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한방으로 골절 치료… 하이드로젤, 미래 의료혁명 가져온다

하이드로젤은 액체에서 고체로 변할 수도 있고 고체에서 말랑말랑한 중간 상태로 형태변이가 가능한 기묘한 물질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간단한 주사 한 방 맞고 부러진 뼈가 치료되고, 먹어도 되는 마이크로 장치가 체내에 남아 건강을 체크하고, 뇌와 심장에 이식된 전자장치에 대해 신체가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친수성 고분자 합성물질인 하이드로젤(hydrogel)이 가져올 미래의 의료혁명이라고 건강의학 포털 ‘웹엠디(WebMD)가 2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의료과학자들은 인체의 복잡한 구조와 재질을 대체할 재질을 찾아왔다. 문제는 의수부터 심장박동기까지 대부분의 교체 및 교정 부품이 금속이나 플라스틱 같이 딱딱한 무기질 재료로 만들어지는 반면 생체 조직은 부드럽고 촉촉한 유기질이라는데 있다. 우리 몸은 이런 차이 때문에 이식된 모조품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1960년 소프트 콘택트렌즈 개발자가 처음 구상한 하이드로젤은 액체에서 고체로 변할 수도 있고 고체에서 말랑말랑한 중간 상태로 형태변이가 가능한 기묘한 물질이다. 이에 대한 논문은 1982년까지 모두 합쳐도 1000편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하이드로젤에 대한 연구가 집중되면서 2020년까지 관련 논문만 총 10만 편으로 늘어났다. 올해에만 380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화학자, 생물학자, 엔지니어가 서로 협력하고 의사까지 협력하기 시작하면서 하이드로젤 관련 연구가 폭증하면서 공상과학소설에서나 가능하던 일들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듀크대의 벤자민 와일리 교수(화학)가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이드로젤”이라면서 “우리 몸의 조직과 더 밀접하게 일치하는 새로운 하이드로젤을 개발하면 이전에는 치료할 수 없었던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로 된 그물망주머니

하이드로젤은 물로 된 그물망 주머니와 같다. 스탠퍼드대의 에릭 아펠 교수(재료공학)는 “긴 섬유를 모두 엮어 그물을 만든 축구 골망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이 그물망은 우리 몸의 3D 매트릭스가 세포와 조직을 둘러싸고 지지하며 구조를 부여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고분자 가닥을 반복적 패턴으로 꿰매고 물분자로 부풀려서 만든 것이다.

젤이라는 광범위한 범주에는 화학용매도 들어가지만 하이드로젤을 차별화하는 핵심 성분은 물이다. 물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이상적이다. 사람 뼈의 25%, 근육의 70%, 뇌의 85%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부터 세포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 다양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실험실에서 만든 하이드로젤은 골망에 걸린 축구공처럼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데 주로 체내의 수분의 역할을 모방하는 약물이나 세포이 그 대상이 된다. 하이드로젤은 또한 살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다. 따라서 임플란트에 사용하면 주변 조직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적다.

신경공학과 재료공학을 함께 연구하는 하버드대의 크르니스티나 트링기데스 연구원은 “푸딩 그릇에 금속 숟가락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그릇을 흔들면 숟가락이 제자리에 고정되지 않아 숟가락 주변이 허물어지듯이 환자가 숨을 쉬거나 움직일 때 뇌에 이식된 임플란트 주변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하지만 하이드로젤을 사용하면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하이드로젤은 무독성이기 때문에 면역 체계가 이물질로 공격할 가능성도 적다. 이 모든 것이 하이드로젤을 생명공학계의 새로운 총아로 만들었다.

◆스마트 약물과 소화 가능한 전자장치

그중 하나가 새로운 약물전달물질이다. 젤 형태로 약물 내용물을 보존하다가 주사바늘로 주입을 시작하면 액체로 변화해 체내에 쉽게 들어가지만 일단 들어가서는 다시 젤 형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관절염 치료제 휴미라나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 등 많은 첨단 약물이 알약에 넣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한 단백질을 빠르게 분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기술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를 연구 중인 아펠 교수는 “젤은 녹는 데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약물을 전달한다”면서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주사를 맞던 것을 4개월에 한 번으로 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서서히 녹는 형태의 하이드로젤은 백신의 지속 시간을 늘려 신체가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에 더 잘 저항하거나 종양을 파괴하는 치료법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표준 크기의 하이드로젤 알약을 복용하면 뱃속에서 복어처럼 부풀어 오르게 해 한 달 동안 약물을 천천히 방출하게 하는 다른 접근 방식을 연구 중이다. 환자가 탁구공 크기로 부푼 그 알약을 몸밖으로 배출하려면 소금 기반 용액을 마시기만 하면 된다.

MIT 연구진은《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린 논문에서 복어 알약에 초소형 카메라나 모니터를 장착하여 궤양이나 암과 같은 질환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연구진의 일원인 MIT의 자오 솬헤 교수(기계공학)는 “한 번 삼키면 위장에 머무르며 환자의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젤리 같은 스마트 알약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관절 구축 및 뼈 재성장

인간 연골은 약 90%가 물로 이뤄져 있지만 동전만한 면적에 자동차 한 대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과학자들은 1970년대부터 하이드로젤로 놀랍도록 강하고 유연한 조직인 인간 연골을 대체할 방법을 고민해 왔으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곧 바뀔 수 있다. 듀크대의 와일리 교수 연구진은 최근 실제 연골보다 훨씬 더 강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최초의 젤 기반 연골 대체물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하이드로젤을 티타늄 백킹에 부착하여 제자리에 고정시킴으로써 수술이 필요하기 훨씬 전에 치과에서 충치를 메우는 것처럼 손상된 연골을 복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최근 관련 업체와 계약을 맺은 와일리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엉덩이, 발목, 손가락, 발가락 등 모든 관절에 적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카리나 카네이로 교수(화학)와 크리스토퍼 맥컬록 교수(치과)는 회복할 수 없는 골절, 수술로 인한 구멍, 노령화로 인한 턱뼈 마모를 하이드로젤로 치료할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이들의 논문은 DNA로 만든 하이드로젤을 주입해 손상된 뼈의 결함을 메울 뿐 아니라 뼈가 재생되도록 유도하는 치료법을 소개했다.

수술로 인해 두개골에 구멍이 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 치료법이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뼈를 이식하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뒀다. 맥컬록 교수는 “DNA 하이드로젤 치료법은 아직 초기 단계라 실제 실현되는 데는 10년 이상 걸릴 수 있지만 언젠가는 수술 없이도 뼈를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 임플란트를 대신해 뇌파 해독까지 가능

하이드로젤의 최대 응용 분야는 아마도 인간과 기계의 상호 작용 영역일 것이다. 많은 기업이 신경 보철 또는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통해 언젠가 마비되어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노트북에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젤리 속의 숟가락’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최근 하버드대에서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트링기데스의 연구진은 말랑말랑한 뇌 조직에 잘 녹아들뿐만 아니라 전기 전달이 가능한 나노물질이 들어 있는 해조류 기반 하이드로젤을 개발했다. 그에 따르면 이 해조류 하이드로젤은 10년 안에 백금 디스크를 대신해 뇌의 전기활동을 기록해 발작이 시작되는 위치를 파악하거나 정밀한 뇌파검사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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