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는 건보료 잘 쓰이나?… 의사도 불만 vs 퇴직자는 더 불만

[김용의 헬스앤]

위급한 환자를 살리는 필수의료 분야에만 건강보험 재정 외에 국가의 별도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때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퇴직자는 건보료(건강보험료) 내기가 참 힘들다. 직장에 있을 때는 회사에서 절반을 부담했지만 퇴직하면 100% 혼자서 내야 한다. 지역 가입자는 직장인과 달리 재산에도 건보료를 부과한다. 수십 년 간 허리띠를 졸라 매서 겨우 장만한 아파트 한 채라도 있으면 한 달에 30만 원을 넘게 내는 경우도 있다. 재취업에 실패해 퇴직금-예금을 야금야금 까먹는 사람에게 매월 30만 원은 큰 돈이다. 특히 건강 관리를 잘 해서 일 년에 병원 한 번 안 가는 퇴직자는 건보료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물가가 치솟아 건보료의 비중이 더 커 보인다.

내가 힘들게 낸 건보료 어디에 쓰이나?

퇴직자의 한숨이 서린 건보료는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먼저 병원 진료비의 대부분이 수많은 사람들이 낸 건보료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의사들 수입의 상당액이 건보료에서 나온다. 내가 낸 건보료도 의사의 연봉에 일조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돈(의료수가)에 불만이 많은 편이다. 의료수가는 환자가 의료기관에 내는 본인 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급여의 합계로 구성된다. 치료에 들어간 원가와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의 인건비-전기료 등 병의원 운영 비용을 합친 금액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의료수가 결정과 인상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정도 등 여러 지표를 토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진행한다. 의료수가가 오르면 결국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연결되고,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각 단체 간 치열한 협상이 진행된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이제 초등학생들도 알게 된 필수의료 의사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나라는 심장 수술, 뇌혈관 수술 담당 의사가 미국처럼 연봉 1위에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 새벽에도 불시에 오는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개인 생활도 거의 포기한 의사들은 그만큼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들도 ‘피 튀기는’ 심뇌혈관 수술을 포기하고 개원해서 미용시술로 쉽게 돈을 벌어야 할까?

의료수가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결정되고 있는 것일까?

건강보험 수가는 의료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 및 장비, 수술 난이도 등 상대가치 점수에 물가 등을 반영한 환산지수, 병원 규모 등을 감안한 가산율을 곱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이미 ‘정해진 파이’에서 각 분야 별, 의사단체 별로 자신의 몫을 더 가져가기 위해 치열한 내부경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큰 틀에서 합의했던 수술 난도, 환자의 중증도 등은 고려 대상에서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전문 병원은 뇌혈관 수술 등 난이도가 높은 수술을 하지만 수가는 낮은 편이다. 병원이 클수록 더 많이 받는 규모별 가산 수가에서 상급 종합병원보다 낮은 데다, 환산율 역시 의원에 비해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대형 종합병원과 동네의원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간지대인 전문병원들이 경영난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환자들이 동네의원에서 곧바로 대형 대학병원으로 몰리다 보니 2차 의료기관은 더욱 설 자리가 없다. 그나마 이번 의대 증원 정국에서 존재감이 드러났을 뿐이다.

강아지 분만 비용보다 낮다는 얘기 믿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산부인과 전문 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받는 분만 수가가 너무 낮아 간호사 등 의료진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 됐다. 심심찮게 나도는 강아지 분만 비용보다 낮다는 얘기는 믿고 싶지 않지만, 그만큼 상황이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의료분쟁까지 터지면 작은 산부인과 병원은 파산하기 십상이다. 정신적 압박감과 위험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대우는 시원찮으니 의대 졸업생들이 너도나도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장황한 저출산 대책을 늘어놓으면서 알맹이 없는 산부인과 지원을 얘기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정권과 상관없이 정부는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문제를 사실상 장기간 방치해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찔끔 인상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도 안 된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의대 증원 문제도 필수의료-지역의료 지원이 첫 번째인데 “실제로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남아 있다. 이참에 관행적으로 이어온 의료수가 정책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급할 때 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식의 정책으로는 의료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필수의료 살리기 늦출 수 없다건보 재정 외에 국가의 별도 예산으로 지원해야

위급한 환자를 살리는 필수의료만 건강보험 재정 외에 국가의 별도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때다. 필수의료 지원을 위해 건보료를 마냥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다.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의 재산에도 건보료를 매기는 것은 결국 건보 재정 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이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높이면서 정작 써야 할 국민세금은 선심성 예산으로 흘려 보내고 있다.

의료는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부담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특히 심장 수술, 뇌혈관 수술, 산부인과 분만 등은 국민들의 생명,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분야다. 식습관 등의 변화로 심뇌혈관 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 수술 의사는 매년 사라지고 있다. 50~60대 의사가 은퇴하면 내 가족을 수술할 의사가 없을지도 모른다.

집 한 채만 있고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지역 가입자에겐 매월 돌아오는 건보료 납부일은 엄청난 부담이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건보료를 내는 데도 의사도 불만(의료수가), 퇴직자는 더 불만이다. 매월 건보료를 내는 시민의 입장에서 의료수가 등 건보료가 쓰이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시민참여 숙의제 등이 확대된다면 의료수가 등이 투명하게 결정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힘 없는 퇴직자들만 쥐어 짜는 건보료 정책도 수명을 다하는 느낌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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