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시간은 돈보다 귀하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⑲학생들이 잡일에서 벗어난 사연

논문 19: Lee JS, Yoon YG, Yoo SH, Jeong NY, Jeong SH, Lee SY, Jung DI, Jeong SY, Yoo YH. Histone deacetylase inhibitors induce mitochondrial elongation. J Cell Physiol. 2012;227:2856-2869. Lee JS, et al. J Cell Physiol, 2012

■사람: 이지숙(박사과정)

■학문적 의의: HDAC 억제제에 의한 미토콘드리아 길이 신장 기작 연구

이름값 떨어지는 ‘지방 의대’에서 실험실을 유지하느라 늘 조바심을 내었다. 학부 학생들의 연속된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기초의학 실험실 책임자에게 대학원생 유지는 고민거리였다.

다행히 연구 만년까지 대학원생들이 끊어지지 않았던 큰 행운을 누렸는데, 이지숙 양은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고마운 학생이다.

어느 날 이지숙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내게 나타났다. 내 기억에는 학부 거의 전 과목 A+를 받았던 성실한 학생이었다. 이지숙은 대학원 재학 중에도 매우 열심히 공부하고 실험하였다.

이지숙의 자리. 실험실 모든 학생에겐 이처럼 작은 공간이 제공된다. 이 곳에서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각자의 꿈을 꾼다. [사진=유영현 제공]
본 연구는 항암제인 HDAC 억제제들이 미토콘드리아 길이 성장을 유도한다는 현상을 밝힌 논문이다. Mfn1, Opa1, Fis1 등 미토콘드리아 모양 형성에 관계하는 분자들이 관여하는지도 밝혔다.

세세한 분자 기작을 밝히지는 못하였으나 다양한 세포들에서 여러 HDAC 억제제들이 미토콘드리아 길이 확장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 권위 있는 세포 생리학 잡지에 논문이 채택되었다. 방대하고 아름다운 미토콘드리아 모양 자료가 본 논문에 수록되어 있다.

이 논문을 생각하면 미토콘드리아의 다양한 모습이 떠올라야 마땅한데 오히려 시험관 더미가 눈앞에 불쑥 나타난다.

당시 실험실 막내였던 이지숙에게는 실험실 잡일이 많이 주어졌다. 실험실에 가면 이지숙이 시험관을 씻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 연구가 늘수록 이지숙의 잡일은 더 늘어갔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던, 나는 ‘꼰대’였다

어느 날 시험관 씻는 이지숙을 다시 보는 순간 뇌리에 충격이 왔다. 나는 실험실 미팅에서 “젊은 시절, 시간은 돈보다 귀하다”고 자주 말하였다. 거기다 “시간을 아낄 수 있으면 비용이 많이 드는 시약이나 키트를 구입해 사용하라”는 말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실험실 예산은 항상 모자랐다. 연구비 재원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실험실 사람들이 느끼도록 표현하였다.

학생이나 연구원들이 조심스레 다가와 필요한 실험 재료를 말하면 흔쾌히 사라고 답은 하였지만, 내 말과는 달리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뜻 입 밖에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시약이나 키트를 사고 싶을 때마다 그들은 벽을 느꼈을지 모른다.

돈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내 말은 그래서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거나 “(요즘 학생들)헝그리 정신이 어떻다”느니 하는 ‘꼰대’의 말로 들렸을 것이다.

제정신이 들고 보니 이지숙 앞에는 세척액 거품과 함께 산더미처럼 솟아오른 시험관들이 놓여 있었다. 돈보다 시간을 중시하라던 내 반복 주장은 그간 허튼소리에 불과하였다는 깨달음이 왔다.

나는 즉시 실험실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였다. 이후 우리 방에서 대학원생들은 잡일 대신 실험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는 피펫도, 배양액도, 모두 일회용으로 대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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