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용감한 복지부 공무원

노점상의 어묵꼬치를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1년 전 이맘때, 눈이 제법 오던

겨울밤 어묵을 먹고 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잘 듣는 일반의약품 소화촉진제를

구하러 돌아다녔지만 약국이란 약국은 다 문을 닫아서 편의점에서 드링크제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냄새가 이상해 속에서 잘 받지 않았고 그날 밤 집에서 억지구토를

하고난 뒤에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지난 1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한약사회, 대한의사협회,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의약서비스 선진화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지난

11월 약사단체의 반발로 한 차례 파행을 겪었던 이 공청회에서는 윤희숙 KDI 연구원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고 영리법인 약국에 대해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이전과 다름없이 찬반 의견은 역시 팽팽하게 맞섰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과 관련된 단체끼리의 입장 차이는 별개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일반약 슈퍼판매라는 국민적 관심사가 영리법인 약국 허용이라는

더 몸집 큰 사안에 묻혀 함께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성격이 다른 두 문제이지만

기재부와 복지부의 입장은 각각 “둘 다 허용”과 “둘 다 불허”이며 이 중 더 큰

이슈는 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반약 슈퍼판매에 대해서는 논의가 집중되지

않는 모양새다.

반면 의사협회와 경제정의실천연합은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분리된 입장을 표명했다.

정승준 경실련 정책위원은 “일반약을 슈퍼에서 판매하더라도 약국에 그다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고된 일본 사례가 있다”며 “다만 일반약 재분류 작업은

오래 걸리므로 다각도의 모색이 필요하며, 일반인의 약국 개설은 폐단이 심해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청회 이튿날인 16일에는 소비자 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일반의약품 판매확대에 관한 토론회’에서 일반약 슈퍼판매를 반대하는 복지부와

약사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져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대변했다.

약사 단체나 복지부에서 일반약 슈퍼판매에 대해 반대하는 근거는 의약품 오남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뚜렷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국민 건강권에 대한 득과

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복지부에서는 오히려 근거를 따지기도 전에 협박성

코멘트를 날리고 있다. 김충환 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은 “의약 서비스 개편안은

발상 자체가 반(反)서민적”이라며 “자본 있는 사람이 약국을 개설하면 돈을 못

버는 약사는 해고돼 전문직의 자존심이 사라지게 될 뿐 아니라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가 마련한) 선진화 방안을 주무과장인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피투성이가 되고 총알받이가 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해 공청회에 참석한 약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 과장은 공청회

자리에서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허용에 대해) 편의점 협회에서 일반약 약국외

판매문제를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 제약사가 일반약 매출을 위해 뒤에서 조장하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등 공갈,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 과장은 의료의 산업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듯하다. 올 초 보건의료정보과장으로

있을 때에는 의료정보화 산업 육성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공교롭게도 해당

과가 없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부 공무원 몇 사람의 이분법적 잣대 때문에

소비자에게 도움이 갈 길이 막힌다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다. 의료산업화가 국민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되겠지만 둘의 교집합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산업화가 국민건강을 챙기는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부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허용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여론조사 결과로도 영리약국에는

부정적이지만 일부 의약품의 슈퍼판매 허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실질적으로 일반약을 슈퍼에서 판매했을 때 오남용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된

국가는 어느 정도 있는지, 일반약 슈퍼판매가 허용됐을 때 예상되는 오남용 피해와

제 때 약을 먹지 못해서 오는 피해를 견주어본 적이 있는지 복지부에 묻고 싶다.

복지부마저 객관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 한쪽 편에 서서

힘겨루기를 주도하는 듯해서 안타깝다. 지난해 겨울처럼 속이 뒤틀릴 때 또 손가락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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