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수집가의 패러다임 이동 올라타기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5: Lee SW, Rho JH, Lee SY, Kim JH, Cheong JH, Kim HY, Jeong NY, Chung WT, Yoo YH. Leptin protects rat articular chondrocytes from cytotoxicity induced by TNF-α in the presence of cyclohexamide. Osteoarthritis Cartilage, 2015;23:2269-2278.

■사람: 이성원 교수(동아대 류머티스내과)
■학문적 의의: 렙틴(leptin)이 관절연골 세포사를 막는 기작 연구

어니스트 러더퍼드. 그는 물리학 이외의 과학은 현상을 모으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우표수집’이라 칭하였다. [사진=위키백과]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자연과학은 물리학이거나 우표수집”이라는 말을 하였다. 러더퍼드는 이 말을 통해 물리학은 보편 지식 체계인 이론을 탐구하는 반면. 다른 과학들은 자료를 모아 현상을 기록하는 학문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표하였다.

물리학자가 아닌 다른 과학자들에게는 불쾌하게 들렸을 테다. 러더퍼드의 이 견해 이후에 나타난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동 이론에 의하면 우표수집은 정상과학 활동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토머스 쿤에 의하면 정상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 내에서 새로운 것을 밝혀내는 단계의 과학을 의미한다. 내가 골관절염 연구에 뛰어든 시점의 정상과학은 관절연골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충격 때문에 손상이 누적되어 골관절염이 발생한다는 패러다임 안에서 움직였다.

이후 TNF-α와 같은 골관절염을 일으키는 화학적 인자가 연구에 포함되었지만, 연골의 물리적인 손상 이후 출현하여 골관절염의 병인에 관여한다고 여겨졌지 화학적 인자가 골관절염의 일차 원인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나도 이 패러다임 내에서 우표수집에 나서, 관절염 분야 최고 잡지에 논문을 내며 깃발을 날렸다.

이 우표수집에 이성원 교수가 의문을 제기하였다. 몸의 체중이 주로 전달되는 무릎관절의 골관절염에는 물리적 손상이라는 오랜 개념이 여전히 맞았지만, 손가락 관절의 관절염을 설명하는 데는 물리적 손상 개념이 부족하다고 비평하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십여 년간 골관절염이 연골에 가해지는 화학적 인자에 의하여 유발될 수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점차 얻고 있었다. 정상과학에 위기가 찾아왔다.

정상과학 위기는 패러다임 이동을 거쳐 과학혁명 탄생으로

과거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경쟁하면서 골관절염에 관한 연구는 이미 혁명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선도적인 골관절염 연구자들은 골관절염을 연골에 가해지는 국소적 손상이 아닌 전신 질병의 한 형태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건너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가 주목한 골관절염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화학적 인자는 렙틴이었다. 1994년에 밝혀진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만들어져 식후 포만감을 느끼는데 작용하는 물질이다. 식욕조절에 관여하므로 대사 조절에도 관여한다. 렙틴의 조절 이상은 비만과 관계있다. 본 연구를 수행하기 이전, 연골에서도 렙틴이 생성된다고 보고되었다.

우리는 렙틴이 TNF-α의 조절을 통하여 연골 세포사를 조절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에 돌입하였다. 짧지 않은 기간의 실험을 거쳐 우리 가설은 입증되었다. 렙틴은 관절연골 세포사를 제어하여 골관절염을 조절한다는 자료를 얻었다. 본 논문은 골관절염 전문 연구잡지 ‘Osteoarthritis and Cartilage’에 게재되었다.

바야흐로 류머티스내과와의 공동연구는 과학혁명의 물결을 탔다. 우리는 새 패러다임 속으로 옮겨졌다. 이후에도 우리는 ‘골관절염은 전신 질병’이라는 정상과학 속에서 우표수집에 다시 열을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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