유가족의 애도를 돕고, 부상자와 그 가족, 현장 목격자의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정신건강 지원이 시급하다.
–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사회에 대한 안전감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는 등 큰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자극적인 언론 보도나 현장 동영상, 유언비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간접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폭력 사건이 일반인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과 마음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야 한다.

3. 정신질환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를 위해 이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이송제도를 포함한 법과 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 미국과 유럽은 물론 대만은 자타해우려가 있는 정신질환 발견 시 경찰과 소방에 의료기관까지의 이송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일본도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가 전문의를 집으로 보내고 공무원과 함께 방문하여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에는 그 어느 나라보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검사와 치료와 지원을 수행한 우리나라에선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와도 경찰과 지자체에서 관련 전국 통계조차 집계하지 않는 등 병원전단계와 이송에 대한 적극적 관리가 미비한 실정이다.
– 우리나라는 정신건강복지법 응급입원규정에 따라 자타해위험이 큰 경우 즉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송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경찰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밖에 없다.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최소한 전문적 정신건강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면을 위해 경찰에 의한 병원이송 또는 찾아가는 평가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4.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 정신질환 치료를 가족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

– 핵가족 또는 일인가구 중심 사회로 변화된 상황에 중증 정신질환의 무거운 부담은 더 이상 개인과 가족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입원을 포함한 어려운 결정을 가족에게만 부여할 것인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의 폐지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사법입원이나 정신건강심판원 제도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을 위해 국가, 즉 법원이나 행정기관이 나서서 직접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입원 결정에 책임을 짐으로써 환자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며 의료진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중증 정신질환의 비자의 입원을 미국에서 판사가 결정하거나 영국과 호주에서 정신건강심판원이 결정하는 해외정신건강법 체계의 특징은 자타해우려가 있을 경우 전문가 평가를 의무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외래치료지원제를 통해 조기치료를 권장하고 입원을 최소화하여 인권과 안전 그리고 치료를 함께 고려하고자 하는 것이다.
–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대의원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보호의무자 입원제도의 폐지와 사법입원 또는 정신건강심판원제도의 도입을 학회의 공식의견으로 채택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자의 입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호의무자 입원과 의무조항의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고 충분한 준비를 통해 혼란 없이 시행하여 인권과 치료가 동시에 보장될 수 있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5. 정신응급과 급성기치료를 필수의료로 지원하고 지역사회 치료와 재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 지난 6월 정신응급상황에서 입원실을 찾아 260km를 표류하는 정신응급환자의 어려움이 보도된 바 있다.
– 코로나 이후 정신병원의 병상 간 이격거리를 늘리는 등의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국내 정신병원의 병상은 2017년 6만 7천 병상에서 2023년 5만 3천 병상으로 급감하여 1만 4천 병상이 사라졌다. 신체질환이 동반된 정신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상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만성적자로 10년간 1,000병상이 감소하였다. 아울러 급성기 정신질환을 치료하는데 들어가는 인력과 의료서비스에 턱없이 모자라는 비현실적인 수가시스템으로 급성기 정신질환을 담당하려는 병원의 수는 줄어들고 있어 그 피해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겪고 있다. 중증 신체질환 치료와 비교해 차별적인 현실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 일본에서도 2000년대 중반 동일한 문제를 경험한 바 있으며 급성병상과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상에 투자하고 정신과 중환자실을 설치하며 경찰의 이송을 원활히 하는 등의 조치로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 정신응급과 급성기치료에는 의료 서비스가 최우선이며, 퇴원 후에는 외래치료와 함께 체계적인 재활이 이루어져야 사회에 건강하게 적응할 수 있다. 퇴원 후 외래치료와 함께 지역사회의 사례관리, 의료기관의 외래기반 정신사회적 중재 및 사례관리, 낮병원, 정신재활시설, 주거시설, 동료지원 등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회복할 수 있는 체계로의 변환이 시급하다.

6. 사후예방을 위한 법정신의학의 활성화와 치료감호 시스템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 폭력 난동은 불안과 공포가 퍼지며 관심이 집중됨에 따라서 모방범죄의 확산을 불러올 수 있다. 이에 대한 적극적 사후예방을 위해서는 법정신의학과 치료감호시스템의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
– 이미 방치된 중증 정신질환자가 증가하면서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 수용자가 2011년 1,529명에서 2020년 4,978명으로 급증하였다. 2020년 국립법무병원의 수용인원은 1,038명인 수준에서 정신질환자가 일반시설에 수용되면서 교정시설 내 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 어느 나라나 범죄와 관련된 일부 중증 정신질환은 일반적인 정신의료체계와는 별도로 치료감호법 등의 형사법 체계를 통해 사회안전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가 2021년 기준으로 불과 78건 청구에 그쳐 매우 낮다. 폭력성이 높은 일부 중증 정신질환의 경우는 보건복지부나 의료시스템이 아니라 법무부가 관장하는 법정신의학 시스템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일본의 경우 범죄로 인한 양형기간이 끝난 후에도 판사와 정신과 전문의가 합의하여 국가의 권한과 의료 전문가의 전문성이 합의함으로써 수용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법정신의학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투자하고 전문성을 강화하여 정신건강에 대한 선량한 환자와 가족, 일반 국민을 보호할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바이다.

7. 정신질환 치료와 회복을 위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 해외에서는 조현병이 주로 발병하는 청소년과 청년 시기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특별한 지원 체계를 만들어 시행하고 국내에서도 일부 시도되고 있는데 청년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체계를 신설하고 강화해야 한다.
– 암센터, 아토피 센터 등 주요 신체질환 센터를 거점 의료 기관에 설치하는 것처럼 조현병 조기/집중치료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 조현병의 의료사회경제적 질병부담은 매우 크지만, 국가의 재정지원은 매우 열악한 현실이 개선되어야 한다. 조현병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조기에 적절하게 치료받고 재활하며 유지할 때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병이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의 중증 정신질환 체계를 손볼 수 있는 골든타임이 완전히 지나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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