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태어날 때 손·발가락 세던 마음으로

[김용의 헬스앤]

아기 출생 시 손가락, 발가락부터 확인하던 마음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도 발달장애인들이 살기에 훨씬 편할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우리 할머니들은 손주가 태어나면 손가락, 발가락부터 확인하셨다. 5개씩이면 “그래, 온전하구나. 이제 아무 걱정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건강한 아기의 상징이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이었던 셈이다. 요즘은 임신부의 초음파 검진을 통해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아기를 처음 본 아빠는 예전 그대로 손가락, 발가락을 세어 본다. 이내 “휴, 다행이다”라며 행복감을 감추지 않는다. 건강한 아기의 탄생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저절로 감사 기도를 한다.

이런 기쁨이 아이가 두 세 살 쯤 좌절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발달장애 증상이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의사의 입에서 자폐증이 의심된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엄마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 아이가 말로만 듣던 자폐증이라니…” 엄마는 “다시 확인해 달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다른 병원에도 가 본다. 같은 진단이 나와도 믿을 수가 없다. ‘자폐’란 말은 입에 담지도 않는다. 아이의 자폐증 진단과 함께 늘 우울감을 달고 산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자폐증이 생긴 것일까? 자책감에 밤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의 잘못은 아니다. 자폐증은 생물학적 혹은 기질적인 뇌의 결함 때문에 생긴다. 뇌의 기능 이상으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서 자폐아와 정상아의 부모 간에 성격의 특성과 양육상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자폐아 부모는 하루 빨리 자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폐증은 다른 사람과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일어나지 않는 발달장애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자폐) 같은 상태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자폐증은 사회적 교류 및 의사소통의 어려움, 언어발달 지연, 행동장애 등이 주요 증상이다. 1943년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의 소아정신과 의사였던 레오 카너가 처음 학계에 보고했다.

자폐증의 명칭에 대해선 다소 혼란이 있다. 국내에서 많이 참조하는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보면 4판에서는 어떤 특정 결함보다는 발달 전반에 걸친 장애로 생기는 ‘전반적 발달 장애’라는 진단명을 사용했다. 이후의 후속 연구에 따라 최근의 5판에서는 통합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은 자폐증이란 용어도 사용한다.

자폐증은 소아 1000명당 1명 정도에서 발생하며 대부분 36개월 이전에 나타난다. 여아보다 남아에서 3~5배 많이 생긴다. 자폐장애의 예후(치료 후의 경과)는 아이의 지능, 언어발달 정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는 조기발견 및 조기교육, 교육 시간, 대인관계 여부 등이다. 처음 진찰할 때 지능이 70 이상으로 5~7세에 말을 하고 특수교육을 받은 자폐아의 예후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자폐장애의 치료-교육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조기에 재활치료를 시작할수록 예후가 좋다는 말에 응용행동분석(ABA) 집중 치료부터 언어치료, 인지치료, 특수체육치료, 미술치료 등을 받다 보면 매월 수백만 원이 든다. 부모의 경제력과 헌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다. 부모 한 명이 거의 24시간 아이에 매달려야 한다. 교육 과정이 좋다는 몇몇 사설 기관에는 부모들이 대기 순번을 위해 새벽부터 긴 줄을 선다. 부모는 평생 ‘을’의 입장으로 몸 고생, 마음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서 지내다 귀국한 자폐아 부모는 장애인을 대하는 국내의 냉담한 현실에 또 한 번 좌절한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장애인 재활-교육 환경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무엇보다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부터 달라져야 한다. 나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발달장애인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던가? 그들의 돌발 행동에 불쾌감만 느끼고 피하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나…

내 아이가 태어날 때 손가락, 발가락을 세던 그 심정만 남아 있어도 발달장애인들이 살기에 훨씬 편할 것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손가락 하나가 없는 아이의 부모보다 더 가혹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 두렵고 힘든 여정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오늘도 아이와 24시간 지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것이다.

나부터 반성문을 쓴다. 거리에서 만나는 발달장애인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아이 옆의 부모에게 힘을 내라는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다. 매년 1000명당 1명 정도 출생하는 자폐아는 적지 않은 숫자다. 내 가족, 내 친척에서 나올 수도 있다. 거리에서 보는 발달장애인은 모두가 우리 아이다. 그들이, 부모의 고달픈 마음이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의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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