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 극복 가능한 병…치료율 낮추는 흡연은 관리 필요”

[바이오VIBE]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김태형 교수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김태형 교수. [사진=코메디닷컴]

여러 질환 중에서도 잘못된 정보로 인해 사회적 낙인이 강하게 자리잡은 경우가 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과 ‘에이즈’라고 부르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그렇다. 감염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오해가 깊기 때문이다.

최근 코메디닷컴과 만난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김태형 교수는 “HIV 감염은 이제 극복이 가능한 질병이 됐다”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개인에게도 극복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극복이 가능한 병”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짚었다.

이와 관련해 HIV/AIDS 관리 분야에 대두되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라는 개념이 있다. HIV 치료를 적절히 받아 체내 바이러스가 미검출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바이러스는 전파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임상 연구와 진료 경험을 통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는 남녀 커플 중 한 명이 HIV 감염인이라도 자연 임신을 통해 아기를 출산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그런 시대가 됐다”며 “더이상 HIV 감염은 생물학적으로 낙인이 따라다닐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HIV 감염인이 우리나라에서 누적 1만 명을 넘은 지 10년이 됐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국내 누적 감염인 1만 명을 넘었고 연간 신규 감염인 수도 처음으로 1천 명을 넘어섰다. 10년이 지난 지금 누적 HIV 감염인 수는 1만 9천 명 수준으로 곧 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HIV 감염과 동일시 하는 에이즈는 과거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HIV에 감염되기만 해도 ‘죽는 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에이즈로 진행되기 전인 HIV 감염 상태에서 효과적으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nti-Retroviral Therapy, ART)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더는 죽는 병이 아니게 됐다. 과거에는 하루에 30알 정도의 알약을 복용해야 했다면, 지금은 하루 한 알 복용으로 효과적인 바이러스 억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를 통해 에이즈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감소했으며 에이즈 환자 이전 단계인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도 길어졌다. 이제는 만성질환과 동일하게 관리가 가능하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분위기다. 실제 국제 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에서도 HIV 치료 약물을 복용하는 20세 감염인의 기대 수명은 78세 내외라고 보고되기도 했다.

HIV가 만성질환처럼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염인들의 기대수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흡연’ 문제이다. 감염인에게 흡연은 감염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욱 치명적이다. 미국 재향군인회에서 실시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일반 흡연 인구에 비해 HIV 감염 흡연 인구는 폐암 발병 위험이 14배 증가하고 실제 폐암 발병율이 약 2배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더욱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받더라도 흡연하는 40세 이상 남성 감염인의 경우, 에이즈보다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10배 더 높게 나왔다. 흡연은 폐질환 외에도 수많은 질병을 유발해 HIV 감염인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흡연은 수많은 질환을 유발함에 동시에 기대수명 자체도 줄인다. 항바이러스 치료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감염인들을 분석한 미국의 한 모델링 연구에 의하면 흡연을 계속하는 40세 HIV 감염인은 흡연 이력이 없는 감염인에 비해 기대수명이 6년 이상 감소했다. 즉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서 흡연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HIV 감염인의 흡연율은 비감염인 대비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된다. 2022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치료 중인 미국 HIV 감염인의 42%는 현재 흡연자이며, 또 다른 20%는 흡연 이력이 있다고 파악됐다. 이때 감염인의 흡연율은 일반인에 비해 2배 가량 높았다.

우리나라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국내 HIV 감염인 커뮤니티 러브포원(LOVE4ONE)은 격년 주기로 감염인 대상 인식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 공개된 2022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99명 중 41.7%가 평소 흡연을 한다고 응답했고 7%는 흡연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감염인의 흡연율은 일반 성인 인구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HIV 감염인들은 치료 예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우울증,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상황, 금연 시 체중증가에 대한 우려 등으로 흡연을 지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금연은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을 증가시키며 다양한 질병 발생 가능성을 감소시킨다”며 “미국, 유럽을 비롯한 해외 HIV 감염 치료 가이드라인에는 의료진 진료상담 시 감염인의 금연을 적극적으로 권고하도록 한다. 적극적인 금연 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김태형 교수. [사진=코메디닷컴]
김 교수는 HIV/AIDS 등을 포함한 폭넓은 감염질환을 전문진료 분야로 의술을 펼치고 있다. 환자 진료 외에도 대한감염학회, 대한에이즈학회, 대한감염관리학회 등에서 학회·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질병관리청 AIDS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다음은 김태형 교수와의 일문일답.

Q. 국내 HIV 신규 감염인 수가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전망도 나오는데.

김 교수- 내국인 통계만 따로 본다면 신규 HIV 감염인 수가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 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 활동이 침체됐기 때문에 HIV 전파도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HIV 검사 기회도 제한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팬데믹 영향권 아래에서는 신규 HIV 감염 건수가 감소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난 지금 신규 감염 건수가 조금 늘었다고는 하지만 팬데믹 이전인 2019년도와 비교하면 신규 감염 추세가 덜하다는 생각이다.

HIV가 처음 발견된 시점은 1980년대 초반이다. 미국은 약제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1997년까지 약 20년을 약 없이 HIV, 에이즈와 싸워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약제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와 국내 감염인이 발생해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미국이나 유럽이 겪었던 HIV, 에이즈의 재앙을 상대적으로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이렇게 신규 감염 건수가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 것은 1990년대 말부터 여러 노력을 이어온 성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만은 신규 HIV 감염 발생률이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HIV 감염률이 높은 국가다. 매년 발생하는 환자 수도 우리나라보다 많았다. 이렇듯 HIV라는 질병의 규모가 컸음에도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해 성공적으로 억제가 된 상황이다. 특히 요즘에는 진단된 당일에라도 바로 약제를 처방하라는 ‘당일 치료(Same Day Treatment)’ 개념도 나왔다. 대만은 2015년 무렵부터 이러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고 성과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만의 뒤를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전망한다.

Q. HIV 치료법은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진료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어떤가?

김 교수- HIV 치료의 역사는 1997년부터 시작돼 25년 여가 지났다. HIV 치료는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Antiretroviral Therapy, ART) 또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HAART)가 이뤄진다. 또 두 세가지 항바이러스제를 복합해서 사용하는 ‘칵테일 요법’으로도 치료가 시행된다.

초기 ART는 상당히 강력한 약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현재까지 치료제도 지속 개발되고 있다. 처방을 해보면 말 그대로 ‘ART(예술)’라는 생각까지 든다. 과거에는 하루에도 한 줌의 약을 먹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질환이 진행돼 에이즈가 되면 죽고 사는 걱정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여러 성분이 한 알에 담긴 복합제(Single Table Regimen, STR)가 등장하면서 하루에 한 알만으로도 만성질환과 같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U=U 개념에 따라 HIV 감염인이 치료를 받을 경우 배우자나 파트너에게도 전파시키지 않는다는 예방 측면까지 있어 이점이 많다. 과거에 비하면 천지개벽할 수준의 발전이다.

Q.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좋은 치료제들이 개발되면서 치료의 핵심이 복약 순응도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김 교수- 대표적 만성질환인 고혈압이나 당뇨병, 간질환 등의 경우 치료가 점진적이다. 즉 치료를 안 하는 환자보다는 가끔씩 약을 놓치더라도 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예후가 좋고 약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복용하는 환자의 예후가 더 좋게 마련이다.

반면 HIV 치료는 사정이 다르다. 약을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선택지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HIV는 현재 치료제가 발전해 만성질환과 동일하게 평생 관리가 가능하지만 결국 바이러스 질환이다. 따라서 평생 규칙적으로 항바이러스 약제를 먹어서 바이러스를 억제해야만 한다. 내원하기 꺼려져 약제 처방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하루 한 알을 복용해야 하는데 반알로 쪼개서 먹는다거나 며칠을 걸러서 복용하는 등 복약 순응도가 떨어지면 약을 안 먹느니만 못하게 된다. 바이러스 치료에서 내성은 치료를 안 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했다가 안 했다가 불규칙할 때 생긴다.

따라서 HIV가 현재 극복이 잘 된 병이라고 하더라도 환자 개인의 복약 순응도가 떨어지면 치료를 안 하니만 못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정 진료와 감염인 자신의 마음가짐이 중요할 수 있다. 감염인들은 병원에 올 때 약만 처방받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검사를 받고 본인의 건강을 점검하기 위해 온다. HIV 감염인이 내원할 때 본인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오는 편이 도움이 된다.

Q. HIV 감염인들의 치료 예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요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나?

김 교수- 질환 자체가 주는 낙인 효과 때문에 내원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약을 하루에 수 알씩 복용해야 하다 보니 약을 먹기 힘들었던 점도 치료 예후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미국의 한 지역에서는 전화 진료를 시행했을 때 바이러스 억제 성공률이 더 높았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즉 특정한 상황에서는 환자가 보다 편리하게 처방받을 때 복약 순응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Q. 평생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점에서 감염인에 건강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런데 최근 감염인의 흡연율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김 교수- 국내 HIV 감염인 커뮤니티에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HIV 감염인의 흡연율이 41.7%로 나타났다. 전 국민 대상으로 한 흡연율 조사에서는 19.3%였던 것에 비하면 2배가 넘는 흡연율을 보이는 것이다.

HIV 감염인에게서 흡연율이 높은 이유는 우선 비교적 젊은 남성이 많고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 HIV 감염인 중 우울증을 동반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흡연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Q. 감염인이 흡연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김 교수- 모두가 알듯이 담배는 백해무익하다.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연구해 본 결과에 따르면 HIV 감염인은 평균 39세가 되면 동맥경화성 심혈관 질환이 시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HIV 감염인이 감염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혈관 질환이나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담배는 대표적으로 뇌혈관 질환, 심혈관 질환, 암 발생에 아주 중대한 위험 인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HIV 감염인의 경우 항바이러스 치료를 통해 면역 손상을 막고 면역 기능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감염되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는 암 발생 위험이 여전히 높은 편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일반 흡연 인구에 비해 HIV 감염 흡연 인구는 폐암 발병 위험이 14배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HIV 감염인이라면 암 예방에도 좀 더 엄격하게 관리가 필요하다. 가령 정기적인 내시경 검사 등 주기적인 암 검진도 필요하다.

림프종이나 자궁경부암 등 HIV 감염 관련 암은 상당 부분 HIV와 함께 극복이 됐지만 HIV 감염과 관련되지 않은 암도 많다. 이러한 비관련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비감염인과 마찬가지로 일반적 암 예방 원칙과 동일하게 관리해야 한다. 금연과 절주, 정기적인 암검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HIV 감염인도 일상 차원에서의 건강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됐다. 담배와 같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위험인자는 그나마 본인의 의지나 노력으로도 끊고 암을 예방할 수 있기에 금연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Q. HIV 감염인에서 금연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

김 교수- HIV 감염인의 흡연 문제를 이야기할 때 ‘묶음 치료’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싶다. 감염인 한 명을 치료한다고 할 때 감염내과 전문의 입장에서는 감염병만 치료하게 된다. 해당 환자가 흡연자라면 치료 예후와 여러 합병증 발생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호흡기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금연 치료와 관련된 유관 진료과와의 협진이 필요하다.

또 흡연이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라면 금연 치료 외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필요할 수 있다. 바이러스 치료로 체중이 정상화되고 금연까지 하게 돼 식욕이 늘어 체중이 더 늘게 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비만 치료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특정 질환으로 대표된다고 하더라도 치료가 단편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여러 차원에서 고려해 묶음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Q. 감염인에게 치료나 예방, 관리 등 전반적으로 조언할 부분이 있다면.

김 교수- 과거 치료법이 발전되지 못했을 때에는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 효과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이제는 치료제의 효과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오히려 장기적 안전성과 복용의 편리함 등이 중요한 치료 요소로 꼽히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병원에 내원해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받게 된다면 본인의 건강을 챙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제를 사전에 발견해 예방할 수도 있고 본인의 파트너가 안전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감염인들이 처음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할 무렵에 도시를 떠나 인적이 드문 시골이나 산으로 떠나겠다는 말들을 한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치료를 유지하면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열심히 돈 버시라고 말씀을 드린다. HIV는 감염됐더라도 이제 오래 사는 병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됐다.

    원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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