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다르면, 같은 색깔도 다르게 본다 (연구)

[사진=Rostislav_Sedlacek/shutterstock]
모국어가 다른 두 사람의 생각지 못한 차이점이 있다. 바로 색깔을 식별하는 능력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 같은 차이 때문에 사물을 감지하는 능력에도 차이가 생긴다.

우리가 유창하게 사용하는 언어인 모국어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색깔은 사실상 뚜렷한 경계선이 없는 빛 파장의 매끄러운 연속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편의상 언어를 이용해 색깔을 구분하고 있다.

그 구분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스와 러시아에서는 ‘파란색’을 칭하는 단어는 없지만, ‘밝은 파란색’과 ‘짙은 파란색’을 칭하는 단어는 있다.

반면 미국과 독일은 ‘파란색’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는 ‘블루(blue)’, 독일어로는 ‘블라우(blau)’다. 푸른색 계열의 또 다른 색들은 수식어를 이용해 영어의 경우 ‘밝은 파란색(light blue)’, ‘짙은 파란색(deep blue)’, ‘네이비 파란색(navy blue)’, ‘스카이 파란색(sky blue)’처럼 구분한다.

‘초록색(green)’을 의미하는 단어는 미국, 독일, 그리스, 러시아에 모두 존재한다.

선행 연구에 의하면 색깔을 지칭하는 단어의 차이는 색을 구별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밝은 파란색과 짙은 파란색을 의미하는 단어를 가진 러시아인은 이런 단어가 없는 미국인보다 두 색을 식별해내는 속도가 빠르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연구 범위를 확장해, 이 같은 색깔 식별 능력이 사물을 인식하는데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정하에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그리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13개의 서로 다른 배경색에 등장하는 삼각형을 찾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짙은 파란색 배경에 놓인 밝은 파란색 삼각형, 밝은 파란색 배경에 짙은 파란색 삼각형, 밝은 혹은 짙은 녹색 배경에 밝은 혹은 짙은 녹색 삼각형 등이 등장했다.

실험 결과, 그리스인들은 짙은 녹색 배경의 밝은 녹색 혹은 밝은 녹색 배경의 짙은 녹색 삼각형보다 밝은 파란색 배경의 짙은 파란색 혹은 짙은 파란색 배경의 밝은 파란색을 잘 분별해내는 경향을 보였다. 러시아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밝은 파란색과 짙은 파란색을 칭하는 용어가 있는 그리스어와 러시아어의 특징 때문에, 이 같은 색깔을 가진 도형을 빨리 식별해내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밝은 파란색과 짙은 파란색을 칭하는 단어가 없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실험참가자들은 녹색과 파란색 삼각형을 찾아내는데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모국어는 색깔을 인식하는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색을 가진 사물을 분별하는데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을 따른다. 이 가설은 언어가 의사소통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즉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만으로 사고방식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Native Language Promotes Access to Visual Consciousness)는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저널에 9월 24일 게재됐다.

문세영 기자 pomy80@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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