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폼 나니까, 스탠딩 포지션

그 날 밤도 그의 무게에 눌려 기쁘게 허덕이고 있었다. 헉헉대다 문득 눈을 들었는데, 그의 어깨 너머 벽면이 갑자기 줌 인 하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최근 어웨이 무대라고 해봐야 기껏 거실의 소파 정도. 그래, 오늘은 벽이다. 내 남자의 허리보호(사실 내 허리가 더 걱정이었지만)를 위해 침대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벽면을 선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윽, 차가워! 페인트만 칠한 벽이란 걸 깜박했다. 게다가 오랜만에 둘 다 서서 하느라 밸런스를 잡기 까지 계속 삐걱삐걱. 결국 3분을 못 채우고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해. 그 다음날부터 우리 커플이 비벼댔던 그 벽이 자꾸 내 눈을 잡아끌었다. 횟수로 경쟁하나 익숙함으로 보나 그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뒹군 침실 매트리스를 보고 발정하는 게 정상인데, 그림 하나 안 붙은 희멀건한 그 벽을 보고 클리토리스가 움찔했다. 허벅지를 주리 틀 듯 꼬지도, 손가락으로 거기를 마하의 속도로 비빈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벽면을 무형의 재료로도 긴장감 있게 꾸미는 공간 인테리어 비법이라고 소개해도 괜찮을 정도의 쾌감이다. 게다가 안전한 개인공간이 아닌 공공장소라면 쾌감이 더 급상승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언젠가 학교 선배 한 분이 자신의 최고의 섹스는 병원 화장실에서 서서 나눈 퀵 섹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간단한 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있을 때 병문안을 온 당시 여자친구였던 부인과 개인병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링겔까지 꽂은 상태로 문가에 기대 나눈 섹스가 너무 좋았다고 그는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덧붙였다. 사실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스탠딩 포지션 자체가 영화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원초적 본능] 흥흥. 그리고 벽과 남자든 남자와 남자 사이든 끼여 있는 여자의 그림은 항상 옳다. 그 선배도 화장실 문을 잠그고 변기에 앉아 섹스를 했다면 굳이 자랑하듯 이야기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핵심은, ‘서서’ 해서 폼이 났다는 거니까.

모든 폼 나는 것들이 그렇듯 서서 섹스하기 역시 불편하다. 만약 이 자세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 가지 경우다. 풍부한 연습량으로 침대 위 못지않게 각도 조절을 잘하거나 아니면 느긋하게 전희, 후희 따져가며 섹스하는 걸 어지간히 귀찮아하는 사람이거나.

스탠딩 포지션은 비키니 입기와 비슷하다. 안락함을 떨쳐 내지 않으면 시작조차 못 한다. 20대 초반,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몸매를 뽐내던 시절, 친구들과 호숫가로 수영하러 간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때 멍청하게도 블랙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단지 거웃을 비키니 하의에 맞게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비키니를 예쁘게 입으려면 거웃을 다듬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스탠딩 포지션도 안락한 침대에 붙은 궁둥이를 떼어내는 게 우선이다. 그러고 보니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해야 태가 사는 점도 둘이 닮았다.

또, 남자의 주니어가 무시무시한 굵기와 테크닉을 겸비하지 않는 이상 후배위처럼 깊은 삽입감을 주지 못 하는 것도 스탠딩 포지션의 약점이다. 벽에다 여자를 종잇장처럼 누른다고 질 안의 압력 역시 무한대로 오른다고 착각하는 남성들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약점이란 건 커버하기 나름이다.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삽입이 어려우면 쿠션이나 앉은뱅이 의자 등을 이용해 높이를 맞추면 된다. 여성을 들어 올린 상태에서 격렬하게 스탠딩 포지션을 수행하고 싶다면 남성보다 여성이 벽에 붙는 게 좋다. 상체 힘이 남다른 남성이라면 이 때 여유 있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애무할 것. 커플 관계를 순식간에 쫄깃하게 하는 팁이다.

물론 스탠딩 포지션의 타고난 간지에 대해 구구절절 동감한다 하더라도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야설에 단골로 출연하는 구절이죠?)’ 얌전히 누워만 있는 편안함을 내치기란 쉽지 않다. 섹스에 탐욕스런 나란 인간도 가끔은 남자가 나를 그의 페니스 위로 올려 허리운동을 시키는 게 귀찮은 나머지 얌전히 남자의 가슴 아래 뭉그적대는 게으른 섹스를 일부러 유도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귀차니즘을 뿌리치고 우리 뇌와 은밀한 ‘그 곳’에 폼 나는 추억을 안겨줄 준비가 되었다면, 일어서라. 오늘 밤 당장.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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