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지할수록 목소리가 클까요?



위 사진은 1983년 발사된 무인 우주선 파이오니아 10호에 설치된 알루미늄 판입니다. 외계인들에게 태양계에서의 지구 위치와 그 속에서 사는 남녀의 모습을 알리는 그림이지요. 이 그림은 미국의 천문학자 겸 과학저술가였던 칼 세이건의 주장에 따라 그의 아내 린다 세이건이 그린 것입니다.

1996년 오늘은 칼 세이건이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칼 세이건은 아시다시피, 1980년 미국 PBS의 프로그램 ‘코스모스’의 해설자로 세계 각국의 웬만한 초등학생도 아는 명사가 됐지요.

세이건은 명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미국인의 95%가 ‘과학에 있어서 문맹’이며 그것은 남북전쟁 직후 노예로 끌러온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의 문맹률과 똑같은 수치라고 개탄했습니다.

저는 3년 전 건강편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공무원, 학자, 언론인 등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과학문맹률에 놀란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는데, 요즘에는 우리 국민의 문맹률에 대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온라인에 떠도는 글들과 댓글들을 보면 심각합니다. 어떻게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고 저렇게 떠들 수가 있지? 어떻게 저 글을 저렇게 해석할 수가 있지?

모두 자신의 편견으로 눈을 가렸기 때문일 겁니다. 왜 사람들은 사실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아등바등 아득바득 우기기를 좋아할까요? 왜 수많은 사람들은 주관적 판단에 불과한 것을 갖고 남을 깎아내리고 헐뜯는 것을 즐길까요? 왜 무지할수록 목소리가 클까요? 그런 분에게는 꼭 전하고 싶습니다. 칼 세이건의 이 말을.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다.”

숫자로 풀어본 삶의 십계명

몇 년 전 건강편지에서 전해드렸지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수 십 억 개의 점 중의 하나인 우리가 보다 더 넓고 건강하게 살기위한 비법이라고나 할까요? 1~10까지 숫자에 삶의 태도를 붙인 것입니다.

1 일일이 따지지 말자.

2. 이것저것 다하려고 하지말자.

3.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살자.

4. 사생결단하듯 살지 말자.

5. 오기부리며 살지 말자.

6. 육체적으로 건강하자.

7. 70%의 성취에 만족하자.

8. 팔팔하게 힘차게 살자.

9. 구구절절 변명하며 살지 말자.

10. 10%는 누군가에게 베풀며 살자. 

오늘의 음악

1982년 오늘은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슈베르트 즉흥곡 4번과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제곡으로도 유명한, 쇼팽의 발라드 1번이 이어집니다. 셋째 곡은 행복한 느낌이 드는 해바라기의 노래입니다. ‘행복을 주는 사람.’

♫ 슈베르트 즉흥곡 4번 [아르투르 루벤슈타인] [듣기]
♫ 쇼팽 발라드 1번 [아르투르 루벤슈타인] [듣기]
♫ 행복을 주는 사람 [해바라기]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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