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만 암 생존자, 암보다 무서운 ‘낙인’

[사진=lzf/shutterstock]

“그래요, 나 암 환자예요.”

지난 2016년 10월, 황배우(가명)는 만 33세의 나이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주3회 꾸준한 운동으로 누구보다 체력에 자신이 있던 황배우는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실직자가 됐다.

황배우가 암에 걸렸다는 소문은 빛보다 빨리 퍼졌다. 잘 알지도 못 하는 주위 사람들이 황배우의 발병 소식을 가십처럼 소비했다. 황배우는 ‘페이스북’ 개인 담벼락에 암에 걸린 사실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나 암 환자다.”

황배우는 1일 서울혁신센터에서 열린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서울, 암경험자가 살기 좋은 지역 사회 이야기’ 세션에서 암 생존자의 고민과 포부를 전했다.

황배우는 “주변에 흔치 않은 젊은 암 환자다보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특히 더 많다”고 토로했다. 전직 뮤지컬 배우로 연기 학원에서 입시 지도를 하던 황배우는 수술을 위해 부득이하게 일을 그만둬야 했다. 꾸준히 모아온 목돈은 수술과 치료비로 고스란히 쓰였다.

161만 암 생존자, 여전한 ‘사회적 약자’?

암 생존자는 원래 암이 완치됐거나 오랜 기간 암이 재발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했으나, 최근에는 암 수술 후 재발, 전이를 막기 위해 보조 치료를 받는 환자까지 폭넓게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2016년 현재 국립암센터에 등록된 암 생존자는 161만 명이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2011~2015년 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률은 70.7%까지 올라갔다. 암 환자의 3명 중 2명이 생존해 암과 살아가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암 생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립암센터가 지난 2017년 5월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2%는 “암 생존자들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약자다”, 63.2%는 “가족 중 암 생존자가 있는 사람과 결혼을 피하고 싶다”, 57.3%는 “암 생존자는 일반인보다 직업 능력이 낮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암 환자는 일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황배우는 암 환자의 업무 능력을 낮춰 보고 함께 일하기를 꺼리는 사회적 편견이 암 생존자의 재취업을 막고 경력 단절 시점을 앞당긴다고 했다.

생업뿐만 아니라 결혼, 출산 등 미래의 사회적 연결망을 구축하는 일도 쉽지 않다. 황배우는 “암 생존자가 있는 집안과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많은데, 심지어 나는 당사자”라며 “결혼 상대에게 나는 흠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 위축도 됐다”고 털어놨다. 황배우는 “매번 혼자 병원을 오다보니 배우자의 손을 잡고 병원을 방문한 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암 환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주위 사람들의 가십에 휘말리기 싫어 암에 걸린 사실을 ‘커밍아웃’한 황배우는 SNS 글을 통해 뜻밖의 동지를 만난다. 10년 전 PD와 배우 사이로 만난 박PD(가명)가 황배우의 공개 글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며 메시지를 남긴 것.

박PD는 황배우와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암 생존자였다. 박PD는 발병 이후 모은 의학 정보, 다큐멘터리 등 암 관련 자료를 황배우에게 전부 보냈다. 황배우와 박PD는 암 생존자라는 공감대 아래 재회해 유방암 동지를 넘어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황배우는 “암에 걸린 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바로 일상 복귀”라고 했다. 예전처럼 일을 하고, 여행도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황배우는 박PD와 함께 ‘암 생존자의 성공적인 일상 복귀를 돕자’는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우고 암 전문가로서의 활동에 나섰다.

황배우와 박PD는 지난 5월부터 암 생존자, 보호자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팟캐스트 방송 ‘내가 암이라니’를 시작했다. ‘암을 경험해 본 사람이 진짜 암 전문가’라는 생각으로 서대문구 보건소, 세브란스병원 등에 암 환자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황배우는 “암 환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암 환자는 하루를 살아도 사회로부터 분리돼선 안 되는 여러분의 가족, 친구, 동료”라고 강조했다. 황배우는 “정부, 기업, 의료진, 민간 단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협력해야 암 환자가 살기 좋은 사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맹미선 기자 twilight@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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