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월급 반납사건이 유쾌한 이유

[유영현의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7: Park SE, Song JD, Kim KM, Park YM, Kim ND, Yoo YH, Park YC. Diphenyleneiodonium induces ROS-independent p53 expression and apoptosis in human RPE cells. FEBS Lett 2007;581:180-186

■ 박영철 부산대 의대 교수(미생물학교실)
■ 학문적 의의: 포식세포에서 Ref-1의 NO 조절 기작 규명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박사후 연구원)이나 연구교수 없이 8여 년 실험실을 꾸려오다 처음으로 실험실 연구교수를 뽑을 기회가 왔다.

포닥이나 연구교수가 없으면 모든 학생 연구원들의 실험을 직접 돌봐 주고 논문 자료를 제시하는 방법까지 세세히 지시해야 한다. 경험 없는 학생과 연구원들이 주저자로 작성한 논문을 수정할 때면 아예 처음부터 새로 작성하는 만큼의 노력이 들어간다.

포닥이나 연구교수는 교수의 이런 짐을 현저히 덜어줄 수 있다. 2003년 BK21 핵심과제를 수주하여 기회가 찾아 왔다. 부푼 마음으로 공채를 내었다.

마침 박영철 박사가 공고문을 보고 지원하였다. 그는 버클리대학에서 연구하고 귀국한 후, 교수 임용 과정에서 힘든 일을 겪고 집에서 칩거하던 중이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 경험이 있던 그를 나는 당연히 선택하였다. 이후 그는 내 방 연구교수로 학생 연구원들을 가르쳐 연구실 실험능력을 크게 높여주었다.

그는 1년 재직 후 부산대 의대 교수로 임용되어 이직하였고, 한동안 연구과제에 공동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등 동료 교수처럼 동행하였다.

본 논문은 온전히 박영철 박사의 작품이다

박 교수가 실험하고 작성하였다. 그가 교신저자 겸 주저자가 되어야 마땅한 논문이다. 박 교수가 내게 주저자를 제안하였을 때 사양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신은 교신저자로 충분히 만족한다며 내게 주저자를 제안하였을 때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나는 영어 조금 고쳐주고 주저자가 되었다. 이미 책임연구원으로 교신저자 논문들을 내던 나로서는 어색한 선택이었다. 이 논문 생각할 때마다 업적이 중시되던 때의 내 잘못된 선택이 부끄럽다.

박영철 교수와 가족. [사진=유영현 제공]
이 논문은 특별한 에피소드를 생각나게 한다. BK연구교수 임용 후 첫 월급을 수령하는 날, 박 교수가 봉투 하나를 들고 내 방에 들어왔다. “임용 첫 달을 제대로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달 치 임금을 반납하겠다”고 말하였다.

임용되고 첫 달, 그는 가정 사정으로 제대로 근무하지 못하였다. 나는 매우 당황하였다. 그는 내 만류에도 고집을 부렸다. 완강하게 우겨대는 박 교수를 이길 수 없어, “후에 박 교수를 위해 쓰겠다”는 토를 달고 봉투를 받았다.

그해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세포생물학회에 참석하였다. 학회는 박 교수가 신혼생활을 보낸 곳에서 가까운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그에게 “학회에 아내와 동행하라”고 제안하였다. 반납 받았던 한달 임금이면 박 교수 아내의 여행 경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그 곳에서 자란 첫째 아들 동반도 물었다. 간난 동생이 있어 사양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박 교수가 이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그의 아내와 아들 여행 경비를 모두 부담하고 말았다.

그가 내놓은 돈보다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도는 유쾌한 기억이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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