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화해를 꺼리고 이기려할까?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504호 (2021-12-27일자)

‘과학혁명의 열쇠’ 케플러의 화해정신

 

“사랑하는 친구여, 바라건대 나를 비난해서 수학적 계산이라는 물방앗간 틀에다 나를 가두지 말게나. 나의 유일한 즐거움인 철학적 사색의 시간을 줄 수는 없겠나?” -친구 빈센조 비안치에게 보낸 편지에서(1619년)

1571년 오늘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변두리에서 이 편지를 썼던, ‘과학혁명의 열쇠’ 요하네스 케플러가 몰락한 루터 교 집안에서 조산아로 태어났습니다.

케플러는 미숙아였던 데다 유아 때 천연두를 앓아서 병약했습니다. 가난한 집에 병치레가 끊이지 않았지만, 천재성에 노력을 더해 장학생으로 교육을 받고 튀빙겐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대학에선 미하일 매스틸렌 교수가 천동설과 지동설을 함께 가르쳤는데,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에 빠집니다. 케플러는 목사를 꿈꿨지만 학교의 추천에 따라 오스트리아 그리츠의 한 학교에 수학과 천문학 교사로 부임합니다. 그러나 눌변이어서 2년째 되는 해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코페르니쿠스 연구에 몰두해서 이것을 물리학, 수학으로 입증하는 업적을 이룹니다.

케플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중 수학자였던 덴마크 출신 티코 브라헤 밑에서 연구를 돕다가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행성 공전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밝혀냈지요. 오늘날 천체 망원경의 모델 격인 볼록렌즈 두 장을 사용한 망원경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눈의 수정체에 의해 망막에 시상이 거꾸로 맺힌다는 것도 알아냈지요. 행성의 주위를 도는 천체에 로마제국에서 왕이나 귀족을 따라다니는 경호원을 뜻하는 ‘Satelite(위성)’라는 이름을 붙인 인물도 케플러입니다.

케플러는 오늘날 SF소설의 선구 격인 《꿈》이라는 공상과학소설을 썼는데,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치료사이자 약재상이었던, 케플러의 어머니 카탈리나는 아들이 6살 때 혜성, 9살 때 월식을 보여줘 ‘천문학의 심성’을 길러줬습니다. 카탈리나가 나중에 한 여성으로부터 모함을 받았을 때 재판부는 《꿈》의 주인공 어머니가 악마들과 어울려 지내다 우주여행을 하는 부분을 문제 삼아 카탈리나를 ‘마녀’로 몰았습니다. 케플러가 어머니 구명을 위해 급히 나섰고, 카탈리나가 고문에도 굽히지 않아 무죄로 풀려났지만 6개월 만에 눈을 감아야만 했습니다.

칼 세이건은 케플러를 “마음에 드는 환상보다 냉혹한 현실의 진리를 선택한 최초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최후의 과학적 점성술사”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케플러가 점성술을 배척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황제나 귀족의 요구에 따라 점성술을 시행했는데, 기가 막히게 잘 맞췄다고 합니다. 케플러는 “점성술이라는 딸이 먹을 것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어머니인 천문학은 굶어죽었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어원으로는 점성술(Astrology)과 천문학(Astronomy)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 아시지요?

케플러는 현실과 이상뿐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화해의 과학자’였습니다. 신학적 믿음 안에서 수학적 진실을 설명하려고 노력했고, 구교와 신교의 화해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교의 엄격한 신앙고백 서명을 거부했다가 파문됐고, 종교전쟁의 와중에 늘 자리를 옮겨 연구해야했습니다. 그는 “진리는 하나인데 세 종파로 찢겨 서로 비참하게 싸우는 게 가슴 아플 따름”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황제와 귀족이 약속하고 지급하지 않았던 연구비를 받으러 유럽 곳곳을 돌아다녀야만 했는데, 1630년 11월 연구부채를 받으려고 바이에른 쪽으로 갔다가 추위 속에서 떨고 난 뒤 몸살을 앓고 사경을 헤맵니다. 케플러는 곁에 있던 목사에게 자신은 구교와 신교를 화해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가, 목사로부터 “예수와 사탄을 화해시키려는 발상”이라는 꾸지람을 듣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천국으로 떠납니다.

철학과 이성은 조화와 화해의 편에 있는 듯한데, 역사는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듯한데, 왜 현실에서는 한쪽 목소리를 얘기하는 사람이 더 그럴듯할까요?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굴만 고집할까요? 케플러가 옳은가요, 그 목사가 옳은가요?


[오늘의 음악]

많은 사람이 힘들었던 2021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첫 곡은 보즈 스켁스의 ‘We’re All Alone’ 준비했습니다. 이어서 슈베르트의 ‘겨울여행’ 중 ‘보리수’와 ‘봄에’를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제럴드 무어의 반주도 아름다운 곡이지요.

  • We’re All Alone – 보즈 스켁스 [듣기]
  • ‘보리수’와 ‘봄에’  –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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