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유전자 변형시켜 대대로 영향 미친다고?

[Dr 곽경훈의 세상보기]응급실 ‘뇌피셜’과 백신 불신

“저녁에 밀가루 음식을 먹었더니 속이 불편해서 왔다. 약국에서 소화제를 구입해서 복용해도 증상이 호전하자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오죽하면 이른 새벽에 응급실을 찾았겠느냐. 비싸고 복잡한 검사는 원하지 않으니 제산제와 진경제만 투여해 달라.”

환자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응급실 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기침, 가래, 인후통 같은 증상의 여부를 묻는 동안, 사내는 스스로 진단했을 뿐만 아니라 처방까지 완료했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몇 차례 응급실을 찾았을 것이며 그런 경험에 바탕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겨울로 향하는 시기라 꽤 쌀쌀한 밤공기에도 사내는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호흡도 지나치게 얕고 빨랐다. 따라서 그의 질환은 단순한 위장장애가 아니라 심혈관질환, 특히 급성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부터 사내와 의료진의 공방이 벌어진다. 자신의 몇몇 경험에 비춰 상황을 판단한 남성은 검사를 거부하고 어서 빨리 제산제와 진경제를 투여하라고 소리친다. 반면에 재앙을 감지한 의료진은 어떡하든 검사를 진행하려고 사내를 달래기도 하고 급기야 ‘사망가능성’을 운운하며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비싸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은 심전도만이라도 시행하자’는 선에서 타협한다. 예상대로 심전도에선 ST분절상승(급성 심근경색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심전도 변화)이 나타난다.

그러면 다시 환자와 의료진의 설전이 벌어진다. “심근경색은 무슨 심근경색, 병원이 돈을 벌려고 거짓말까지 하는군. 어서 제산제와 진경제나 투여하라”고 주장하는 환자와 “단순히 저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심전도라는 객관적인 검사에서 확실한 이상이 있습니다”고 반박하는 의료진이 팽팽히 맞선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의료진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급성 심근경색은 언제든 심실세동을 거쳐 심정지로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의료진은 환자 혹은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다. 다만 그런 사례는 급성 심근경색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를 부딪친 환자의 귀에서 출혈이 발생하면 ‘두개골 골절’과 ‘외상성 뇌출혈’의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신속하게 컴퓨터단층촬영(CT)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밖으로 피가 나왔으니 내부에는 피가 고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CT를 거부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마주할 때도 있다. 물론 이런 때에도 어떡하든 보호자를 설득하여 CT를 시행하지만 ‘전문가의 객관적인 판단’을 믿지 않고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 이른바 ‘뇌피셜’에 의존하는 사례는 응급실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백신 때문에 벌써 1000명이 죽었어. 인과관계가 확인된 사례는 수십 명이라는 것은 정부의 거짓말이야. 나도 백신 맞고 거의 죽다가 살았는데 병원에 가니 의사란 녀석은 경미한 부작용이라 하더라고. 하여튼 의사란 놈들은 재수 없어.”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 mRNA는 인체의 유전자에 영구적인 변형을 남겨. 방사능이 왜 위험한지 알아? 방사능은 인간의 유전자를 손상시켜서 위험한 거야. 방사능에 피폭한 사람이 요행히 변을 면해도 그 자녀, 심지어 손주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그러니 얼마나 위험해? 물론 과학자니, 의사니, 하는 놈들은 괜찮다고 하지. 그런데 이거 1년 전에 만든 백신이잖아. 접종하고 10년, 20년 후는 아직 아무도 몰라. 자녀와 손주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르지.”

“이게 다 정부가 국민을 개돼지로 알아서 이러는 거야. 정부가 다국적 기업에게 돈을 받아먹고 이러는 거지. 사실 코로나19는 독감 같은 정도야. 늙고 병든 사람이야 원래 폐렴으로 잘 죽는다고. 손홍민이 뉴캐슬 전에서 골 넣을 때, 봤어? 거기는 하루에 수만 명씩 환자가 나와도 다들 노마스크잖아. 우리나라만 흑사병처럼 이러고 있다니까. 흑사병 때는 유럽인구의 1/3이 죽었는데 코로나19로는 우리나라 인구의 1/100도 죽지 않았잖아. 이게 모두 정치방역이야.”

식당과 카페에서 위와 같은 내용으로 대화하는 사람을 종종 마주한다. 인터넷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위와 유사한 괴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심근경색에 해당한다는 의료진의 설명에도 제산제와 진경제를 요구하는 환자, 머리에 외상을 입고 귀에서 출혈이 확인돼 두개골 골절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밖으로 피가 나왔으니 내부에 피가 고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CT를 거부하는 보호자처럼 이들은 완전하지 않고 매우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다. 물론, 정부가 국민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부작용 사망자의 유족에게 보다 더 충분한 설명과 철저한 보상을 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괴담에 휩쓸려 백신을 맞지 않으면 결국 자신과 가족이 피해를 입을 확률을 크게 높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특정한 한쪽 정보만 쉽게 믿는다는 것이다. 참고로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 경기장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입장하려면 반드시 국민보건서비스(NHS)가 발행하는 ‘백신 패스’나 코로나19 검사 음성 결과지를 지참해야 한다. 경기장 내 각종 결제는 카드로만 가능하다. 그러고도 영국 정부는 환자가 다시 급증하자 백신 패스에 부스터 샷 기록을 추가하려고 하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접종 완료율이 80%에 육박하고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의 종식까지는 여전히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아있다. 이제 우리 모두 불완전한 근거에 비춰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휩쓸리는 대신, 안정적인 근거에 바탕 한 대다수 전문가의 객관적인 견해에 차분하게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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