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만 잘 쬐면 비타민D 걱정 없다고?

[전의혁의 비타민D 이야기] ➂햇빛과 비타민D

많은 사람들은 햇빛만 쬐면 비타민D가 만들어진다고 오해한다. 햇빛을 통해 비타민D를 얻기에는 많은 변수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햇빛으로 충분한 비타민 D를 얻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외선B 만이 우리 몸에서 비타민 D를 만든다=엄밀히 말하면 비타민D를 만드는 것은 햇빛이 아니다. 흔히 햇빛이라고 하면 지구에 닿는 여러 태양에너지 중에서 가시광선, 즉 눈에 보이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빛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의 피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가시광선 바깥쪽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UV, Ultraviolet ray)이다.

자외선A(UVA)는 파장이 길어 진피층까지 침투해 콜라겐과 엘라스틴과 같은 단백질을 파괴하여 주름을 만들고 피부의 탄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멜라닌을 생성해 기미를 유발하며 피부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

자외선B(UVB)는 자외선A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자외선으로 에너지 방출량이 높기 때문에 피부가 붉어지거나 물집이 생기는 일광화상을 일으키며 피부암을 일으킨다.

자외선C(UVC)는 길이가 아주 짧아 오존층을 통과하지 않는 자외선이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가운데 자외선B가 피부 속의 콜레스테롤(7-dehydrocholedterol)과 화학반응을 하여 비타민D로 변환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런데 자외선B는 유리를 통과하지 못한다. 하루 종일 운전하는 택시, 버스 기사들에게나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비타민D가 하나도 생성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자외선 지수가 높은 시간에 비타민D가 잘 합성된다=야외에 나가 햇빛을 쬔다고 해도 아무 때나 비타민D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비타민D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정오 무렵, 즉 오전 10~11시부터 오후 2~3시 자외선 지수가 높은 시간에 가장 잘 생성된다. 쉽게 얘기하면 내 그림자가 내 키보다 작을 때가 바로 비타민D가 생성되는 시간이다. 또한 햇빛을 가리는 황사나 미세먼지가 있을 때, 흐린 날씨 등에는 자외선B가 차단돼 우리 몸에서 비타민D가 잘 합성되지 않는다.

셋째,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면 비타민 D가 생기지 않는다=자외선 차단제를 살펴보면 SPF와 PA 지수가 표시되어 있는데 ‘SPF(Sun Protection Factor)’는 일광화상의 원인이 되는 자외선B의 차단효과를 나타내는 자외선 차단 지수다. ‘SPF 15’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면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을 때보다 이론적으로는 15배의 시간이 걸려야 홍반(피부가 붉게 변하는 상태)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PA(Protection grade of UVA)’는 자외선A의 차단효과를 나타내는 지수로 PA+, PA++, PA+++ 등으로 나타낸다. +기호가 늘어날수록 차단력이 2배씩 증가하는데 PA++는 UVA를 90% 차단한다.

따라서 자외선 차단제인 선블록 크림을 바르면 아무리 오래 일광욕을 한다 한들 비타민 D를 생성하는 데 소용이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외선 차단제는 신체가 햇빛으로부터 비타민D를 만드는 것을 거의 완벽히 차단하기 때문이다. SPF8은 약 90%, SPF15는 약 95%, SPF30은 약 99%의 비타민D 생성을 감소시킨다. 게다가 자외선B는 우리가 입은 옷을 뚫고 통과하지도 못한다.

넷째, 나이가 들면 비타민 D 합성 능력이 떨어진다=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피부는 햇빛을 받아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같은 시간 동안 햇빛을 받아도 노인은 젊은이가 만들어내는 비타민D의 약 25% 정도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이 든 사람일수록 비타민D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더 많은 햇빛에 노출돼야 한다.

다섯째, 피부 색깔에 따라 비타민 D 합성 능력이 달라진다=피부가 검을수록, 즉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많을수록 비타민 D가 적게 만들어진다. 멜라닌은 자외선B를 흡수해서 비타민D 생산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17세기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수의 흑인들이 유럽 및 북미로 이주한 결과, 현재 흑인들은 통계적으로 백인이나 아시아인들에 비해 비타민D 결핍이 더 많고, 그로 인해 각종 질환에 더 많이 시달리고 있다.

여섯째, 거주 지역의 지리적 위치도 중요하다=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위도나 고도도 비타민 D 합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위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많은 질병들의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햇빛 노출과 비타민 D 결핍 및 질병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시발점이 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다.

거주 지역이 고위도일수록 자외선의 집적도가 떨어지게 되므로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35도 이상에서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만 비타민 D를 잘 합성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은 북위 37도여서 비타민 D 합성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또한 고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대기가 자외선을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고도가 높은 산악지역에 비해 비타민D를 만들어줄 자외선B를 덜 쬐게 된다.

이 외에도 노출 부위, 노출량, 개인 피부의 특성 등에 따른 여러 변수들이 있으니, 이러한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적당한 햇빛 노출 시간을 정하고 햇빛을 쬐기란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모처럼 마음먹고 몸에 좋은 비타민D를 만들러 야외로 나간다고 해도 비타민D 합성이 아예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게 당연하다.

설령 비타민D 합성 조건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해도, 비타민D 합성에 충분한 햇빛을 여유롭게 쬐거나 민낯으로 햇빛을 마주하는 용기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우리는 점차 스스로를 햇빛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한두 시간 산책으로 비타민D를 충분히 합성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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