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눈물… “약값 때문에 집을 팔다니..”

[김용의 헬스앤]

비싼 항암제 약값을 대느라 이제 하나 남은 재산인 집까지 처분할 정도가 되면 환자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암 환자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이 힘들다. 암 진단 직후 “내가 왜…”라며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리다 시간이 지나면 투병 의지를 갖게 된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커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 ‘기적의 항암제’는 이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 암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말에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만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암 병동에선 가끔 환자와 가족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나이 든 환자는 “절대 안 된다. 네 엄마가 살고 있는 집을 팔 순 없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가족들은 “우선 살고 봐야죠, 약이 있으면 써야죠”라며 속상해 한다. 비싼 항암제 사용을 놓고 벌어지는 일이다.

‘비싼 정도’가 아니다. 일년치 약값이 1억 원을 훌쩍 넘어 수억 원에 육박하는 항암제도 있다. 말로만 들었던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를 경험하면 환자도, 가족도 잠을 못 이룬다. 약값을 대느라 하나 남은 재산인 집까지 처분할 정도가 되면 환자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

암은 흡연, 음식, 운동 부족 등 여러 위험요인에 의해 생기지만 원인도 모른 채 환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매년 1만 명에 육박하는 여성 신규 환자가 나오는 폐암을 보자. 여성 환자 중 흡연자는 10% 정도다. 나머지 90%는 원인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요리연기, 간접흡연, 대기오염, 유전 등이 거론되지만 정확한 데이터는 아직 없다.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은 중년-노년 여성이 폐암에 걸리면 충격이 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견이 늦는 경우가 적지 않다. 30년간 하루 1갑 이상 담배를 피운 흡연자는 국가 폐암 검진으로 2년마다 저선량 폐 CT 검사를 할 수 있지만 비흡연자는 자격이 안 된다.

지난해 12월 발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앓은 암은 사실상 폐암(11.7%)이다. 이는 갑상선암(11.8%)을 제외한 것이다. 이어 대장암(11.2%), 위암(10.8%), 유방암(10.1%), 전립선암(6.8%), 간암(6.1%) 순이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은 폐암이 1위, 여성은 유방암·갑상선암·대장암에 이어 폐암이 4위였다. 폐암은 암 사망률에서도 1위다. 증상이 쉽게 나타나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폐암 환자가 국회 청원 홈페이지에 “1년 약값으로 7000만 원을 넘게 썼다”며 ‘타그리소’ 치료제를 건강보험(급여화)으로 해달라며 청원 글을 올렸다. 이 글은 5만 명의 동의를 금세 얻을 만큼 울림이 컸다. 청원인은 “처음 폐암 2기 진단 후 수술경과는 좋았지만 4년 6개월 후인 2021년 10월 재발했다. 뇌까지 암이 전이돼 타그리소를 처방받았다. 복용 3개월 뒤 검사에서 종양이 없어졌다는 기적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3개월마다 검사를 받고 타그리소를 복용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암 덩어리는 사라졌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타그리소를 폐암 1차 치료에 사용할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모든 약값을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1년 넘게 타그리소 약값으로만 7000만 원을 넘게 썼다. 이젠 약값과의 사투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는 “돈이 없어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타그리소가 1차 치료 급여에서 밀려나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했을지 알 수 없다.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타그리소 1차 급여 승인을 바란다”고 호소했다.

비소세포폐암 표적 항암제인 타그리소는 1차 치료 뒤 효과가 없을 때 쓰는 2차 치료제로만 건보가 적용되어 본인부담금이 5%에 불과하다. 1차 치료제로 쓰면 월 6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오롯이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등 세계 60여 개 국가는 1차 치료제에도 보험을 적용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심사 중’이다.

지난 23일 타그리소가 1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전문가들이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변이로 인한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건보 적용까지 심평원의 경제성평가소위원회,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약가 협상,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사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제약사가 약값을 낮추면 건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 1차 치료 급여 적용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

타그리소만 급여화가 이뤄진다면 다른 고가 항암제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유방암, 대장암 치료제도 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비싼 항암제의 보험 적용은 풀기 어려운 매듭이나 다름없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살펴야 한다. 다른 곳에서 줄줄 새는 건강보험 재정을 아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독자의 의견도 참고해야 한다. “저는 건보료를 많이 내는 편이지만, 일 년에 병원 몇 번 안 갑니다.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분들이 혜택을 받으면 제가 내는 건보료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건보료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는 것입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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