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V가 정말 다발성경화증을 유발할까? (연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발성경화증(MS)은 1868년 프랑스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가 비정상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여성에게 해당 병명을 부여한 1868년 이후 150년 넘게 그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1000만 명이 넘는 미군의 혈액검사 데이터를 분석한 하버드대 연구진에 의해 그 원인이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하나인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발성경화증은 면역체계에 이상이 발생해 면역세포가 척수와 뇌 신경세포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절연물질인 수초를 공격해 발병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그로 인해 시력 문제, 통증, 허약함, 팔다리 저림이 생기고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 백혈구의 하나인 B세포를 고갈시키는 항체의 주입을 통해 증세를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치료법은 없다.

과학자들은 이 다발성경화증의 주요 용의자 중 하나로 EBV를 오랫동안 지목해왔다.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99%는 EBV에 감염된 적이 있다. 게다가 EBV는 체내에 침입한 뒤 평생 B세포에 잠복한다. 문제는 다발성경화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의 95%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이상적 방법은 EBV에 감염되지 않은 젊은 그룹을 추적해 이들이 EBV에 감염됐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다발성경화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하버드대 T H 챈 공중보건대의 알베르토 아스케리오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1993~2013년 입대한 뒤 격년으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검사를 받은 미군 1000만 명의 의료기록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것이다.

이들 병사 중 955명이 훗날 다발성경화증에 걸렸다. 그 중에서 충분한 혈액 샘플이 확보된 병사는 801명이었다. 801명 중 35명은 첫 혈액검사에서 EBV 음성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평균 5년 뒤 35명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EBV 양성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다발성경화증에 걸리지 않은 107명의 대조군 중에서 절반만이 같은 기간 동안 EBV 양성반응을 보였다. 다시 말해 EBV 강염이 다발성경화증발병을 일으킬 확률이 32배나 높으며 이는 심한 흡연이 폐암을 일으킬 확률과 같은 수준이라고 아스케리오 교수는 밝혔다.

연구진은 다른 흔한 바이러스도 분석대상으로 삼아 조사했으나 EBV에 필적할 만한 바이러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또 다른 증거도 찾아냈다. 결국 다발성신경증에 걸린 병사들은 EBV 감염 이후 신경 저하와 관련된 단백질 수치가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아스케리오 교수는 “EBV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다발성신경증에 걸렸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EBV가 다발성경화증의 원인 제공자임을 확신했다.

다른 연구자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의 제프리 코언 연구원은 새로운 증거가 매우 흥미롭지만 여전히 연관성만 보여준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에마누엘 워반트 교수는 해당 논문이 EBV에 감염된 대다수 사람은 왜 다발성경화증에 걸리지 않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EBV에 감염된 1000명 중 1명만이 다발성경화증에 걸린다. 이 논문에 대한 논평을 집필한 로런스 스타인먼 스탠포드대 교수는 “분명히 다발성경화증을 일으키게 하는 다른 도화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EBV가 어떻게 면역체계의 교란을 일으키는 것인지도 설명되지 못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EBV가 B세포를 변형시켜 병원성으로 변하게 만든다고 의심한다. 스타인먼 교수를 포함한 다른 연구자들은 EBV단백질이 신경단백질과 유사하기에 면역체계가 둘을 구별하지 못해 신경을 공격하게 만든다고 추측한다.

EBV 백신을 개발해 다발성경화증의 가족력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접종하는 것이 EBV와 다발성경화증의 인과적 역할을 증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영국 퀸메리대의 개빈 조바노니 교수는 백신의 예방 효과야말로 “체크리스트의 최후의 칸을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몇 년 전 EBV의 표피단백질을 기반으로 백신을 개발했으나 임상시험에서 실패했다. 그보다는 현재 초기 임상시험 중인 2개의 백신이 더 유력하다. 코언 NIAI 연구원이 개발한 나노입자 백신과 모더나가 개발한 mRNA백신이다.

해당 논문은 다음 주소(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j8222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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