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5호 (2020-11-02일자)

‘룬샷’ 007 시리즈와 숀 코네리의 만남

주말에 배우 숀 코네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언터처블》 《붉은 10월》 《인디아나 존스》 《더 록》 등에서도 강력한 인상을 남겼지만, 많은 이들이 ‘007 제임스 본드’로 기억하겠지요? 90세 나이에 바하마의 자택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뜨지 않았다니, 고종명(考終命·하늘이 준 천명을 다 하고 편안하게 죽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숀 코네리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6세 때 해군에 입대했고, 3년 뒤 십이지장궤양 탓에 제대해서 트럭기사, 막노동, 관 닦는 일 등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했지요.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한 투자로 보디빌더로서 열심히 몸을 만든 덕분에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극장에 취업했고 단역 배우로 영화에도 출연하게 됐다가 극적으로 ‘007 시리즈’를 만난 것이지요.

이 영화는 귀족 금융가 집안에서 태어나서 명문 사립고와 대학을 나와 영국 해군 정보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한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필름에 옮긴 것이지요. 플레밍은 1952년 영국 비밀정보기구 M16의 코드번호 007의 정보원 이야기를 담은 소설 《007 카지노 로열》을 발간해서 히트를 쳤습니다. 10여 편의 후속작품으로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가학성과 피학성의 외설작품, 윤리의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저질소설, 섹스·속물근성·가학성의 쓰레기….

1961년 미국 존 F 케네디가 ‘007 위기일발(원제는 ‘From Russia with Love’)’을 좋아하는 책 10권 중 하나로 밝히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했지요. 지금까지 1억 권 이상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지만 영화는 별개였습니다.

플레밍이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어떤 회사도 반기지 않았습니다. 숱하게 거절당했습니다. 스토리가 선정적이고 단순하다, 교훈이 없다, 제임스 본드가 너무 영국적이다, TV용으로도 모자라다….

플레밍은 영국과 미국의 영화 제작사를 설득하는 데 포기하고, 이언 프로덕션스에 제작권을 넘깁니다. 007 소설의 광팬이라는 두 명의 프로듀서가 함께 만든 회사였는데, 한 명은 직전에 본인의 영화사가 파산했고 한 명은 영화 제작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들은 펀드를 만들어서 겨우 자금을 마련했지만, 고액의 주연 배우를 섭외할 수 없어서 무명에 가까운 숀 코네리를 발탁합니다.

미국의 영화 배급사는 트럭 운전사 출신의 무명 배우가 주연인 이 영화를 대도시에 팔 수 없어서 주저했습니다. 결국 1962년 첫 편 《007 살인번호》는 오클라호마 주와 텍사스 주의 자동차 극장에서 개봉해야만 했습니다.

그 뒤 이야기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요? 숀 코네리는 이후 6편의 007 영화를 통해 세계적 배우로 떠올랐고, 007 시리즈는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습니다. 누가 제임스 본드를 맡는지, ‘본드걸’이 누구인지 세계 언론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였죠. 우리나라에서는 수입규제 때문에 1965년 《위기일발》이 처음 개봉됐는데 무려 54만 명의 관중을 동원해서 13년 동안 최다 관객 기록을 지켰죠?

미국의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사피 바칼은 《룬샷》에서 ‘007 시리즈’를 주창자가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무시하고 홀대받지만, 결국은 세상을 바꾸는 ‘룬샷 프로젝트’의 하나로 소개합니다. 어쩌면 플레밍 못지않게, 숀 코네리의 삶과 꿈도 룬샷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스코틀랜드를 사랑했고, 독립 스코틀랜드에 귀국하기를 꿈꿨지만 못 이룬, 룬샷의 배우 숀 코네리 경을 추모합니다. Rest in Peace, Sir Sean Connery!


[오늘의 음악]

첫 곡은 숀 코네리의 첫 주연작이죠? ‘007 살인번호 Dr. No’의 OST를 존 배리가 연주합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가수 셜리 배시가 부르는 OST 이어집니다. ‘Goldfinger’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주제곡입니다.

  • 007 살인번호 – 존 배리 [듣기]
  • 007 골드핑거 – 셜리 배시 [듣기]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셜리 배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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