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투여 않아 뇌에 병 생겼다면?

베르니케 뇌병변

비타민이 부족해서 뇌에 손상이 생긴다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학창 시설 생물 시간에 비타민이 부족하면 야맹증(비타민 A 부족), 각기병(비타민 B1, 티아민), 괴혈병(비타민 C), 구루병(비타민 D) 등이 생긴다고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비타민 B1이 부족하면 ‘광우병’과 닮은 베르니케 뇌병변이 발생한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베르니케 뇌병변은 2010년 문화방송(MBC) ‘PD수첩’이 ‘인간 광우병’으로 보도했던 미국 여성 아레사 빈슨의 실제 병이다.

국내에선 위 절제 수술을 받고 나서 영양 부족 상태에서 비타민이 공급되지 않아 베르니케 뇌병변이 발생한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사례가 있다.

환자(65)는 몇 년 전 부산의 한 병원 정형외과에서 요추 4-5번 척추관 협착증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배가 팽팽하게 차오른다고 호소하자, 의료진은 복부 컴퓨터단층(CT) 검사를 시행하고, 환자를 인근 지역의 대학 병원으로 옮겼다.

대학 병원 의료진은 복부 CT 영상을 검토해서 환자를 급성 복막염(acute panperitonitis)으로 진단하고 응급으로 개복술을 시행했다. 창자에 구멍이 났고 소장이 막힐 정도의 고름이 나 있었으며 일부 조직은 썩어 있었다. 의료진은 고름을 제거한 다음 창자와 소장이 엉켜있는 것을 떼어내고 배설물을 밖으로 빼내는 수술을 했다.

의료진은 수술 직후부터 환자에게 금식 조치를 했고, 한 달 동안 환자의 오른쪽 팔에 ‘말초 삽입형 중심 정맥관(PICC, peripherally inserted central catheter)’을 삽입해서 영양을 공급했다. 환자는 미음과 죽을 섭취하였다. 의료진은 수술 부위를 꿰매기 위해서 금식 조치를 했다가 봉합 수술 이후 다시 죽을 먹도록 했다.

그러나 환자가 어지러움, 구역질, 구토 증상을 보이자 다시 금식 조치를 했다. 환자는 걷기조차 힘들어했다. 의료진은 다시 금식을 지시하였고, 환자는 금식하자 구역질과 구토 증상은 없었지만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환자는 멍한 표정을 보이다가 가족의 말에 엉뚱한 대답을 했다. 보호자는 의료진에게 “환자의 눈빛이 이상하고 한 번씩 헛소리를 한다”고 얘기했다. 의료진은 그때까지 환자에게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고 티아민을 투여하지도 않았다.

환자는 급기야 다른 대학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곳 의료진의 뇌 MRI 검사 결과 베르니케 뇌병변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료진은 급히 환자에게 티아민을 투여하기 시작하였다. 환자는 티아민을 투여받자 구역질과 구토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신기하게도 다음날 가족들을 알아보기 시작하였지만 눈동자를 깜빡깜빡하면서 사고의 혼란 상태를 보였다.

환자는 계속 다른 병원을 전전하면서 베르니케 뇌병변에 관한 진료를 받았다. 환자는 어지러움, 사물이 둘로 보이는 것, 정신을 잃어 발작하는 증세 등은 줄어들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 저하에 온갖 이상 행동을 보여 치매 판정을 받았다.

베르니케 뇌병변은 티아민이 부족해 생기는 급성 신경학적 합병증이다.

주로 만성 음주로 인한 심한 영양 결핍 상태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장기간의 금식, 임신 중독증, 신경성 식욕 부진, 고농도 경정맥 영양 공급, 양성 종양, 혈액 투석 환자에서 발생할 수 있다.

티아민은 탄수화물 대사, 신경 전달 물질 생성, 지질대사, 아미노산 변형, 신경 조절에 관여하므로 결핍 시 산화성 손상, 미토콘드리아 손상, 신경 파괴를 일으킬 수 있다. 티아민 결핍은 뇌 신호 전달에 영향을 미치고 뇌백질 손상을 유발한다. 뇌 손상 메커니즘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뇌의 대사 억제와 혈관 내 장벽 손상, 흥분성 독성 반응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는 2~3주의 티아민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섭취량이 충분하지 아니하면 빠르게 소진되며 염증 상태일 때는 더 빠르게 고갈되어 증상을 나타낸다.

베르니케 뇌병변 시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임상 증상은 안구 마비, 운동 실조, 혼돈이다. 복시, 동공 변화, 망막 출혈, 시각 및 청각 장애, 어지러움, 피로감, 무력, 흥분, 경련, 혼수, 기억 장애, 우울, 저체온, 심장 비대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영양 섭취가 저하된 환자에서 의식 변화나 기억력 장애가 나타나고, 안구 운동 장애, 운동실조가 나타나면 베르니케 뇌병변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감별 진단을 위해서 뇌 CT, MRI를 촬영한다. 부분적 이상 소견이 나타나고, 특히 베르니케 뇌병변의 뇌 MRI 소견은 T2 강조 영상에서 중피뇌계와 유두체, 시상내측에서 대칭적인 고신호 강도에 의해 뇌실 주변의 병변이 구분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베르니케 뇌병변의 진단은 임상 양상으로 판단하지만, MRI에서 특징적인 모습이 나타나면 확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료는 티아민을 공급하는 것이다. 보통 하루에 필요한 티아민 섭취 요구량은 1~2㎎이지만 급성기에는 하루 100㎎을 5일 정도 정맥 주사하며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먹는 약으로 보충한다. 티아민이 충분히 공급되면 환자의 증상은 대개 호전되지만, 오래 티아민이 결핍하면 병이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위장관 수술로 인해 장기간 금식을 하고 경정맥 요법에 의한 영양 공급을 시행했다면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티아민을 포함한 수용성 비타민을 추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환자가 25일 기간 동안 금식을 하는 과정에서 구역질, 구토 등으로 경구를 통한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는데, 의료진이 경정맥 영양 공급 이외에 티아민을 포함한 수용성 비타민을 공급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의료 수준을 위반한 것으로 평가했다.

또 환자가 구토와 오심 증상을 보인 이후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이를 이유로 보행을 거부하며, 멍한 표정을 하고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아니하거나 질문에 대한 엉뚱한 대답을 하는 등 의식 저하 증상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뇌 MRI 검사를 시행하여 않은 것도 과실이라 평가했다. 재판부는 병원이 속한 학교법인에 환자와 가족에게 1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인재 의료 전문 변호사·의료 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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