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펜데믹 흔적이 내 몸에?…유전물질의 8%는 바이러스

고대 인류 HERV 감염 흔적, 6만개 이상이 단백질 생성하며 활동

인간 게놈의 8%는 고대 인류의 바이러스 감염 흔적이다. [사진=anusorn nakdee/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바이러스, 독감 바이러스, 감기 바이러스 등 바이러스는 무척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로 느껴진다.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은 이미 바이러스로 구성돼 있다. 인간 게놈(유전자 총량)의 8%는 바이러스다. 수백 만 년 전 인류의 조상들이 감염병을 경험하며 남겨진 ‘인간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HERV)’들이다.

미국 터프츠대 유전학과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조상들에게 발생한 팬데믹의 흔적들은 건강한 사람들의 몸속에서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특유의 복제 방식으로 인간 게놈의 일부가 됐다. 오늘날 에이즈(HIV)바이러스 등과 마찬가지로 고대 레트로바이러스 역시 스스로를 복제하기 위해 숙주인 게놈에 자신의 유전물질을 삽입했다. 이런 바이러스 유전물질들은 보통 다음 세대로 전해지지 않는데, 일부 고대 레트로바이러스는 난자, 정자 등 생식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

감염된 생식세포들을 통해 레트로바이러스의 DNA가 인간 후손들에게 전달된 것. 생식세포를 표적 삼는 영리함으로 레트로바이러스는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게놈과 어우러졌고, 오늘날까지 사람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는 상태다.

바이러스는 ‘프로바이러스(숙주 세포에 머물면서 해를 주지 않는 세포)’ 형태로 숙주의 몸에 자신의 게놈을 집어넣는다. 사람의 몸에 들어온 레트로바이러스는 약 30종, 프로바이러스는 6만 개 이상이다. 이는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겪어온 감염병의 역사를 보여준다.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가 종양 등의 질병 조직에서 활동한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터프츠대 연구팀은 여기에 더해 이 바이러스가 건강한 조직에서도 활동적인지 확인했다. 연구팀은 레트로바이러스 중 최근 가장 활동적인 HML-2에 포커스를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HML-2는 500만 년 전 멸종한 바이러스로, 현재는 인간 게놈 안에 부분적으로 남아 바이러스 단백질을 만드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팀은 1만4000개의 전신 조직 샘플을 대상으로 유전물질을 조사했고, 37개의 활성화된 HML-2 프로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고대 바이러스의 흔적이 여전히 인간 게놈에 남아있을 뿐 아니라, 보통의 건강한 사람들의 몸속에서도 단백질을 생성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바이러스의 유전적 잔해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질병을 일으키는지 여부는 아직 연구 중이다. 연구팀은 암세포에서 HML-2 입자를 발견했고, 루게릭병, 다발성 경화증, 정신분열증 등과의 연관성도 확인하고 있다. 단, 건강한 조직에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질병과의 연관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나 단백질이 약물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동안 레트로바이러스는 다양한 잠재적 약물의 표적으로 연구돼 왔다. 연구팀은 반대로 레트로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유익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연구 중이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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