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봉사만으론 한계를 느껴, 교육 봉사에 나섰죠”

[사진=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가 국제의료봉사단체인 닥투게더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곳에서 가난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의료봉사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를 벗어나 환자 진료보다 의사를 교육하는 의료봉사단체가 만들어졌다.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의료진과 울산대 의대 학생이 함께 만든 국제의료봉사단체 사단법인 ‘닥투게더’다.

닥투게더는 “물고기 한 마리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탈무드의 격언처럼, 의사들을 교육시켜 보다 많은 환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 창립됐다. 1950~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 봉사 차원의 의료인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의 의료인을 교육하며 글로벌 의료에 기여하는 시대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된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56)는 “닥투게더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소화기 내시경 진단 치료 기술을 캄보디아를 비롯한 저개발국 의료인들에게 전수하고, 대상 국가와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정 이사장은 국내 위 식도 분야의 진료 및 내시경 치료의 세계적 명의로 꼽히는 의사다.

-닥투게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3년 캄보디아 프놈펜의 전공의 2명이 연수 목적으로 서울아산병원에 방문했다. 이들이 소속한 헤브론병원 얘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위브 헤브론 재단’은 서울의 의사생활을 접고 의료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던 김우정 박사가 설립한 것이었다. 의대 때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순간들이 눈에 펼쳐졌다. 제2의 의료봉사를 계획하고 주위 의사들과 의논했더니 문제점들이 발견됐다. 통역이 있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고, 진료 받은 환자들에 대한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 지역의 의료 시스템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발견됐다. 캄보디아에서는 전공의 교육도 부실해서 외부의 꾸준한 도움이 필요했다. 내시경 교육부터 시작해서 의사 교육을 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닥투게더는 교육, 협업, 혁신의 핵심가치를 구현하며 건강한 세상에 기여하려고 한다.”

정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서 예과 때부터 방학에 농촌 진료봉사를 했으며 본과 1학년 말에 ‘송정의료봉사회’에 가입, 한 주도 빠짐없이 토요일 오후에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인턴 때에는 토요일 봉사를 계속 하기 위해서 일요일 당직을 서는 바람에 365일 중 하루만 집에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시험을 치른 날 오후5시 무료진료소에 도착하니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도, 전공의도 아니라 말 잘 통하는 ‘정훈용 선생님’에게 진료 받고 싶다는 환자들이었다. 정 이사장은 “봉사활동 때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환자 진료스타일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사진= 정훈용 교수가 캄보디아에서 현지 의료인의 내시경 조작법을 감독하고 있다.]
-의사의 인생에서 두 번째 봉사활동, 대단하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의대와 인턴 때의 의료봉사는 소외지역의 환자를 직접 진료하면서 돕는 활동이었다. 당시 일부 친구들은 “의사가 되면 지겹게 진료할 텐데, 왜 벌써부터 고생하느냐”고도 했지만,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환자들과 마음으로 통할 수도 있겠다. 소통도 진료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턴 마지막 달이었던 1989년 2월까지 봉사활동을 했다. 이후 25년 동안 지역사회에 의료기관이 늘면서 진료봉사는 의미가 많이 약해졌다. 캄보디아에서 방문한 의사들을 통해 시작한 ‘제 2기 의료봉사’는 △재능기부 △교육자 교육 △협력 및 효율성 △의료체계에 대한 지원의 성격을 담은 새로운 봉사활동이 될 것이다.”

-누가 이 멋진 일에 동참하고 있는가?

“초기에는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출신인 최상석(외과), 강재명(내과), 김재선(외과) 선교사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2017년 사단법인 이전의 봉사단체를 설립했을 때부터 소화기내과, 외과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참여했다. 내시경을 사용하는 교육은 소화기내과에 국한되지 않으므로 다른 과 의사들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한미약품 사회사업 팀에서 지원해 ‘사랑의 열매’ 및 ‘위드헤브론’과 연계해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설립 시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뜻을 함께 했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나?

“2017년 캄보디아를 첫 방문했다. 이후 내시경장비(펜탁스)와 자동세척기(가주메디코)를 기증했고, 헤브론병원 내시경실 간호사를 서울아산병원으로 초대해 두 달 동안 내시경 간호 교육을 시행했다. 프놈펜의 대형병원인 깔멧병원(Calmette hospital)과 러시안병원(Khmer-Soviet Friendship Hospital) 의사들과 만나 공동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받았다. 3차 방문부터 내시경 교육을 본격 시행했다. 실습은 서울아산병원의 위내시경 교육 3D-모델(개발자: 이진혁 교수, 제작사: 애니메디솔루션)과 대장내시경 팬텀(올림푸스)을 이용했다. 우리 의사들은 헤브론병원뿐 아니라 1시간 떨어진 마을에서 캄보디아 의사들과 함께 진료 봉사도 했다. 2019년에는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Asan in Asia project’의 일환으로 두 차례 캄보디아-아산병원 치료내시경 합동심포지엄을 시행했다.”

[사진= 정훈용 교수가 캄보디아 현지에서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내시경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현지 방문이 어려울 것 같은데….

“올해 1월 1일부터 5일까지 11차 방문을 진행했고, 성황리에 마쳤다. 12차 방문이 5월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최소됐고, 대신 지난달 23일 원격 컨퍼런스를 시행했다. 원래 원격 컨퍼런스가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소화기내과’를 주제로 약식이 아니라 잘 짜인 컨퍼런스를 시행했다. 13차부터는 코로나19 상황을 봐서 공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다른 지역을 시범 방문할 예정이다.”

-뜻이 너무 좋다. 다른 병원 의사들도 참여할 듯한데….

“고맙게도 그렇다. 순천향대병원, 예수병원 등 우리나라 병원 의사들과 대만, 태국, 베트남 등의 의사들이 참여하거나 향후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봉사지역도 캄보디아의 바탐방을 비롯한 다른 지역, 몽골, 라오스,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과 아프리카 나라들로 확대될 듯하다. 특히, 박관태 선교사(간담췌 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는 몽골은 우리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향후 모범적 국제 교육 봉사단체로 진화할 것으로 믿는다.”

-학회에서 권위자로 인정받으면서 의대 교수의 삶을 정리할 수도 있을 건데, 제2의 도전을 택한 것이 경이롭다. 의사 개인으로서 닥투게더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의대 교수는 약 30년을 근무한다. 첫 10년은 적응(適應)-경쟁(競爭)-창의(創意)를 모토로 치열하게 앞만 보면서 달려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고, 다음 10년은 완성(完成)-관용(寬容)-조직(組織)을 바탕으로 일가를 이루는 기간이다. 마지막 10년은 양보(讓步)-교육(敎育)-봉사(奉仕)를 근간으로 하는 일종의 정리 및 사회봉사를 수행하고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고령화 사회가 된 이 시점에서 볼 때, 정년퇴임 이후 봉사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10년 동안의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교육봉사’라는 핵심가치를 가진 특이한 의료봉사단체인 닥투게더의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무한한 책임과 의욕을 느낀다. 의대와 수련과정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준비해 20년 동안의 삶을 꾸렸듯이, 현재 10년의 기간은 또 다른 20년의 삶을 향한 도전과 준비라고 생각한다. 의대생으로서 첫 의료봉사는 의사로서의 진료스타일을 갖게 해 주었고, 전문가로서 두 번째 의료봉사로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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