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성악가는 거리의 가수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토요일은 좀 쌀쌀했는데 일요일은 푹했죠? 이번 주도 대체로 포근하다고 합니다. 저는 어젯밤 오늘자 건강편지를 쓰기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위키피디아 한글판에서 “1873년 오늘 이탈리아의 엔리코 카루소가 태어났다”는 걸 찾았습니다. 그에 대해 추가 자료를 모으다가, 헉! 그 사전이 틀린 걸 알았습니다. 카루소의 탄생일은 2월 25일이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쓰려다가, 날짜와 관계없이 카루소 얘기를 하렵니다. 너무나 멋진 사람이기에.

    
카루소는 20세기 최고의 성악가로 알려져 있지요. 축음기가 보급될 때 처음으로 오페라를 음반에 담아 귀족의 호사취미였던 오페라를 대중에게 선물한 주역입니다. 무려 260개의 음반을 냈다고 하네요. 그의 이름을 딴 칵테일도 있는데, 드셔 보셨나요?
    
카루소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21남매 중 18번째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부모의 번식력이 아무리 좋아도 좀 심했죠? 최근 음악사학자들은 7남매 중 셋째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리합니다. 자식 많은 흥부 집안이 그랬듯, 카루소의 집안도 가난했습니다. 카루소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래를 너무나 좋아해서 다른 일을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지요. 길거리에서 식당으로 진출했고, 18세 때 휴양지 레스토랑에서 노래해 받은 돈으로 첫 구두를 샀다고 합니다.
    
이 위대한 성악가는 스물두 살에 단역으로 데뷔하지만, 지휘자 앞에서 너무 긴장해서 시작하는 박자를 놓치고 노래를 엉망진창으로 불러 쫓겨납니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습니다. 하지만 가난을 떨치지는 못해서 단벌옷을 세탁할 때에는 침대보를 마치 토가처럼 입고 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25세 때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스타로 떠오릅니다.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페도라’에 출연키로 예정된 테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대타로 나와  ‘Amor ti vieta’(참을 수 없는 사랑) 등의 아리아를 불러 청중의 넋을 빼놓습니다.
    
카루소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오페라극장,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등에서 청중들을 감동시킵니다. 하지만 고향 나폴리에서는 공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공연에서는 흥행 성공을 위해 박수부대를 공연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20대 초반 공연 때 돈을 못줘서 야유를 받은 아픈 상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루소의 창법은 소박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노래하지 않고 악보에 충실합니다. 지휘자가 허락할 때까지 박자를 100%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도 유명하지요. 지금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밋밋하다고 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단순함은 궁극의 세련미(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라는 명언이 떠오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19세기 말에 나폴리의 거리에서 카루소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은 자신의 행운을 알았을까? 그가 한 세기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성악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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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음악

카루소의 목소리로 나폴리 민요 ‘O Sole Mio(오 나의 태양)’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준비했습니다. 카루소를 노래한 노래도 있지요. 이탈리아의 루치오 달라의 노래인데,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부릅니다.

♫ 오 솔레 미오 [카루소] [듣기]
♫ 별은 빛나건만 [카루소] [듣기]
♫ 카루소 [달라 & 파바로티]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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