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오심 통해 ‘두뇌는 상상쟁이’ 입증

아웃볼 오심 많은 이유, 뇌의 ‘시각적 상상’ 때문

2007년부터 영국 윔블던 테니스 경기에서는 오심이 없어졌다. 컴퓨터와 연결된

카메라 10대로 오차 범위 3mm까지 볼을 정밀 추적하기 때문이다. 공이 경기선 안쪽에

또는 바깥쪽에 떨어졌다는 판정 시비가 잦기에 취해진 조치다.

윔블던 테니스 주최측이 이처럼 정밀 카메라를 설치한 이유는 그만큼 테니스 경기에서

오심 시비가 잦기 때문이다. 오심 시비를 보면서 “이런 오심은 심판이 잘못 판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시각적 인식 체계에서 비롯되는 ‘뇌의 실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 뇌과학 연구자가 있었고, 그는 이를 데이터로 증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휘트니 박사는 2007년 윔블던에서 카메라

판독 결과 판정이 뒤집힌 오심 사례 83건을 찾아냈다.

그는 조사 전에 “공이 경기선 바깥 쪽에 떨어진 것을 안쪽에 떨어졌다고(in)

오심하는 비율보다는, 안쪽에 떨어진 것을 바깥에 떨어졌다고(out) 오심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인간의 시신경 체계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설정한 가설이었다. 실제로

오심 판정 83건 중에서 ‘in’을 ‘out’으로 오심한 경우가 70건으로, ‘out’을

‘in’으로 오심한 13건보다 월등히 많았다.

이런 편차는 왜 발생할까. 바로 우리 시각적 인식 체계의 ‘0.1초 오차’ 때문이라고

휘트니 박사는 설명한다.

인간은 볼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지만, 눈은 수단에 불과할 뿐이고 실제로 공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는’ 것은 뇌의 작용이다. 그런데 망막에 맺힌 영상을 신호

처리해 뇌의 시각 인식 부위까지 보내는 데는 0.1초 정도가 걸린다.

테니스 공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를 우리 눈과 뇌가 추적할 때 이

0.1초의 시간차는 매우 크기 때문에, 뇌는 물체의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고려해

‘미리 영상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상상해서 보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기에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테니스 공의 방향과 속도를 보고 뇌가 ‘알아서’

0.1초 뒤의 영상까지 ‘만들어’ 인식하기 때문에 테니스 경기선 안에서 움직이는

볼이 실제로는 ‘in’인데도 ‘out’으로 판정할 경우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높다는

가정이 이번에 실제 데이터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이처럼 뇌가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심판과 선수, 청중 모두에게 적용된다.

윔블던에서 초정밀 카메라 판독 시스템이 도입된 이유다.

연구 팀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테니스 선수는 특히 아슬아슬하게

아웃볼이 선언될 경우 무조건 오심을 주장하면 판정을 번복 받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아도 보는’ 신비한 작용은 현대 뇌과학이 속속 밝혀내고 있는 인간

뇌의 비밀 중 하나이다. 이 연구결과는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온라인판 28일자에 게재됐고, 미국 의학논문소개사이트 유레칼레트,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온라인판 등에 같은 날 보도됐다.

    권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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