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들은 침묵… 싹수 노란 ‘메르스 외양간’

김영봉 교수 메르스 특별기고

바이러스를 연구하다 보니 지구상 모든 생명체 (동물 , 식물 , 세균)를 전부 합친 것보다 더 다양한 바이러스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내가 연구하는 바이러스 외 다른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교과서 수준밖에 모른다. 그래서 학회에서 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바이러스를 연구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인사말이 됐다. 처음 듣는 바이러스라면 흥미를 갖고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내 모습이 전혀 창피하지 않다.

작년 이맘 때 25년이 넘게 후천성면역결핍바이러스만 연구하던 질병관리본부 A과장이 갑자기 호흡기바이러스과로 자리를 옮겼다. 질병관리본부 행정차원에서 ‘순환보직’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 당시 ‘참 행정가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A과장이 생뚱맞게 메르스(MERS)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갑자기 호흡기바이러스과로 옮기고 나니 용어도 생소하고 다양한 호흡기바이러스를 새로 공부하느랴 힘겹다는 것이었다. 당시 관련 연구비가 없고 국내 유입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 웃고 넘겼는데 오늘의 메르스 사태를 겪고 보니 당시 연구 요청을 받아들여 ‘전방위적으로 조언을 해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고병원성 호흡기 바이러스 전문가일지라도 직접 다뤄보지 못한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기에 국내 바이러스 과학자들이 이번 사태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바이러스 연구를 해본 적도 없고 호흡기 바이러스 예방의 기본적인 N95마스크 장착 요령조차 교육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교과서적 이야기만 되풀이 하는 것을 볼 때 마치 세월호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다행히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으니 그동안 메르스 환자 치료에 사투를 벌인 의료진과 빠른 진단을 위해 한 달여 동안 철야근무를 하면서 고생한 국립보건연구원의 감염병 전문 연구원들에 대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메르스는 종식된 것이 아니다. 향후 메르스보다 더 심한 신변종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양간을 단단히 고치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라는 외양간을 잘 고치자는 주장에는 예방의학자나 역학조사관을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빠지지 않는다.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 걱정된다. 바로 바이러스 전문 과학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단이 한국에 파견되어 메르스 현장실사를 한 후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보면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권고한 11가지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 11번째 사항은 ‘지금의 사태가 전문가 부재로 일어난 상황으로 관련된 전문가들(more infection prevention and control specialists, infectious disease experts, laboratory scientists, epidemiologists, and risk communication experts)을 더 많이 양성하고 확충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 영문 결과보고서에서 언급된 [Lab. Scientists]라는 용어는 임상병리학자[Clinical Pathologist]로 번역되어 메르스 통합사이트(http://www.mers.go.kr/mers/html/jsp/main.jsp)에 게재되어 있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대한민국 방역당국과 외부패널로 나서고 있는 ‘전문가’라는 특정집단의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모델로 해 전문 인력이 확충된 조직을 만들자고 하면서 전문 인력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바이러스 연구자는 없고, 의료 전문인이 많이 필요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신 변종 바이러스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바이러스 특성 연구부터 진단, 감시, 치료제, 백신 연구를 하는 감염병 전문 과학자를 필두로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예방의학, 환자 치료를 할 수 있는 감염내과, 그리고 의학보건대학원출신의 역학-관리 전문가들이 모두 필요하다.

이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국가 보건문제 해결의 최전선에 대거 참여시켜야 앞으로 다가 올 감염병의 위협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메르스보다 더 심한 신 변종 바이러스는 이미 지구상 인류가 포화상태가 된 이 시점에서는 언젠가 반드시 찾아 올 것이다. 이에 대비한 ‘튼튼한 외양간’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포진한 범국가적 중점사업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글: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바이오산업공학과 교수 김영봉

(대한바이러스학회 전 학술부장 및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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