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검은 전사가 당장 튀어 나올 듯

●이재태의 종 이야기(2)

무어인 탁상종 (The Moors Gong)

20세기 초-중반 프랑스에서 만든 나무조각된 무어인이 종을 치는 탁상 종이다 (높이 25 cm, 길이 24 cm). 우리나라에서는 징이나 꽹과리라 할 수 있겠으나, 바깥에서 막대기로 치는 종을 영어로는 gong이라 한다. 종을 치는 막대 해머의 중간에 탄력 실이 들어있어 해머를 앞으로 당겨 굽혔다가 놓으면 반작용으로 종을 치는 방식이며, 막대가 크롬 도금한 종을 쳐서 “땡”하며 소리를 낸다. 가정의 식탁이나, 레스토랑에서 테이블에 올려두고, 하녀나 종업원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렇게 종을 쳐서 이들을 부르는 것이다. 요즘은 전자식 벨로 이 모든 것을 대신하니 간편하기는 하나 정취가 없어졌다.

무어인 (The Moors)이란 어떤 민족일까? 많은 유럽인들은 스페인 반도와 십자군 전쟁터에서 기독교도 유럽 군대를 무지하게 박살내고 괴롭혔던 북아프리카계의 검은 이슬람 남자들과 같이 생각했다. 유럽 공예, 그림에서는 무어인을 강건한 전사나 힘센 하인 등으로 표현한 것이 많으니, 그들은 무어인에게 미지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서구 중심의 문학이나 역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무어인이란 어감은 어딘지 모르게 무지막지하고 잔인하며 검은 피부를 지닌 전사나 노예를 떠올리게 한다.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오셀로”는 베니스의 무어인 장군 오셀로에 관한 희곡이다. 이야고의 음모로 사랑하는 부인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살하는 비극적인 흑인 장군이다. 데스데모나는 이국적이고 강인한 흑인 장군오셀로에게 연정을 품게되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그러나, 이야고의 계략에 빠진 단순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이 무어인 장군은 자신의 열등감이 더해진 잘못된 판단으로 부인을 죽이게 된다. 그 계략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부인이 죽은 후였기에, 무어인 오셀로는 자신을 책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야고는 처형된다는 것이 베니스의 무어인 장군 “오셀로”의 줄거리다. 이 테이블 종도 검은 피부의 강건한 무어인 남성이 해머를 쳐서 강한 종소리를 낼 것 같은 선입감이 들 것이다.

(19세기 영국 화가 William Mulready의 오셀로 분한 배우 “Ira Aldridge의 초상화”)

유럽에서 무어인(Moors)은 8세기부터 15세기 말까지 스페인 대부분 지역을 통치했던 무슬림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중세 때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무어인들은 검은 피부를 지닌 사람 따위로 막연하게 인식되어 왔는데, 당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지배층을 형성했던 아랍인, 북아프리카 베베르인, 일부 노예출신 흑인(샤칼리바) 등을 통칭하여 무어인이라 했다. 유럽인들은 무어인들이 지배하던 시기의 이베리아반도에 대한 편견이 많았기에, 무어인은 미개하고 육체적으로 강한 야만족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의 문학이나 미술작품에 묘사된 무어인들은 전사나 우울한 표정의 하인들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근대 스페인 구어에서는 “Moro”라는 말이 모로코 혹은 알제리계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나 이슬람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스페인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 남부의 섬에는 무슬림 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슬람계 주민들을 “모로스( Moros)”라 부르기도 한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무어인은 아랍인과 베르베르 족에 속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역사적인 맥락에서 무어인이 차지하는 의미란 이슬람계의 공화국(모리타니아, 모로코, 서사하라, 알제리, 말리 등 북부 및 서 아프리카 나라들)에 사는 특정 인종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무어라는 어원은 그리스어로 “검다, 아주 어둡다”를 뜻하는 Mauros에서 유래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서는 ‘모로’(moro), ‘누와르’(noir) 혹은 ‘모르’(mor)의 형태로 나타나있고 여기에서 기원된 단어들이 현대에서도 쓰이고 있는데, 단어의 명사화가 이루어지면서 검은 색깔을 담고 있는 사물에도 쓰인다. 스페인어에서 ‘모레노’(Moreno)라는 것은 ‘선탠을 한 사람’을 뜻하며 쿠바에서는 흑인을 지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가운데 성(姓)이 Moreno인 가족들이 있으니, 이를 일반화하여 사용하는 실수는 하지 않기 바란다. 내가 20여년전 미국의 실험실에 같이 일하였던 동료는 Balan Moreno 박사이기도 했다.

 

(1600년경 엘리자베스 1세 영국여왕에게 동맹을 맺기위해 대사로 갔던 모로코의 Abdel-Ouahed ben Messaoud 의 초상화. 영국에서는 그를 무어인이라 불렀다)

※ 이재태의 종 이야기 이전 시리즈

세상을 깨우고 귀신 쫓고…신묘한 종들의 사연

코메디닷컴 관리자 kormedi@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hare with Kakao

댓글을 달아주세요.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