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피로… 단백질 수치에 답 있다?

세포의 에너지원인 미토콘드리아 기능 방해하는 WASF3 단백질 증가

근육통성 뇌척수염 또는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의 평균 WASF3 수치가 더 높고 관련 미토콘드리아 단백질 복합체의 수치는 더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만성피로증후군의 원인이 세포의 에너지 생성능력을 방해하는 단백질의 증가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연구결과는 만성 피로를 가져오는 장기 코로나19(롱 코비드)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4일(현지시간)《미국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된 미국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NHLBI의 폴 황 연구원과 그의 동료들은 ‘근육통성 뇌척수염(ME)’ 또는 ‘만성피로증후군’(CFS)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극심한 피로와 뇌 안개로 알려진 인지 문제를 겪는 이유를 추적해왔다. ME/CFS는 그 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한 정보가 제한된 질환. 미국에서만 최대 250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질환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원인을 과학자들은 아직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TP53이라는 유전자에 암을 촉진하는 돌연변이가 있는 38세 여성을 집중 연구했다. 이 연구에서 S1이라고 지칭된 이 여성은 공식적인 ME/CFS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극심한 장기 피로를 겪고 있었다.

연구진은 S1의 근육에서 조직 샘플을 채취해 TP53과 관련된 생화학 경로에 이상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WASF3라는 단백질 수치가 유독 높다는 점이 드러났다. WASF3는 세포의 운동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 연구진은 2011년 이 단백질이 ME/CFS 증상 발현과 관련됐을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

연구진은 이어 WASF3가 에너지 생성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와 상호 작용하는지 확인에 나섰다 ME/CFS 환자와 롱 코비드 환자들에게서 미토콘드리아 오작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S1의 세포와 다른 인간 및 생쥐의 세포에서 WASF3 수준을 변화시켰을 때 이 단백질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방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높은 수준의 WASF3는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이 정상적인 에너지 생산을 지원하는 분자 복합체로 조립되는 것을 방해했다.

연구진은 그 다음 WASF3를 다량 생산하게 하는 유전자 조작 생쥐를 만들었다. 이 생쥐들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에 결함이 있었다. 또 해당 생쥐들은 쳇바퀴를 돌리게 했을 때 일반 생쥐의 절반 밖에 달리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공식적으로 ME/CFS 진단을 받은 사람과 관련이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이 질환을 앓고 있는 14명의 근육 샘플과 10명의 건강한 사람의 근육 샘플을 비교했다. 그 결과, 이 질환을 앓는 환자의 평균 WASF3 수치가 더 높고 관련 미토콘드리아 단백질 복합체의 수치는 더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논문을 검토한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의 매디 호닉 교수는 ME/CFS와 같이 잘 연구되지 않은 질환에 이런 종류의 상세한 분자적 접근법이 적용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면서 “이번 연구결과가 ME/CFS뿐 아니라 롱 코비드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뇌 에너지 대사의 결핍이 ME/CFS 환자의 인지피로를 설명해줄 수 있다“면서 WASF3가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에 대한 추가연구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WASF3 수치가 높아지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황 박사는 세포가 단백질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세포막의 기능 장애인 소포체(ER) 스트레스가 그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ER 스트레스를 유발해 WASF3가 많이 생성됨에 따라 ME/CFS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험결과도 있다. S1과 ME/CFS 환자들의 근육에서 ER 스트레스의 생화학적 징후가 발견됐다. 또 실험실 페트리접시에서 배양된 S1의 세포를 ER 스트레스를 차단하는 약물로 처리하면 WASF3 수치가 낮아지고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회복됐다. 반대로 독소를 사용하여 배양된 세포나 생쥐에게 인위적으로 ER 스트레스를 유도할 경우 WASF3의 수치가 올라갔다.

하버드대 의대의 페레 푸이그세르베르 교수(세포생물학)는 이 연결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R 스트레스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장애로 인해 유발될 수 있기에 무엇이 먼저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예일대 의대의 이와사키 아키코 교수(면역 생물학)도 WASF3 단백질이 “전체 질병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퍼즐의 한 조각”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WASF3가 질병을 유발하는 요인과 피로와 같은 증상 사이의 여러 중개자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황 연구원은 ME/CFS와 롱 코비드에서 피로를 유발하는 다른 경로가 있을 수 있으며 질병의 동인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의 연구진은 임상시험 설계를 목표로 ER 스트레스에 제동을 걸거나 미토콘드리아에 대한 WASF3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약물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pnas.org/doi/10.1073/pnas.2302738120)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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