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자루 썩어도… 이렇게 살아야지 않을까

이재태의 종 이야기(44)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과 8 신선(神仙)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은 2010년 세상을 떠나면서 상좌인 덕진스님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 머리맡에 남아 있는 몇 권의 책은 40년 전 매일 아침에 신문을 배달해 주던 소년을 찾아 전하여 주면 고맙겠다.” ‘생떽쥐베리의 위대한 모색’, ‘벽암록’, ‘선시(禪詩)’ 등과 함께 스님이 마지막까지 간직하였다가 50대가 된 그 소년에게 전한 6권의 빛바랜 책 중에는 19세기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소로우의 ‘월든(Walden)’이 있었다.

‘월든’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을 앞서 실행하였던 소로우가 그의 경험과 생각을 기록한 책이다. 단순히 숲에 은둔하며 생활하며 느낀 마음의 평온함을 기록한 감상적인 일기가 아니다. 상식적인 생각을 하며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자주적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월든 숲속에서의 생활을 담은 체험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대자연의 예찬과 함께 문명사회에 대하여 통렬한 비판, 그리고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의 면모가 담겨있다.

아래의 청동조각품은 월든 호수에서 유유자적하던 소로우의 모습을 제리 발란타인이 조각한 종이다. 미국의 조각가 발란타인은 1972년부터 97년까지 매년 1-2개씩, 일생동안 40개의 역사적인 인물이나 문학작품의 주인공을 주제로 한 청동종을 제작하였다. 그는 이 작업의 초창기였던 1975년에 소로우를 조각 작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20년 전 필자가 처음 이 종을 만났을 때,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어 낯설기만 한 소로우라는 인물이 궁금하였다. 아마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거나, 발란타인이 가장 열망하였던 방식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남들처럼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가업이었던 연필 제조업을 비롯하여, 교사, 측량 업무 등에 종사했지만 평생 일정한 직업에 정착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해에 ‘월든’ 호숫가에 들어가서 2년여 동안 혼자 오두막을 짓고 살았는데, 그때의 생활 경험을 기록한 것이 ‘월든-숲속에서의 생활(1854)’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많은 시인과 작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보스턴 북쪽의 한적한 도시 콩코드에 있는 둘레 3km의 월든 호수에는 150여 년 전 소로우가 집을 짓고 살던 터가 보존되어 있다. 집터에 세워진 나무 판넬에는 소로우의 글이 새겨져 있다. “나는 숲에 간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들만을 대면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내 방식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스파르타식으로 열심히 사는 것만이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내 인생을 깊이 있게 살아보고 싶었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한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공원 관리실 곁에는 그가 살던 오두막집을 원형대로 다시 지어두었다. 출입구 건너편에는 벽난로와 좌우 양쪽으로 난 큰 들창이 있다. 단칸집 한 쪽에 나무 침대가 있고 탁자와 책상, 그리고 세 개의 나무의자도 있다. 남아있는 가구의 일부는 그가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던 것이다. 그는 해와 달 이외에 그 집 안을 들여다 볼 사람이 없기에 창문에 커튼은 달아둘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오두막 주위의 모래 섞인 땅을 갈아 강낭콩을 심었고, 한쪽 편에는 감자와 옥수수 등을 경작하였다. 달빛이 밝은 밤이면 호숫가의 모래톱을 거닐었고, 어느 날 일기에는 “오늘 저녁 나는 월든 호수에 보트를 띄우고 앉아 피리를 불었다.”라고 남겼다. 그는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산과 들과 숲 속을 걸음으로써, 세속적인 얽힘에서 벗어나서 건강과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하였다라고 하였다.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이 기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기였다. 소로우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작가 헨리 솔트는 “그가 콩을 심고 콩밭을 매는 일은 자연을 배우고 삶을 배우는 과정과 같은 것이었다. 그가 미국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여 남길 수 있었던 어떤 것보다, ‘월든’이라는 저서를 씀으로써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훨씬 더 훌륭한 것이다.”라고 칭송하였다.

소로우는 월든 숲 속에서 홀로 지낸 지 일 년이 되던 어느 여름날, 구둣방에 수리를 맡겼던 구두를 찾으러 가다가 세금징수원과 만나게 된다. 세무원은 그가 몇 년 동안이나 인두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당시 매사추세츠는 20세에서 70세까지의 남성에게 인두세를 부과하고 있었다. 소로우가 다른 세금은 납부하면서도 인두세를 내지 않은 이유는 주 의사당 앞에서 버젓이 어린이, 여성을 포함한 흑인 노예를 가축처럼 매매하게 허락한 비인도적인 제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영토 확장을 위해 멕시코와 전쟁을 일으킨 미국 정부에 대한 항의였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친척이 그도 모르게 세금을 대신 납부하였기에 다음날 아침에 석방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매우 분노하며 출옥을 거부했으나 결국 강제로 방면되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권력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성찰은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책으로 소개되었고, 불의의 권력과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성찰한 이 책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위대한 저서로 인식되고 있다. 문호 톨스토이,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등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왜 당신네 미국인들은 돈 많은 사람이나 군인들 말만 듣고, 위대한 소로우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요?”라고 반문하였다.

소로우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였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으므로 호화로운 가구, 값비싼 주택을 위한 돈을 벌기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경험을 통하여 사람이 비전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살아나간다면, 그 사람이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생활을 소박하게 하면 할수록, 이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 진다고 하였다.

소로우처럼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대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할 수 있을 만큼 대범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양에는 소로우와 같은 삶을 살기 어려운 일반 서민도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살며 스스로 정진한다면, 영원히 자유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인간을 초월한 월등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그 월등한 존재가 바로 ‘신선(神仙)’이다.

신선은 중국 도교(道敎, Taoism)에서 믿어지는,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인(超人)에 가까운 신이다. 도교는 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도가(道家) 철학에 신선 사상과 음양오행, 불교 등의 여러 사상이 혼합되어 창시된 것이다. 인간은 원래 연약하므로 도교의 교리를 지켜 깨끗한 생활을 하며 신비한 방술(方術)을 닦음으로서 도에 도달할 수 있으며, 자연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것이다.

전래되던 신선사상에는 신선이 되려면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인 자격을 지닌 사람이 신선이 사는 산으로 들어가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후한시대에 도교가 성립되며 신선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이미지가 변하였고, 점차 신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게 된다. 구름을 타고 다니는 흰 수염 난 노인이 신령스러운 산에서 영생할 수 있는 묘약을 구한다거나, 인간 세상에 나타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친밀한 존재로 바뀌었다. 이후 각종 양생술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누구라도 이를 이용한 수행을 통하여 신선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신선은 신 보다는 인간에 더욱 가까운 존재가 된 것이다.

신선은 신분과 빈부의 차이가 없으며, 일반 민초들과 함께 호흡하는 상상속의 영웅이었다. 세속적인 지위나 명예를 벗어던지고 죽음마저도 초월하는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라도 한 번쯤은 꿈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신선을 숭배하고, 그림으로 그려 일상생활 가까이에 두었다. 우리의 민화에는 신선들이 모여 차나 술을 마시거나, 바둑을 두는 유유자적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어 있다. 1900년경 청나라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아, 나무, 금속으로 신선을 조각하고, 종 몸체에 라커 칠을 한 화려한 인물 종을 만들었다. 가까이에서 종소리로 울려 퍼지는 신선들의 대화를 듣고 싶었을까?

 

종리권(鍾離權), 이철괴(李鐵拐), 한상자(韓湘子), 조국구(曹國舅), 여동빈(呂洞賓), 장과로 (張果老), 남채하(藍采和), 하선고(何仙姑).. 이들은 대중들로 부터 가장 사랑을 받아오던 팔신선(八神仙)의 이름이다. 이들은 다양한 시대와 각각의 계층을 대변하는 캐릭터였기에 수 많은 신선 중에서 대표 신선으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각각은 ‘빈부, 귀족과 평민, 노인과 젊은이, 남녀‘로 대표되는 다양한 삶의 조건들을 골고루 대변하고 있으며 이들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믿어졌다.

종리권은 이들 중 우두머리 신선으로 연금술을 터득하였다고 하며, 뚱뚱하여 배를 드러내고 파초선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여동빈은 당나라 사람으로 종리권을 만나 신선술을 배워 신선이 되었다 한다. 그는 한 정직한 노인을 위해 우물물을 술로 만들어주었으며, 한 도인에게는 검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등에 칼을 멘 사람으로 묘사된다. 장과로는 당나라 사람으로 둔갑술에 능하고 흰 노새를 타고 다녔으며 노새를 타지 않을 때는 종이처럼 접어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대나무통 비슷한 북이나 불사조 깃털과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신혼부부에게는 아이를 가져다준다고 하여 신혼 방에 그의 그림이 많이 장식되었다.

한상자는 여동빈이 전해준 복숭아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신선이 되었다고 하며 피리를 불고 있거나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철괴는 당나라 사람으로 수도에 정진하여 신선이 되었고, 호리병을 들고 있는 거지의 모습이다. 8신선 중 유일하게 실존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믿어진다. 조국구는 송나라 장군의 아들이며 죽은 사람을 위에서 치면 되살아난다는 음양판을 손에 들고 있다. 남채화는 한쪽 발만 신발을 신은 여장남자로 꽃 광주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유일한 여신선 하선고는 7세기경에 살았고 천도복숭아를 먹고 선녀가 되었다고 한다. 손에 연꽃을 들거나 연꽃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필자는 지금 소로우처럼 살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칠 용기는 없다. 양생술을 터득하여 구름을 타고 다니며 영생하는 신선이 될 가능성도 없다. 그러나 장래에 멋진 삶이 다가올 수 있다는 희망이 모두 사라지게 된 현실은, 남은 인생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든다.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사는 ‘신선놀음’을 하며 도끼자루가 썩어가는 지도 모르게 살아 보고 싶다. 소로우처럼, 신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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