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논문 후기는 그의 성장 소설이었다

[유영현의 의학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32: Kim YA, Park JB, Woo MS, Lee SY, Kim HY, Yoo YH. Persistent organic pollutant-mediated insulin resistance Int J Environ Res Public Health, 2019;16:448.

■사람: 김연아(동아대 의대 박사과정)
■학문적 의의: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에 의한 대사성 질병 종설 논문

본 종설은 POPs에 의하여 인슐린 내성이 초래된다는 역학적 증거와 실험적 증거를 훑은 논문이다. 참고 문헌 111개가 포함된 이 종설은 POPs와 인슐린 내성에 대하여 기존 문헌을 망라했다.

POPs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연아 선생이 작성하였다. 김연아는 박사과정 연구의 결과로 한 편의 실험 논문과 이 종설 논문을 남겼다. 그러나 내게는 두 편의 논문보다 김연아 박사가 남긴 박사학위 후기가 더 의미가 있다.

김연아 박사. [사진=유영현 제공]
김연아의 박사 학위 후기는 “2013년 겨울, 파이펫(*) 한 번 잡아 보고 싶다는 설레는 맘 하나로 지도교수님을 만나 뵈었던 기억이 선합니다”로 시작한다. 이 지도교수인 나에게도 첫 만남의 기억은 선하다. 그때 제한된 기간만 연구할 수 있다고 하여 난감해하는 나에게 간절하게 청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파이펫 pipette: 정확한 부피의 용액이나 시료를 옮길 때 사용하는 실험 기구. 편집자 주)

후기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저에게 과학고와 KAIST 입학의 좌절, 의과대학 진학은 사회적 시선과는 반대로 방황과 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2005년 의과대학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생리학 석사과정은 너무도 간절했던 제 꿈의 일부를 이루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속할 수 없었고 이후 ‘꿈’은 접어 둔 채 임상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꿈에도 그리던 기초의학 연구를 통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내 방에서 실험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기쁨을 표하였다.

[사진=유영현 제공]
김연아의 박사학위 후기는 한 편의 성장 소설이다. 간략하게 훑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하였다면 그 성장 소설은 슬프게 끝났을 것이다.

다행히 김연아는 파이펫을 잡았고 꿈을 이루었다

그 치열한 김연아의 성장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의 오랜 염원을 해결하는 데 꽤 큰 역할을 하는 지도교수로 등장한다. 헤르만 헤세의 보답이 틀림없다.

성장기에 읽은 자신의 소설들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나를 위해 헤세가 김연아로 빙의하였다. 헤세는 그의 소설 목록 마지막에 신작 성장 소설 ‘박사학위 후기’를 추가한다. 그는 이 신작 소설에 나를 등장인물로 넣었다.

김연아의 박사 후기는 누구든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나는 의학과 1학년 때 해부학을 선택하여 경력 전부를 실험연구하는 과학자로 살았다. 김연아 박사의 경우에 비추면, 나는 늘 설레며 살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내 선택이 남긴 ‘가지 않은 길’을 자주 생각하며 지냈다.

누구에게든 한 번의 선택은 ‘가지 않은 길’을 남긴다. 가지 않은 길에는 미련이 남는다. 누구에게나 그 길은 커 보인다. 특히 청년 시절의 선택은 인생 내내 깊은 회한을 남긴다. 나와 김연아 박사가 정반대로 겪은 체험은 인생에서 선택과 그 선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깊은 함의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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