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헬스앤] 냉정한 의사 vs 환자요구 잘 들어주는 의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은 어느 분야나 소통이 중요한 시대다. 공무원, 기업인, 의사, 변호사 등 거의 모든 직종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과거에는 일 잘하고 성과만 좋으면 승진을 거듭했지만, 이제는 주변과의 소통 능력도 평가하는 직장이 많다. 예전에는 아랫사람을 쥐어짜면서 실적만 올리면 그만이었지만, 요즘엔 그런 리더십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SNS, 직장인 익명 사이트 등의 확산으로 특정인의 나쁜 평판이 사내 뿐 아니라 외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의료계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몰아치고 있다. 의료계는 과거 도제식 교육 형태가 남아 있어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진료 형태는 많이 바뀐 게 사실이다. 병원마다 ‘환자 중심’ ‘친절도-만족도 1위’를 표방하며 소통과 친절을 인사고과의 주요 항목으로 삼는 곳이 많다. 명의의 조건에 소통과 친절이 꼭 들어가는 시대다.

그렇다면 환자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의사는 ‘좋은 의사’일까? 중요한 순간에 냉정한 판단을 하는 의사는 불친절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의료진이 환자 요구를 잘 받아줄수록 환자의 만족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말기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는 질병 자체 뿐 아니라 심리적인 불안감이 위험요인인 경우가 있다. 우울증까지 겹치면 식사를 잘 못해 영양부족에 시달려 위험한 근감소증도 생길 수 있다.

최근 유력 학술지인 미국내과학회지(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흥미로운 연구결과 실렸다. 병원 방문 환자 5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로 4년간의 추적 관찰을 거쳤다. 환자의 만족도를 알아보기 위해 ‘의사가 환자 말을 잘 들어주는가?’ ‘쉽게 설명하는가?’ ‘환자 말을 존중해 주는가?’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는가?’ 등에 대한 조사와 함께 입원 다음 해 응급실 방문과 재입원 횟수, 의료 총비용을 비교했다.

연구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만족도가 가장 높은 환자는 낮은 환자에 비해 최종 사망률이 26%나 높았다. 재입원율은 12%, 의료 총비용은 8.8% 높았다. 다만 응급실 방문 횟수는 8% 낮았다. 환자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올라가는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의료 총비용 증가를 볼 때 환자가 요구하는 각종 검사나 치료를 의료진이 쉽게 받아들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검사와 새로운 치료 방식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 논문은 ‘좋은 의사’는 환자가 요구하면 무조건 다 들어주는 의사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망률 등 진료 성적이 실증한 셈이다. 의사는 친절함을 유지하더라도 중요한 순간에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환자의 상태를 잘 살펴 진단 및 치료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환자의 무리한 요구는 거절하는 냉철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의료진이 이중고를 겪는 것은 변화하는 진료 환경이나 커뮤니케이션 기법과도 결부되어 있다. 환자를 위해 특정 진료나 검사를 거절하면 오히려 ‘냉정하다’고 섭섭해 하는 경우가 있다. 말기 암 환자나 중증 환자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할 수 있다. 많은 환자가 대기하는 ‘3분 진료’ 여건 때문에 충분하고 친절한 설명을 못할 수도 있다. 짧은 대화를 하다 보니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최근 의료계도 소통 능력을 중시해 의과대학 교과목이나 의사고시에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포함시켰다. 학술대회 때마다 ‘나쁜 소식 전하는 방법’ 등 환자와의 소통에 관련된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 동네 병원 뿐 아니라 대학병원도 불친절하다고 소문이 나면 환자수가 줄어드는 시대다.

일부 의사들은 친절까지 문제 삼으면 “왜 의사들만 못살게 구느냐”고 항변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에 수많은 환자를 보는데, 어떻게 매번 ‘친절한 설명’을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대가 변했다. 재판할 때 판사의 말투가 도마 위에 자주 오르내리고, 실적 좋았던 기업 CEO는 거친 언사로 인해 밀려나는 게 다반사다. 엄정한 군기가 생명인 군대에서도 상관이 함부로 말을 뱉었다가 SNS에서 거론되는 시대다.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일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사실 ‘친절’과 ‘불친절’의 차이는 종이 한 장보다 얇다고 할 수 있다. 검사나 치료법을 권할 때도 부작용 등을 차례로 언급하고 의사의 최종 판단을 제시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수술법을 선택할 때 설명을 통해 환자나 가족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이제는 환자의 심리적 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다. 암 등으로 인해 극도로 불안한 환자를 상대할 때는 ‘친절하면서 냉철함’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좋은 의사’의 길을 가는 것이 갈수록 고단해지고 있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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