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의 2주 항암, 어떤 희망을 품었었나?

마지막 손길 (대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병원은 여러분에게 어떤 곳인가요? 때론 두렵지만, 때론 세상 어느 곳보다 가장 위로를 주는 곳이 되지 않나요? 코메디닷컴은 연말을 맞아 따뜻하고 감동적인 의료현장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제18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작품들과 함께 생명과 사람, 그리고 소중한 이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실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재수 없어.” 백혈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이가 혼잣말로 중얼댔다. 상담실에 아빠와 같이 앉아 있던 아이는 짜증 난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럼, 암이네요?” “일종의 암이기는 한데, 혈액에 나쁜 세포들이 늘어나는 악성 질환이야. 혈액암이라고도 하는데……” “암 맞네요. 진짜, 재수 없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아빠가 목소리를 높였다.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 선생님 말고, 내가 재수가 없다고. 맞잖아?”

그때 아이의 팔목에 새겨진 조그마한 나비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아이는 아니구나. 아빠는 고등학생 딸이 백혈병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타나게 마련인 놀람과 불안과는 다른, 좌절과 피로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면담 전에 미리 확인한 가족력에 따르면 아이의 엄마는 유방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빠의 표정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듯한 좌절감과 앞으로의 투병 생활의 무게를 예상하는 듯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나는 항암 치료받을 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때 아빠가 물었다. “담배 피면 안 되죠?” “아, 그럼요. 당연히 안 되죠.” 보호자들은 의사의 권위를 빌어서 아이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싶어 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눈치껏 맞장구를 쳐주는 게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일이다. 대개는 ‘라면 많이 먹으면 안 되죠’, ‘밤늦게까지 게임하면 안 되죠’ 같은 질문들이다. ‘담배 피면 안 되죠’는 여고생 아빠에게서 흔히 들을 만한 질문이 아니다. 물론, 안 된다. 이어서 아빠가 말했다. “치료에 방해되는 거 맞죠? 피고 싶으면 치료 다 끝나고 피든가 해.” 애틋한 부녀 관계는 아니었다.

“요즘은 백혈병 완치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림프성 백혈병이 있고, 골수성 백혈병이 있는데, 청소년기에는 림프성 백혈병이 치료가 더 잘 됩니다. 조혈모세포이식도 필요 없구요.” 다음 날 아이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이 됐다. 아이가 툭 내뱉었다. “재수 없어.” “골수성 백혈병도 염색체 타입에 따라서 예후가 좋은 군이 있어서, 항암 치료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합니다.” 며칠 뒤 검사 결과가 추가로 나오자, 환자는 예후 불량군으로 밝혀졌다. “재수 없어…….”

조혈모세포이식을 준비해야 했다. 마침 오빠가 한 명 있었다. “일단은 형제 공여자가 가장 좋습니다.” 형제의 경우, 조직적합형이 완전 일치할 확률이 25%, 절반 일치할 확률이 50%, 전혀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25%다. 오빠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정말 재수 없어. 그 인간은 일생에 도움이 안 되네.” 그 순간,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그게 오빠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뭐, 어쩌라고. 맞잖아!” “그게 왜 오빠 잘못이야!” “그러니까, 그냥 재수가 없다고.” 그 순간, 이 세 명의 가족 사이에 생긴 깊은 균열이 내 눈에 뚜렷하게 들어왔다.

나는 다시 설명했다. “괜찮습니다. 요즘은 형제 공여자가 없는 경우가 더 많아요. 조혈모세포 은행에서 공여자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다행히 공여자를 찾았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항암 치료는 잘 진행이 됐고, 아이의 골수에서 백혈병 세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아이의 표정도 조금은 밝아지는 거 같았다. 짜증과 불안으로 채워졌던 눈빛은 조금씩 희망의 눈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항암 치료를 몇 차례 끝낸 후, 조혈모세포이식을 앞두고 시행한 골수 검사 결과를 확인한 날, 아이의 눈빛은 다시 차갑게 어두워졌다. 백혈병 재발 소견이 나온 것이었다.

결국, 다시 항암 치료를 해서 골수의 백혈병 세포가 충분히 줄어들 때까지 조혈모세포이식을 미루기로 했다. 그러나, 아이의 운은 다해 있었다. 항암 치료를 세 차례나 더 시도했지만, 백혈병 세포는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다. 항암 치료 합병증으로 중환자실까지 내려갔다가 가까스로 회복해서 병실로 올라왔지만, 아이의 혈액과 골수는 백혈병 세포로 점점 더 채워져 가고 있었다.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아빠는 팽팽한 고무줄을 놓듯이 순식간에 체념했다. 아빠는 암 투병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가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는 정말 희망이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힘들기만 하고 효과도 없잖아요. 이제 절대 중환자실 안 가요.” 나는 컨디션이 그나마 괜찮을 때 집에서 가족들과 지낼 것을 권유했고, 아이와 아빠는 퇴원 준비를 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상처가 많은 가족이지만, 마지막 시간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건 결국 가족일 테니까.

다음날 갑자기 병실에서 큰 고함이 들렸다. 아이의 아빠가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해!” “안 피웠다고!” “안 피우는 데 왜 라이터가 나와, 냄새도 나잖아! 너, 내가 다시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지!” 보안팀이 출동한 뒤에야 겨우 아빠를 아이와 떼 놓을 수 있었다. 상담실로 아빠를 모시고 가서 진정시켰다. 아빠는 그제야 가족 사정을 얘기했다. “쟤가 오빠랑 터울이 많아요. 와이프랑 같이 장사하면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좀 안정이 되고 나서야 둘째를 낳았어요. 장사도 제법 잘 됐고, 애도 자기 오빠를 엄청나게 잘 따랐어요. 그런데, 애 엄마가 유방암에 걸리고, 오래 고생하다가 떠났어요. 그때부터 다 꼬이기 시작한 거예요. 애는 저나 오빠가 엄마를 잘 돌봐주지 못했다고 섭섭해 하는 거 같은데, 저는 장사를 해야 어쨌든 병원비라도 벌 수 있었고, 오빠는 졸업이랑 취직 준비하느라 바쁘고. 특히, 오빠하고는 거의 원수가 됐어요. 정말 끔찍해요, 남매가 싸우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이후로 애가 너무 삐뚤어져서, 저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제는 더 이상 해 줄 것도 없지만.”

그 이후로도 며칠간 병실에서 아빠와 아이가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그걸 왜 나한테 얘기 안 해?” “알면 뭐 할 건데. 너 지금 어차피 치료받고 있잖아?” 끊임없이 삐걱대는 소리들. 나는 이 절망적인 가족사에 더 이상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퇴원을 하루 앞둔 날, 아이가 갑자기 치료를 다시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세게 하지 말고 그냥 살살 해 주세요. 다시는 중환자실 안 갈래요.” 병원에서 의미 없는 치료를 받는 것보다 며칠이라도 집에서 보내는 게 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이 아이의 하루는 다른 사람의 1년과 같은 무게일지도 모르니까, 라는 생각으로 저용량의 항암제를 투약하기로 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저용량의 항암제는 다행히 백혈병 세포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하면 1달은 연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주 정도를 치료받더니, 아이는 갑자기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만할래요, 이제. 약 냄새도 너무 싫고.” 예측하기 어려운 아이구나. 치료를 중단하자 백혈병 세포들은 그물에 팽팽하게 가두어져 있던 물고기들이 그물을 뚫고 갑자기 뛰쳐나가듯이, 골수에서 혈액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혈액의 백혈구 수치는 하루에 두 배씩, 지수함수의 곡선을 따라 수학적으로 냉정하게 불어났다. 이 속도면 1주일도 못 버티겠는데. 백혈병 세포가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폐 안으로 파고들자 아이는 숨을 쉬기 힘들어했다. 아빠에게 얘기했다. “이대로는 3~4일을 버티기 힘들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가족분들 불러서 인사시켜 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오빠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예상대로 오빠는 찾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밤, 병원에서 당직 전공의가 급히 연락이 왔다. 아이의 혈압과 맥박이 갑자기 떨어지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빠는 병실 밖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병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사망 선언이 이루어진 뒤였고, 의료진들이 아이의 몸에 꽂혀 있던 주사와 각종 의료기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병실 밖으로 나와서 아빠에게 말했다. “더 잘 치료해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아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지난주에 애 오빠 결혼식이 있었어요. 오빠는 쟤가 이렇게 심각한 상태인 건 몰라요. 결혼 준비하는데 차마 말을 못 꺼내겠더라구요. 애한테도 오빠 결혼식 얘기는 알리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어쩌다 알게 됐어요. 화를 내더라구요, 왜 얘기 안 했냐고. 얘기하면 뭐 하겠어요. 저 몸으로 결혼식장에 갈 것도 아니고. 그런데 갑자기 다음 날 애가 다시 항암 치료를 받겠다고 한 거예요. 결혼식 끝나고, 오빠 신혼여행 떠난 거 알고 나더니 치료를 그만 받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애도 푹 쉬겠죠.”

그제야, 나는 아이가 2주간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항암 치료를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장례식 때문에 오빠의 결혼식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찍 꺾여버린 삶의 마지막 2주, 자신이 원치 않았던 항암 치료를 받으며 오빠의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지탱했던 그 시간은 어쩌면 오빠에게 전하려고 했던 화해의 손길일지도 모른다. 화해하고 싶어도 손길을 차마 내밀지 못하기도 하고, 손길을 내밀었는데 상대가 그 손길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어렵게 내민 그 손길을 오빠가 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손길을 꼭 잡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소아청소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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