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츠 박사와의 리턴 매치…이번엔 설욕했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9: Lee SW, Rho JH, Lee SY, Chung WT, Oh YJ, Kim JH, Yoo SH, Kwon WY, Bae JY, Seo SY, Sun H, Kim HY, Yoo YH. Dietary fat-associated osteoarthritic chondrocytes gain resistance to lipotoxicity through PKCK2/STAMP2/FSP27. Bone Res. 2018;6:20.

■사람: 마틴 로츠(Martin Lotz,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Scripps Institute), 노지현(동아대 환경보건센터), 이성원 이상엽 정원태(동아대 의대 류마티스내과)
■학문적 의의: 골관절염에서 PKCK2/STAMP2/FSP27 통로 규명

로츠 박사와 첫 맞짱 승부에서 처참하게 패퇴(*)하였지만 나는 그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 코메디닷컴 2024.02.07 “골관절염 권위자 마틴 로츠에 맞짱 떴다 폭망하다”) 

로츠 박사와 경쟁하던 또 다른 연구 주제는 ‘유리지방산’ 연구였다. 비만한 사람의 혈중에는 유리지방산 농도가 높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지질은 독성이 없다”라고 생각하였고, 유리지방산이 골관절염을 유도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학자들조차 상상이 미치지 못하였다.

마틴 로츠 박사. [사진=유영현 제공]
난 지질 불균형 연구에 들어서면서 그 빈 구멍을 찾았다. 그러면서 유리지방산이 관절연골에 축적되어 관절 연골세포를 파괴하고 골관절염을 유도한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로츠 박사도 언젠가 이 이슈에 대해 논문을 낼 것이라 짐작하였지만, 경쟁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나는 연구를 서둘렀다

그 가설을 입증하는 자료들을 차곡차곡 얻어 갔다. 곧 논문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던 2014년 어느 날, 나는 관절염 최고의 잡지 ‘관절염&류마티스'(A&R)에서 그의 논문을 발견했다. “역시 로츠 박사!”였다.

그의 논문은 “불포화지방산 팔미틴산이 연골 세포사를 유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곱씹어가며 논문을 다시 읽어 보니, 이를 돌파할 여지는 있었다. 로츠 박사의 모든 연구가 그렇듯 이번에도 세세한 분자통로 기작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또 비만 환자의 혈중에서 평행하게 높아지는 포화지방산이 관절연골 세포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난 이전까지만 해도 누구에게 추월을 당하면 더 이상의 연구는 중단하고 자료를 급히 주워 담아 지명도가 더 낮은 잡지에 제출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오기로 이 연구를 수년 더 이어갔다.

마침내 내 논문은 로츠 논문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새로운 동물모델을 추가하였고, 마침내 유리지방산에 의한 연골 세포사에 대한 아주 큰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무려 5년이나 걸렸다.

논문은 ‘A&R’보다 인용지수 훨씬 높은 잡지에 게재되었고, ‘한빛사'(한국을 빛내는 사람들) 논문으로도 등재되었다. 공동 1저자 노지현 연구원과 이성원 교수, 두 사람 모두 한빛사 저자가 된 것이다. 로츠와의 리턴 매치는 초반엔 추월당하였으나, 후반엔 전혀 다른 연구로 그와 직접 겨루지 않고도 승리를 얻었다.

[사진=유영현 제공]

논문은 성공적이었으나…’디크레센도’해야 할 때 다가와

본 연구 이후, 두 가지 아름다운 결별이 있었다. 이 논문이 채택될 무렵, 연구 액수가 많은 개인 연구과제가 연장되지 않았다. 연구원 인건비 조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또 젊은 사오십대 우수연구자들과 신규평가에서 경쟁을 벌이게 된 상황도 내게 부담이 되었다. 연구를 더 키워나갈 나이까지 이미 넘은 듯했다.

“디크레센도! 인생에도 ‘크레센도’(Crescendo, 점점 더 강하게)와 ‘디크레센도’(decrescendo, 점점 더 여리게)가 있다. 맹렬하게 일하여 확장하는 때가 있으면, 때가 되면 줄이고 늦추어야 하는 시기가 있다.”(유영현 ‘드럼이야기’, 2022년 예솔 출판).

나는 20여 년 내 방에서 헌신해오던 노지현 선생에게 이런 형편을 말하였다. 어차피 몇 년 후. 내가 정년이 되면 맞을 상황이었다. 나는 그간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하였고, 노 선생 역시 내게 감사를 표하였다. 노 선생은 내 방을 떠나 다른 길로 갔다.

동아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님들과의 공동연구도 접기로 하였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교수님들은 오히려 내게 깊은 감사를 표하였다.

두 가지 아름다운 결별은 내 경력 마감기를 위해서도 축복이 되었다. 너무 다양한 연구과제와 인건비로 인해 늘 무거웠던 내 어깨가 가벼워졌다. 마지막 몇 년은 그래서 짐이 아닌 축복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펼쳐 놓은 연구들을 잘 마무리만 하면 될 여건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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