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부 해안 바다표범, 조류독감으로 떼죽음

조류독감에 감염된 포유류 간 전염 가능성 우려 커져

 

2022년 6월~7월 미국 동부 메인주의 바다표범 폐사 사례가 164건, 회색물범 폐사 사례가 11건으로 평소보다 이례적으로 많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병원성 조류독감(HPAI) H5N1의 변이가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해안의 바다표범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포유류 간 전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학술지 《신종 전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s)》에 발표된 터프츠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건강의학 웹진 ‘헬스 데이’가 보도한 내용이다.

터프츠대 커밍스수의대의 웬디 퓨리어 교수(바이러스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뉴잉글랜드의 바다표범과 회색물범 사이에서 H5N1 바이러스가 발생했으며, 이는 이 지역에서 조류 감염 파동과 동시에 발생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022년 6월~7월 미국 동부 메인주의 바다표범 폐사 사례가 164건, 회색물범 폐사 사례가 11건으로 평소보다 이례적으로 많았는데 H5N1 바이러스 유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해 대서양 연안 바닷새들 사이에서 발생한 H5N1의 두 번째 물결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2022년 초에 뉴잉글랜드 바닷새 1000여 마리에서 채취한 샘플에서 H5N1 조류독감을 발견했다. 이 질병은 여름 내내 조류들 사이에서 계속 나타났고 수백만 마리의 상업용 가금류로 확산돼 미국에서 70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 살처분을 초래했다.

연구진은 면봉 테스트를 통해 바다표범의 H5N1 감염 여부를 검사했다. 2022년 상반기에 폐사한 물개 132마리 대상의 검사에서는 바이러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6월과 7월에 샘플을 채취한 19마리의 바다표범에서는 균주가 검출됐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전염병 전문의 라이언 밀러 박사는 “포유류가 인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려하고 있다”고 최근 헬스 데이와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조류 독감이 인간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은 팬데믹(대유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인간 감염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지난달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H5N1 인체 확진 사례는 900건 미만이었다고 한다.

해당 보고서의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인간 H5N1 감염의 치사율은 50% 이상으로 높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경증 또는 무증상 감염이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높은 사망률이 과대평가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발병 당시 뉴잉글랜드 바다표범이 서로에게 H5N1을 전염시켰을까? 연구진에 따르면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바다표범이 바닷새를 근원지로 하여 환경 전파로 감염됐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감염된 바다표범이 바닷새를 잡아먹거나 새의 사체를 청소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바다표범 간에 H5N1이 전염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개별 바다표범이 바닷새와 가까운 곳에서 바이러스를 옮겼다면 종간 전파가 문제라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또한 감염된 바다표범들 사이에서 “포유류 적응과 관련된” 특정 변화를 포함하여 H5N1 균주의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견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상업용 가금류나 모피 생산 시설에서는 대량 살처분이 발병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진이 지적했듯이 조류나 바다표범 같이 이동성이 강한 야생 동물의 개체군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바다표범들 사이의 H5N1 전파가 가능성은 있다면 인간에게도 똑같이 작용하는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불가피한 것일까? 이달 초 캄보디아의 11세 소녀가 H5N1에 감염된 후 사망하면서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다. 소녀의 아버지 역시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회복됐다. 이 경우 감염된 가금류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사람 간 전염은 배제됐다.

뉴잉글랜드 바다표범의 감염 사례는 포유류 간 전염이 일어나고 있다는 유일한 징후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스페인의 한 밍크 농장에서 포유류 간 전염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대규모 H5N1 유행이 발생했다. 그 결과 농장의 밍크 약 5만2000마리가 살처분됐다.

미국 국립전염병재단(NFID)의 의료 책임자인 윌리엄 샤프너 밴더빌트대 교수는 “이들 밍크는 대체로 매우 밀집된 채 생활하고 있어 밍크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류독감은 포유류에서는 잘 전파되지 않지만 밍크는 다른 동물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더 잘 받아들이는 바이러스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 일어난 일”이라면서 “다행히 밍크 목장에서 일했던 모든 사람이 검사를 받았으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샤프너 교수는 인간에 대한 위험은 이러한 조류독감 균주 중 하나가 인간독감 바이러스에 취약한 돼지와 같은 동물을 감염시킬 가능성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인간독감 바이러스가 돼지 안에 함께 있으면 마치 시험관 안에 함께 있는 것처럼 유전적 구성 요소를 교환할 수 있고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쉽게 퍼질 수 있는 인간 바이러스의 유전적 능력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면서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세계적 팬데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전문가들은 경계가 필요하긴 하지만 즉각적인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미국 마운트시나이 사우스 나소 병원의 전염병 책임자인 애런 글라트 박사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다른 위험에 비해 여전히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대비해야 하고 매우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위험”이라고 말했다. 밀러 박사는 미국이 감기와 독감 시즌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연휴가 끝난 이후 독감의 순환 속도가 감소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전염성이 더 강한 인간 바이러스 중 하나와 조류독감이 실제로 합쳐질 위험은 다소 낮다”고 밝혔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의 교훈을 바탕으로 전 세계 과학자들은 동물의 H5N1 및 기타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 요소다. 샤프너 교수는 “WHO는 인간, 동물, 조류 등 항상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인플루엔자 균주에 대한 글로벌 감시를 조직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유전적 구성 요소를 이해하는 등의 초기 정보를 수집하는 레이더는 10년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c.cdc.gov/eid/article/29/4/22-1538_article)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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