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21도에서도 추위 느끼면… 혹시 ‘이병’

[사진=아이클릭아트]
한여름에도 손발이 차서 냉장고 문을 열기 꺼려진다면 레이노증후군을 의심해보라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레이노증후군은 혈액순환이 느려서 손발이 차가워지는 수족냉증과 달리 손발로 가는 말초혈관이 수축돼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다. 우리 몸은 평소 교감신경계의 명령으로 혈관이 수축·이완하며 혈액순환이 이뤄진다. 레이노증후군에 걸리면 추위에 노출됐을 때 교감신경의 과잉반응으로 혈관이 과하게 수축돼 손발에 산소공급이 원활해지지 않는다. 증상이 심해지면 손발이 찬 것을 넘어 가려움, 저림, 통증 등도 느껴지며 손발 끝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하게 변하기도 한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브리검 여성병원의 심장혈관 전문의이자 하버드대 의대 교수인 마리 데니스 게르하르트-허먼 박사는 “레이노병은 여름에도 쉬지 않는다”며 “여름에도 차가운 바다나 식료품점의 냉동 창고 통로, 에어컨이 틀어진 극장에 들어갈 경우 쉽게 촉발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이노협회(RA)에 따르면 인구의 약 5~10%가 레이노증후군 환자로 분류된다.

1862년 이 질환에 처음 주목한 프랑스 의사의 이름을 딴 레이노증후군은 1차성과 2차성으로 나뉜다. 1차성은 기저질환이나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한다면 2차성은 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전신성 홍반성 루푸스), 피부경화증 같은 자가면역질환 또는 다른 질환에 동반돼 발생한다. 2차성이 더 심각할 수 있어 궤양, 조직손상, 절단이 필요한 경우까지 있다.

1차성 레이노증후군은 남성보다 여성이 많이 걸린다. 보통 10대~30대에서 발생하는데 미국 국립관절염‧근골격‧피부질환연구소(NIAMS)에 따르면 이는 유전적인 연관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내가 추위에 민감한가 봐’라며 넘길 수 있는 성가신 것에 불과하다고 텍사스대 맥거번 의대 모린 메이어스 교수(류머티즘)는 말했다.

반면 2차성 레이노증후군은 고혈압, 편두통,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관련 약물에 노출되거나 진동 기계의 반복 사용 같은 업무적 이유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NIAMS는 지적했다. 또 특정 화학물질에 노출되거나 감기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 특히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을 경우 ‘피자에 토핑이 따라오듯’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류마티스 관절염의 반찬(side dish)로 표현되기도 한다.

2차성 레이노증후군 환자는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렇지도 일도 힘겹게 느껴진다. 공항에서 짐을 찾을 때 키오스크의 터치스크린이 너무 차가워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름에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는 키보드를 치기 위해 손가락이 없는 장갑을 착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여름에도 냉동고나 냉장고 문을 열고 식품을 꺼내는 일이나 찬물에 손 씻는 것도 꺼려진다. 기온이 섭씨 21도만 되도 추위를 느끼고 섭씨 16도 이하가 되면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기 때문에 벙어리장갑을 끼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안에 핫 팩을 끼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한여름 무더위에 집 안에서 에어컨을 작동할 때도 실내온도를 29도로 설정한다.

레이노증후군에는 아직까지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전문가들도 증세를 줄여줄 수 있는 조언을 해줄 뿐이다. 게르하르트-허먼 박사는 환자들에게 카페인을 끊거나 하루에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손가락과 발가락 동맥이 좁아지는 ADHD 치료제의 복용을 삼가라고 조언한다. 메이스 교수는 몸통이 사지로부터 열을 끌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코어 부위를 따뜻하게 하라며 “여름에도 스웨터나 재킷을 껴입으라”고 권한다.

증세가 심각한 경우엔 혈관을 개방함으로써 혈액 순환을 향상시키는 혈관 확장제를 처방하는 의사도 있다. 메이어스 교수는 “문제는 그것들이 또한 혈압을 낮출 수 있고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NIAMS에 따르면 혈관 협착을 유발하는 신경을 파괴하는 절개수술이나 주사제를 통한 교감절제술이 증상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몇 년 만에 재발하기에 재수술이 불가피한 경우가 대다수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여름에 장갑을 끼는 것 같은 행동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드의 무신경한 반응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메이어스 교수는 레이노증후군 환자와 악수한 사람 중에 “당신 시체냐?”라고 반응하는 사람까지 있다면서 “그런 경우 상처받지 말고 그냥 ‘추위에 민감해서 그렇다’라고만 말하고 넘어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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